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4월 1일은 장국영의 22주기가 된다. 해마다 <아비정전> <패왕별희> <해피 투게더> 등의 ‘명작’들이 재개봉했다면 올해는 그보다 덜 알려진 <열화청춘>(1982)과 <대삼원>(1996)이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같은 날 3월 31일 개봉하여 반갑다. 특히 <아비정전> 이전에 이미 장국영의 우수에 찬 눈빛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준 <열화청춘>은 국내 최초 개봉이기도 하다. 홍콩의 저명한 영화평론가 스티븐 테오는 독특한 스타일의 무협영화 <명검>(1980)으로 데뷔한 담가명의 작품들을 두고 “홍콩 뉴웨이브 작가들 중 가장 덜 언급된 인물이지만, 서극이나 허안화 등과 비교해 가장 ‘성숙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 말했다. 더불어 “담가명은 그 동료 감독들에 비해 가장 세련되고 모던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고도 덧붙였다. 담가명의 색깔이 가장 짙게 담겼다고 할 수 있는 <열화청춘>은 ‘왕가위의 <아비정전>의 전편’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우리가 기억하는 장국영의 상처받은 청춘의 이미지를 앞서 보여준 영화다.
‘장국영 비긴즈’라고 불러도 될 <열화청춘>에서 장국영은 ‘유랑민’ 혹은 ‘유목민’이라는 뜻을 가진 ‘노매드’(Nomad)라는 이름(영화의 영어 제목이기도 하다)의 요트를 타고, 언제나 먼 아라비아로의 여행을 꿈꾸는 흔들리는 청춘의 모습을 섬세하게 연기하고 있다. 계모와 함께 살고 있는 루이스(장국영)는 어느 날 다른 남자와 헤어진 토마토(엽동)를 만나 연인 사이가 된다. 루이스와 이미 오래전부터 친구였던 캐시(하문석)도 아퐁(탕진업)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렇게 네 사람은 한데 어울린다. 그러던 어느 날, 캐시의 전 남자친구이자 일본 적군파 소속의 신스케가 홍콩으로 돌아오며 위험에 처하게 된다. 조직을 탈퇴하고 홍콩으로 도망쳐 온 그를 처단하기 위해 일본에서 여자 킬러가 홍콩에 오게 된 것.

일본 적군파라는 설정도 그렇고, <열화청춘>을 처음 접하게 되면 여러 가지로 당황스러울 수 있다. 무엇보다 캐릭터들의 자유로운 에너지와 그 모든 억압을 벗어던지고자 했던 1980년대 젊은 감독의 청춘영화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이 영화가 제작되던 시기가 바로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이어진 홍콩의 중국 반환 협상의 분위기가 대두되던 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바로 그 협상 끝에 중영공동선언이라 불리는 홍콩 반환 협정이 체결됐고, 1997년 7월 1일을 기점으로 홍콩은 중국에 반환되어 이후 50년이 되는 2046년까지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정하게 됐다. 즉, 시한부 홍콩의 운명이 결정되기 직전의 불안한 기운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이다. 미래를 전혀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들이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홍콩의 처지도 그런 ‘Nomad’와 같았다.

더불어 당시 담가명 감독 영화가 동료 뉴웨이브 감독들의 영화와 비교해 가장 남다른 점이 바로 탁월한 프로덕션 디자인이었는데, <열화청춘> 등 여러 작품을 함께 한 장숙평 미술감독은 그가 직접 발굴한 인재나 다름없다. 1980년대 ‘모던’ 홍콩영화의 진면목이 <열화청춘>에 담겼다. ‘왕가위의 멘토’라 불린 담가명의 <열화청춘> 이후 장국영이 <아비정전>을 시작으로 왕가위의 멘토가 되고, <열혈남아>(1988)을 시작으로 장숙평이 왕가위의 미술을 책임져온 것은 꽤 의미심장하다. <열화청춘>에서 보여준 장숙평의 간결하고도 모던한 미술 감각은, 홍콩영화계 최고의 심미안을 가진 감독이라 할 수 있는 왕가위 외에도 당시 그와 쌍벽을 이뤘던 감독 관금붕도 <지하정>(1986)을 시작으로 줄곧 그와 함께 작업하게 만든 이유가 됐다. 장숙평은 담가명의 <애살>(1981)에서 조감독과 미술감독을 겸했는데, <애살>이 바로 장숙평의 미술감독 데뷔작이자 관금붕에게는 마지막 조감독 작품이었던 인연이 있다.

그처럼 ‘담가명의 장국영’이 없었다면 ‘왕가위의 장국영’도 없었다. <열화청춘>의 루이스에게서도 <아비정전>의 요크(장국영)처럼 자신을 일찍 떠난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읽을 수 있다. 매일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라디오 DJ였던 어머니가 생전에 녹음한 방송을 듣고 또 듣는 것이다. 이미 떠나간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해질수록 그의 상처는 더욱 깊어진다. 1997년을 앞두고 무수히 많은 홍콩 사람들이 이민을 떠난 것처럼, 루이스는 아라비아로 떠나고 싶다는 실현되지 못할 꿈을 꾸는 것이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과 마주하는 그의 풋풋한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기에 애틋하다. <열화청춘>의 장국영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우울과 공허는 그 자체로 홍콩의 슬픈 운명과도 같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지상에 내려오는 발 없는 새’ 혹은 러닝셔츠만 입고 맘보춤을 추는 <아비정전>의 명장면으로 장국영을 추억하는 사람들에게 <열화청춘>은 놀라운 발견의 영화가 될 것이다.
씨네플레이 주성철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