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에서 비롯되는 공포를 그린 <겟 아웃>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지난 2월 북미에 개봉한 <겟 아웃>은 <레고 배트맨 무비>를 누르고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해 현재까지 제작비 대비 50배가 넘는 수익을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본래 극장 개봉을 거르고 IPTV 유통으로 직행할 예정이었지만,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가까스로 개봉해 한국 박스오피스도 수일째 점령하고 있는 상황이다. <겟 아웃>이 세계를 사로잡을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서 차근차근 짚어보자.
p.s. <라라랜드>의 데이미언 셔젤(Damien Chazelle)이 줄기차게 다미엔 차젤레로 불렸던 것처럼, <겟 아웃>의 감독 조던 필(Jordan Peele) 역시 수많은 이들에게 조던 필레라는 이상한 발음으로 표기되고 있다. 프로불편러인 에디터는 조던 필로 표기한다.
믿고 보는 호러의 명가
'블럼하우스'
블럼하우스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제작사다. 시작부터 순조로웠다. 창립 작품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1만5천 달러의 제작비로 무려 1.9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후 블럼하우스는 '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의 연이은 성공과 더불어 '인시디어스', '더 퍼지', '위자' 등의 시리즈물로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기록하며 저예산 호러의 흥행 가능성을 한껏 드높였다. M. 나이트 샤말란, 제임스 완, 스콧 데릭슨, 마이크 플래너건 등 할리우드의 실력 있는 '호러' 감독들이 블럼하우스를 거쳐갔다. <라라랜드>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데이미언 셔젤의 <위플래쉬> 역시 블럼하우스가 제작에 관여한 작품이다. 올해 초 900만 달러로 2억7600만 달러를 벌어들인 <23 아이덴티티>에 이어, 지난 2월 북미에 개봉한 <겟 아웃> 역시 450만 달러로 현재까지 2억3000만 달러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코미디언 조던 필의 첫 영화
<겟 아웃>은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조던 필의 감독 데뷔작이다. 2002년부터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그는 흑인 셀럽들을 성대모사하며 커리어를 쌓았고, 마찬가지로 흑인/백인 혼혈인 동료 키건 마이클 키와 함께 스케치 코미디 쇼 <키 앤 필>을 이끌며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나 고정관념을 풍자하는 레퍼토리를 꾸준히 선보였다. 이 콤비는 인종/직종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실제 인물들을 모사하는 스타일로 명성을 쌓았고, 작년 에미 시상식에서 버라이어티 스케치 시리즈 부문을 수상했다. 2016년 키와 함께 제작/연기를 맡은 영화 <키아누>를 발표한 바 있는 필은 연출 데뷔작 <겟 아웃>으로 (<엑소시스트>에 이어) R등급 호러 흥행 2위, (F. 게리 그레이의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을 누르고) 흑인 감독이 연출한 최고 흥행작이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
영화는 흑인 사진작가 크리스(대니얼 칼루야)가 백인 여자친구 로즈의 집을 방문하면서 겪는 기괴한 일들을 따라간다. 흑인들만이 하인 노릇을 하는 백인 가정. 흑인 화법을 따라하며 쿨하게 크리스를 대하는 외과의사 아버지(브래드리 휘트포드)와 나긋하고 사려깊은 태도로 일관하는 최면치유사 어머니는 처음엔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태도로 그를 불안에 떨게 한다.
<겟 아웃>이 흥미로운 점은 대단한 분위기 전환 없이 불길한 예감을 고스란히 밀고 나가지만, 결코 지루하다는 감상을 남기진 않는다는 점이다. 예고편에서 본 것처럼 저 먼 어둠에서 느닷없이 크리스를 향해 달려오는 월터와 서로 다른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조지나의 기행이 불안을 증폭시킨다. 가장 인상적인 설정은 로즈의 어머니가 담배를 끊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크리스에게 최면을 건다는 점이다. "눈앞에서 시계를 흔드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크리스를 '침잠의 방'에 가두는 최면 시퀀스들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겟 아웃>만의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배우들의 얼굴로 빚은
섬뜩함의 풍경
<겟 아웃>은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나올 듯 말 듯 시간을 끌다가 확 놀래키는 식으로 공포를 형성하지 않는다. 상상해본 적도 없는 모습의 귀신이나 피칠갑의 살인마가 우리를 따라오지도 않는다. 대신 그때그때 변하는 캐릭터들의 표정을 확연히 보여주면서, 순식간에 관객을 이 섬뜩한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로즈의 집에 감도는 이상한 분위기에 의심스러운 얼굴을 감추지 않는 크리스가 최면에 빠져 무장해제된 상태로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리는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는, 대니얼 칼루야의 얼굴을 십분 활용하며 그가 느끼는 공포를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한다. 무조건 열린 마음으로 크리스의 마음을 누그러뜨려줄 것 같던 로즈가 정색하고 이상한 말을 뱉을 때, 관객은 이 기괴한 백인 가정에 출구가 없음을 직감한다.
조연들의 얼굴 역시 강렬하다. 크리스가 온통 백인뿐인 집 안에서 만나는 세 흑인 월터, 조지나, 로건은 가늠하기 어려운 적대감으로 그를 대한다. 공포, 분노, 슬픔, 혐오, 연민 등 복합적인 감정들이 그들의 뚜렷한 얼굴에 떠오르는데, 그 얼굴들이야 말로 <겟 아웃>의 호러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이미지다. 클로즈업의 힘을 아는 조던 필은 그때 그 순간들에 어울리는 가장 소름끼치는 표정을 띄워놓고, 크리스와 더불어 관객까지 불안의 늪으로 침잠하게 한다. 무언가를 말하려다 자꾸 실패하고 결국 눈물을 줄줄 흘리며 웃는 조지나의 클로즈업을 잊기 힘들다.
인종차별에 대한 남다른 화법
인종차별은 <겟 아웃>의 핵심적인 테마다. 하지만 혼혈 코미디언으로서 꾸준히 인종 문제에 천착해온 조던 필이 만든 <겟 아웃>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기존 영화들과 아주 다르다. 대개 흑인은 열등한 인종이라는 무조건적인 폄하로 일관하는 환경 안에서 지난하게 핍박받아온 흑인들의 삶에서 시작하던 대개 작품들과는 달리, <겟 아웃>은 스스로 "오바마의 광팬", "흑인들이 요즘 가장 쿨하다"고 말하는 리버럴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얼핏 이성적으로 보이던 로즈의 가족들은 막무가내로 "Ma Man" 따위의 말투를 따라하거나 "당신들은 신체적인 능력이 월등히 뛰어나지" 같은 말로 흑인을 추켜세우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다른' 존재로 인식하는 차별의 한계를 떨치지 못한다. <겟 아웃>은 그런 그들이 꾀한 계획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서서히 펼쳐놓으며 새로운 지옥도를 보여준다. 이는 인종, 여성, 성정체성 등에 대한 차별의 말을 서슴지 않고도 버젓이 당선된 트럼프 시대 미국의 초상이라 할 만하다.
청각부터 장악하고 보는
마이클 아벨스의 영화음악
조던 필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활동하던 마이클 아벨스를 <겟 아웃>의 음악감독으로 선택했다. 아벨스가 만든 그루비한 사중주/오케스트라 협주곡 'Urban Legends'를 듣고서 그를 간택한 것. 필은 본격적인 영화음악은 처음인 아벨스에게 고정관념에 의지하지 않으면서도 아프리카계 미국적인 요소를 담아주기를 청했다.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메인테마 "Sikiliza Kwa Wahenga"는 필과 아벨스의 의도가 집약적으로 담긴 곡이다. 음침한 오케스트레이션 사이로 알아들을 수 없는 스와힐리어의 주술 같은 노래가 부유하는 이 곡은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대번에 선언하는 동시에 '아프리칸'이라는 정체성까지 드러낸다. "Sikiliza Kwa Wahenga"의 뜻(네 조상의 말에 귀기울여라)을 알고 나면, 아벨스의 번뜩이는 기지에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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