미국 만화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버블 붕괴를 향해 달려가고 있던 1990년대 초중반, 난데없이 등장한 밸리언트 코믹스가 만화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미국 만화의 전통적 2대 명가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다. 이들은 50년이 넘도록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코믹스 시장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켰고 수많은 작가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였다.
1990년대 초반, 대기업화된 이들 회사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스타 작가들이 이미지 코믹스를 차렸고, 이미지 코믹스가 승승장구하면서 다크 호스 코믹스, 키친 싱크 프레스 등 소규모 업체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 밸리언트 코믹스가 있었다. 밸리언트 코믹스는 준비된 모범생 같은 회사였다. 1992년에 처음 출판물을 내놓은 병아리 회사였지만, 마블과 DC 코믹스의 성공 요소들을 전부 차용했고 유행에도 민감했다. 마블 편집장 출신 짐 슈터가 밸리언트 코믹스의 수장이었다. 그는 마블 코믹스에서 배리 윈저-스미스와 밥 레이턴, 조 케사다 등 메이저급 작가들을 스카우트해왔고, 당시 유행하던 홀로그램이나 크로미움 표지를 사용하거나 만화책에 풍부한 부록과 카드를 동봉하는 등 가능한 한 최대한의 홍보 및 판매 전략을 활용하였다.
밸리언트 코믹스의 첫 주인공은 십대로 이루어진 초능력자 집단 '하빈저스'(Harbingers)다. 엑스맨과 틴 타이탄스, 제너레이션 X 등 당시 유행하던 틴에이저 슈퍼히어로 팀을 모티프 삼아 만든 아류 팀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아류작을 내놓으며 경쟁 포화 상태였던 당시 코믹스 시장에서 이들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앞서 언급했듯 밸리언트는 자신감이 있었다. 짐 슈터가 글을 쓰고 후일 ‘스트레이 불리츠’(Stray Bullets)로 유명해지는 데이비드 라팜이 그린 하빈저스는 몰입감 높은 스토리에 과슈와 수채화 기법을 사용한 수려한 그림체로 호평받았고, 총 판매부수가 500만 부에 육박할 정도로 잘 팔려나갔다. 후속 타자였던 블러드샷, 닌잭, 라이 등도 엄청난 호평 속에 흥행했고, 코믹스 팬들은 한정판으로 나온 크로미움 표지 버전 등을 수십권씩 사재기하기도 했다.
출간하는 책마다 평가가 좋았는데, 판매부수는 어땠을까? 만화 종합 월간지 <위저드>가 조사한, 1993년부터 1994년도까지의 ‘이달의 코믹스 판매 순위’에 놀랄 만한 내용이 있다. 1위부터 10위 사이에 밸리언트 코믹스의 책들이 평균 다섯 권씩은 포진해 있었던 것이다. 특히 하빈저스 1호는 8개월 동안이나 차트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전체 코믹스 시장 점유율의 5% 미만을 차지하던 회사가 낸 성적임을 상기하면 경악할 만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판매 호조에 힘입어 밸리언트 코믹스는 무럭무럭 성장했다. 1994년에는 전체 시장 점유율 10%대까지 올라갈 정도로 급성장했고 마블, DC 코믹스 등과 호각을 겨루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다. 첫 출간 이후 불과 2년 만의 일이다.
블러드샷은 2012년에 다시 나온 밸리언트 코믹스의 간판 스타이자 1990년대에도 인기몰이를 했던 캐릭터다. 일본 아니메 컬쳐가 미국 내 일부 팬들 사이에만 퍼져 있던 1990년대 초에 만들어진 히어로다. 블러드샷은 미국인들이 일본 문화에 대해 가졌던 동경과 스테레오타입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옆머리를 밀어 올린 버즈컷은 당시 야쿠자 또는 폭주족 헤어스타일을 차용한 것이었고, 가슴 한복판에는 일장기를 연상하는 커다란 심볼을 달고 있다. 밸리언트 코믹스의 다른 닌자 캐릭터인 닌잭과 함께 일본풍이 많이 느껴지는 캐릭터였다.
밸리언트 코믹스에서 만든 다른 히어로들이 그렇듯 설정도 기존 히어로들의 특징을 잘 조합해놓은 정도다. 블러드샷은 회복 능력이 뛰어나고, 체내에 무수하게 퍼진 나노컴퓨터를 이용해 신체 일부를 자유자재로 변형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원래 군인이었는데 군의 강화인간 실험 대상이 되어 기억이 여러 차례 지워지고, 체내에 나노컴퓨터를 주입받아 초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기억을 조금씩 되찾은 뒤엔 자신에게 실험을 자행한 자들을 찾아 복수의 여정에 오른다. 울버린과 데스록의 설정을 버무린 아류인데, 진부한 설정이지만 그만큼 독자에게 인기있는 요소만 꼽아서 만든 캐릭터라 태생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 인기가 증명된 요소들을 한 데 모아 더욱 정제한다. 이것이 바로 밸리언트 코믹스 캐릭터들의 특징이자 밸리언트 사의 주된 성공 요소였다.
지난해부터 소니 픽쳐스가 2018년 개봉을 목표로 블러드샷과 하빈저의 영화화를 진행 중이라 하니, 어떤 결과물로 재탄생할지 궁금해진다.
그래픽노블 번역가 최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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