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가 개봉했다. 꾸준히 신작을 내놓은 <터미네이터> 시리즈지만, 이번 작품은 유달리 많은 관심을 받았다. 왜? 린다 해밀턴이 26년 만에 사라 코너로 복귀했고, <터미네이터> 1·2편의 연출자이자 이번 영화의 제작자 제임스 카메론이 “2편에서 이어지는 속편”이라며 적통(嫡統)임을 ‘인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프랜차이즈의 여섯 번째 영화이면서 동시에 3편이란 기묘한 입장이 됐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왜 이렇게 독특한 속편이 됐을까?


<터미네이터>

1984년 제작된 <터미네이터>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실질적인 데뷔작이다. 지금이야 제임스 카메론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터미네이터>를 연출할 때만 해도 그는 <피라냐 2>라는 엉망진창 B급 영화를 하나 만든 무명 감독이었을 뿐이다(심지어 이름만 연출이지, 모든 작업은 제작사가 주도했다). 이전 영화에서 제작자에게 휘둘리며 제대로 된 영화를 못 만든 제임스 카메론은 <터미네이터>를 연출하기 위해 조건 하나를 내걸었다.

<터미네이터>에 대한 모든 권리를 1달러에 파는 대신,

이 영화의 연출권은 나에게 일임할 것

지금과 물가가 천차만별인 35년 전이라도,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들이 편당 최소 7만 달러(2017년 기준)를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시나리오와 이후 지적재산권이 1달러라니. 제임스 카메론은 공동 각본가 게일 앤 허드와 함께 이 조건을 내걸었고, 헴데일 필름과 배급사 오라이온 픽처스가 이 조건을 수락했다. 연출권을 보장받은 카메론은 <피라냐 2>로 얻은 악명을 씻어내기 위해 <터미네이터>에 공을 들였고, 640만 달러짜리 영화는 월드 와이드 수익 7837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대성공을 거뒀다.

<터미네이터> 촬영장의 제임스 카메론(왼쪽)과 아놀드 슈왈제네거.


이렇게 성공한 작품인데, 속편으로 돌아오기까지 7년이 걸렸다. 제임스 카메론이 다른 작품을 연출하느라 미뤄진 것도 있지만, 1달러에 판 판권이 속편의 발목을 잡은 게 컸다. 속편을 제작하려면 헴데일 필름이 동의해야 했다. 헴데일 필름는 당연히 흥행작의 속편을 만들고 싶었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그들은 카메론이 제안한 블록버스터급 예산의 절반도 줄 생각이 없었다.

이때 캐롤코픽처스가 끼어들었다. 캐롤코픽처스는 제임스 카메론이 각본을 쓴 <람보 2>로 쏠쏠한 재미를 봤고, 거기다 <토탈 리콜>을 제작하면서 아놀드 슈왈제네거와도 연이 있었다. 캐롤코픽처스는 헴데일 필름에서 <터미네이터> 판권을 사들인 후 제임스 카메론의 연출권을 보장하며 속편 제작에 박차를 가했다. 여기에 <터미네이터 2>의 스토리를 들은 린다 해밀턴까지 복귀를 확정지어 마침내 <터미네이터 2>가 제작됐다.

<터미네이터 2>로 다시 모인 세 사람. (왼쪽부터) 린다 해밀턴, 제임스 카메론, 마일스 역의 존 모튼, 아놀드 슈왈제네거.

아놀드 슈왈제네거

그렇게 탄생한 형보다 나은 아우, 역대급 SF영화 <터미네이터 2>. 여기서 제임스 카메론이 단 하나 실수한 게 있다면 엔딩이다. 카메론은 원래 스카이넷이 인류를 공격하는 ‘운명의 날’(Judgment Day)이 일어나지 않고, 늙은 사라 코너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으로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종결지으려 했다. 하지만 제작자의 반대와 사전 시사회의 반응을 종합해 극장판의 엔딩, 사라 코너와 존 코너가 떠나는 고속도로 장면으로 변경했다. 여기서부터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기구한 운명이 시작된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마무리 짓고 싶은 제임스 카메론과 달리 제작사는 이 이름값하는 영화를 놓고 싶지 않았다. 캐롤코픽처스는 도산했지만 판권을 가진 마리오 카서와 앤드류 G. 바나는 당연히 속편을 만들고 싶어 했다. 두 사람은 속편을 제작하기 위해 C-2픽처스를 만들었다. 그런데 3편 <터미네이터 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이 나오기까지 12년이 걸렸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제임스 카메론 없이는 출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제작사 입장에선 내키지 않으면 연출하지 않는 카메론을 데려올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터미네이터 2>의 속편은 계속해서 미뤄질 뿐이었다.

그런 아놀드가 갑자기 <터미네이터 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아놀드가 직접 밝힌 이유는 제임스 카메론이 하라고 했기 때문. 카메론은 어느 날 아놀드에게 “그냥 해, 돈을 엄청 많이 달라고 하고”라고 말했다. T-800은 자신이 만든 캐릭터이면서 아놀드의 캐릭터이기도 하다고 덧붙이면서.

<트루 라이즈>로 함께 작업한 (왼쪽부터) 제임스 카메론과 아놀드 슈왈제네거, 제이미 리 커티스.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C-2픽처스의 대표, 마리오 카서(왼쪽에서 두번째 )와 앤드루 G. 바사(맨 오른쪽).

마리오 카서와 앤드류 G. 바나는 워너브러더스와 손을 잡고 <터미네이터 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을 제작했다. 제임스 카메론 대신 조나단 모스토우가 메가폰을 잡았다. 아놀드는 복귀했지만, 린다 해밀턴은 시나리오를 읽고 배역을 거절했다. 그 빈자리를 캐서린 브루스터를 연기한 클레어 데인즈와 T-X 역의 크리스티나 로켄으로 메웠지만, 팬들은 린다 해밀턴과 제임스 카메론의 부재에 반발했다. 개봉 이후 영화 또한 혹평 세례를 받으면서 간신히 본전을 뽑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C-2픽처스는 <터미네이터>의 현재와 미래를 다룬 영화, 그리고 드라마 <사라 코너 연대기>로 화려한 비상을 꿈꿨지만, 이내 날개를 접어야 했다.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C-2픽처스에서 할시온 컴퍼니로 넘어간다. 할시온은 <터미네이터>를 현재와 미래, 두 가지 버전으로 진행하려는 C-2의 비전을 이어가려 했고,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으로 시작될 미래전쟁 3부작을 구상했다. 기존 시리즈와 시간대가 다른 것을 이용, 존 코너와 기본 설정만 두고 기존의 <터미네이터>와 완전히 결별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존 코너 역에 크리스찬 베일을 데려오고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샘 워싱턴, 안톤 옐친 등 출연진을 확정 지었다. 메가폰은 <미녀 삼총사>로 세련된 연출감을 보여준 맥지에게 돌아갔다.

관객들은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사랑한다. 하지만 전작들과 결별하려는 의도까지 포용할 생각은 없었다. 원년 멤버가 없는 작품이라면 특히 더. 역대 최고 제작비를 들인 4편은 월드 와이드 기준 2편 이후 최저 수익을 기록하고 있다. 거기에 결말 유출 루머와 크리스찬 베일의 촬영장 욕설 유포 등이 겹치면서 이미지 또한 회복할 수 없었다. 자신만만하게 3부작으로 시작한 영화는 할시온 컴퍼니의 파산만 불러왔고, 할시온은 경매로 시리즈의 판권을 넘기고 만다.


제작사들을 파산으로 몰아넣은 <터미네이터> 시리즈 판권은 스카이댄스 미디어에 도달한다. 스카이댄스 미디어는 훌륭하게 마무리한 2편을 계승하는 것도,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잡은 전작들을 이어가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1편의 리부트격인 작품,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를 구상했다. T-800에 무한 애정을 가진 아놀드가 다시 복귀했고, 사라 코너와 카일 리스는 에밀리아 클라크와 자이 코트니가 맡았다. 팬들의 마음이야 ‘그래도 아놀드가 나오니까 한 번만 더 속아보자’ 였을 것이다.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다시 한 번 복귀했지만

시리즈의 명맥을 잇기엔 부족했다.

극장에서 본 관객들만 속았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1편을 빼면 북미 기준 1억 달러를 넘지 못한 유일한 터미네이터 영화였다. 그나마 월드 와이드 성적은 4억 달러를 넘었지만,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를 생각하면 간신히 한숨 돌린 정도였다. 원조 1편, 2편의 오마주 장면들은 좋았으나 전체적으로 난잡해진 스토리는 신규 관객이나 올드팬들이나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미적지근한 흥행 성적에 <터미네이터: 제네시스> 3부작 기획은 사실상 정지됐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할리우드의 스카이댄스 미디어가 중국 기업 텐센트의 투자를 통해 제작했다.

이렇게 여러 기획을 거친 <터미네이터> 시리즈. 제임스 카메론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미국의 저작권법에 따르면 발표한지 35년 지난 작품은 원작자의 손으로 돌아갈 수 있다. 2019년이면 제임스 카메론이 <터미네이터> 시리즈 판권 공동 소유자가 되는 것. 그래서 제임스 카메론은 2017년 무렵부터 스카이댄스 미디어의 대표 데이비드 엘리슨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면서 <터미네이터> 속편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터미네이터: 제네시스> 이후 시리즈 판권을 어떻게 활용할지 궁리 중인 스카이댄스 입장에서도 원작자 제임스 카메론의 협력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제임스 카메론과 스카이댄스 미디어는 손잡았다. 2019년 개봉을 목표로 착수한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의 제작은 린다 해밀턴이 사라 코너로,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T-800으로 합류하면서 전 세계 영화 팬들을 주목시켰다. 무엇보다 속편이 계속되면서 난잡해진 시리즈를 폐기하고 ‘원작자’ 제임스 카메론의 공식적인 속편으로 정리하는 것. 시리즈의 팬들로서는 이보다 흥분되는 일도 없었다.

린다 해밀턴과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터미네이터> 1편(왼쪽)과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사진.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방랑은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이후에도 계속될 수 있다. 제임스 카메론뿐만 아니라 공동각본가 게일 앤 허드 또한 원작자로 <터미네이터> 판권을 갖기 때문. 다만 게일 앤 허드는 현재 스카이댄스와 함께 판권에 대한 협상을 진행 중이라 한다. 게일 앤 허드까지 합류한다면,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3부작의 1편이 될 예정이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가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구원할 수 될까. 아니면 원작자조차 살릴 수 없는 과거의 유산이 될까.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