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홈커밍>

스파이더맨이 드디어 고향에 돌아왔다. 오랜 기간 마블이 아닌 소니(콜롬비아)의 단독 시리즈에서 활약하다 전격적으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부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제작된 스파이더맨 단독 영화는 소니가 판권을 소유한 이래 최초로 마블과 합작한 작품이다. 마블이 재정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가장 인기있었고 많은 감독들이 탐냈던 '스파이더맨'의 영화화 판권을 팔아버린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선택이었지만, 그 결과 지금의 마블이 존재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스파이더맨은 마블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번 작품의 부제 '홈커밍'에 담긴 속뜻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3부작.

마블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 중 하나인 스파이더맨은 슈퍼히어로물의 여명기인 2000년대 초반 처음 극영화로 만들어진 이래 지금까지 15년 사이에 여섯 편에 걸쳐 두 차례나 리부트되었다. 그만큼 인기가 높다는 반증인 한편, 소니가 얼마나 스파이더맨에 정성과 집념(?)을 쏟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샘 레이미에 의해 오리지널 삼부작이 만들어졌고, 그 시리즈가 끝나기 무섭게 마크 웹에 의해 두 편의 어메이징 시리즈가 제작되었다. 그 속에서 그린 고블린과 뉴 고블린, 닥터 옥토퍼스, 베놈과 샌드맨, 리자드, 일렉트로 등 스파이더맨의 대표적인 악당들이 소개됐으며, 특히 샘 레이미가 만든 1편과 2편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쟁쟁한 스태프들이 합류한 마블과 소니의 첫 합작품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연출한 이는 <클라운>과 <캅 카> 등 인디 호러/스릴러를 만든 존 왓츠 감독으로, 그간 마이너 감독들을 영입해 재미를 봤던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전통(혹은 마블의 특징일 수도 있지만)을 잇고 있다. 호러와 코미디 등 장르적인 쾌감을 간직한 샘 레이미와 젊음의 풋풋하고 섬세한 감정을 전달하는 데 탁월했던 마크 웹처럼, 존 왓츠 역시 스릴과 서스펜스를 드라마에 효과적으로 버무려 구현한 점이 큰 점수를 얻은 듯 하다. 신입 감독을 위해 베테랑 스태프들이 동원됐는데, 론 하워드의 촬영 짝패 살바토레 토티노를 비롯해 여러 마블 영화 편집에 관여한 댄 레벤탈, 블록버스터 미술에 최적화된 올리버 스콜 등이 탄탄하게 뒤를 받쳐주고 있다.

여기에 현기증 나는 음악을 선사한 이는 <닥터 스트레인지>로 성공적인 마블 입성식을 치룬 '디즈니의 보배' 마이클 지아치노다. 1960~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 사운드를 가미해 독특한 색채를 던졌던 '닥터'와 달리 이번 그의 스파이더맨은 보다 전통적이고 익숙한 히어로물 사운드를 구사한다. '포스트 존 윌리엄스'라는 별명답게 풀 오케스트라로 펼쳐내는 스파이더맨의 출정가는 고전적이면서도 산뜻한데 낮아진 스파이더맨의 연령대에 맞춰 청춘의 캐주얼하고 팬시한 분위기를 입혔다. 수다스럽고 부산한 스파이더맨 특유의 위트 어린 요소도 효과적으로 부각한다. 이런 점들이 앞서 제작된 기존의 스파이더맨 스코어들과 변별점을 갖는다.

오리지널 삼부작의 음악, 대니 엘프만과 크리스토퍼 영

2002년 처음 선보인 <스파이더맨>의 음악은 '히어로 마스터' 대니 엘프만이었다. 그는 <배트맨>과 <플래시>, <다크맨>과 <딕 트레이시>, <헐크> 그리고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올겨울에 나올 <저스티스 리그>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작곡가들보다 많이 히어로물의 음악을 맡았다. <스파이더맨>의 음악은 역동적이고 스피디하게 활강하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을 변화무쌍한 테마로 구현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이 시리즈에서 영웅적인 팡파르나 정형화된 서곡 스타일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시각적인 사운드에 집중했는데, 그러면서도 특유의 악기 구성이라든지 그로테스크하고 장난기 어린 자신만의 인장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니 엘프만이 참여한 <스파이더맨>(2002)
크리스토퍼 영이 참여한 <스파이더맨 3>(2007)

아쉽게 대니 엘프만은 샘 레이미의 삼부작을 끝까지 함께하지는 못했다. 3편은 창작적 견해로 인해 대니 엘프만이 하차하고 대신 크리스토퍼 영이 마무리를 하였다. 감독과는 이미 <기프트>로 한번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영은 엘프만의 기존 테마를 적절히 활용하면서도 자신의 고딕적인 스타일을 효과적으로 접목했다. 호러와 스릴러 장르 음악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였기에 엘프만보다 진지하고 어두운 비전을 제시했는데, 이는 빌런만 세 명이 등장한 3편에 더 강력하고 혼란스러운 기운을 부여했다. 특히 베놈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있어 그의 호러적인 스킬이 기가 막히게 발휘되었다. 시리즈 중 유일하게 스코어 앨범이 공개되지 않은 게 옥의 티.

두 편의 어메이징 시리즈의 음악, 제임스 호너와 한스 짐머
제임스 호너가 참여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새롭게 리부트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음악감독으로 마크 웹이 낙점한 이는 제임스 호너였다. 호너는 비주얼적인 엘프만과 달리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부분에 주안점을 뒀는데, 그런 디테일을 드러내는 건 바로 섬세한 피아노 톤이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의 고뇌라든가, 영웅으로서 피터 파커가 책임감을 자각하게 되는 지점들에서 심플하지만 아름다운 선율로 그 무게감을 묘사했다. 여기에 역동적인 일렉 톤과 웅장한 관현악 사운드가 어우러지며 할리우드 스코어의 위력을 실감하게 만드는 건 덤. <인간 로케티어>나 <윌로우> 등에서 들려줬던 낭만적이고 영웅적인 테마에서 슬쩍 빗겨나 세련되면서도 모던한 색채로 친근한 이웃으로서 어울릴 법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한스 짐머가 참여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하지만 속편의 각본과 프로덕션 과정에 실망을 느끼고 호너는 후속편에서 하차를 결정하는데, 그 빈자리를 채운 건 DC의 슈퍼히어로물 음악을 주무르고 있던 한스 짐머였다. 짐머는 이 영화를 위해 감독과 함께 시니스터 식스에서 영감을 얻어 '매그니피센트 식스'라는 슈퍼 그룹을 조직하는데, 더 스미스 출신 기타리스트 조니 마와 퍼렐 윌리엄스, 인큐버스의 마이크 아인지거, 유리스믹스의 데이빗 스튜어트라는 쟁쟁한 멤버가 합류해 장엄하면서도 독특한 사운드를 완성했다. 파격적인 실험성과 대중적인 팝 스타일을 절묘하게 결합한 이 스코어는 엘프만과 호너 그리고 여타의 히어로물 음악과는 차별화된 질감을 제시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마이클 지아치노가 들려주는 스파이더맨 귀향기
<스파이더맨: 홈커밍>

알란 실베스트리와 브라이언 타일러에 이어 전혀 다른 두 편의 마블 영화에서 음악을 맡게 된 마이클 지아치노는 폴 프란시스 웹스터와 밥 해리스가 만든 1960년대 TV 테마를 현란하고 스피디한 풀 관현악 사운드로 변주시킨 마블 로고로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포문을 연다. 여기에 알란 실베스트리가 작곡한 어벤져스 테마도 시작과 끝에 살짝 집어넣으며 마블에 복귀한 스파이더맨을 환영하는데, 유기적으로 고전에 대한 오마주와 시리즈 연계에 대한 감각적이며 탁월한 센스를 드러내며 관객들을 만족시킨다. 무엇보다 청춘영화의 밝은 뉘앙스와 액션 히어로물로서 거친 스타일 두 경계를 절묘하게 오가며 정통적인 할리우드 작법을 따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스파이더맨: 홈커밍>

자신의 스타일을 유감없이 과시했던 대니 엘프만이나 크리스토퍼 영, 제임스 호너와 한스 짐머가 매만진 스파이더맨 스코어들에 비한다면 다소 심심하고 평범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마이클 지아치노는 기본에 충실한 탄탄하고 활력 넘치는 사운드로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피치카토로 경쾌하면서도 다양하게 변주되는 기본 테마를 비롯해, 역동적이면서 파워풀한 '벌처'의 테마가 뚜렷하게 대립하며 고전적인 흥분과 긴장을 영화 내내 자아낸다. 자신이 맡았던 <인크레더블>이나 <스카이 하이> 그리고 <닥터 스트레인지>의 과장되고 자극적인 영웅담 대신 소소하면서도 충분히 매력적인 스파이더맨의 마블 귀향기를 담아내고 있다.

마블과 소니의 전략적 동거는 계속 된다.
당분간은.

7월5일 국내 개봉한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개봉 첫 주차에 벌써 350만명을 돌파하며 압도적인 흥행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는데, 미국에서도 개봉 첫 주말에 1억1702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첫 주 세계 흥행 수익으로 제작비 모두를 회수하는 기염을 토했다. 속편이 기획 중인 건 당연한 수순일 텐데, 마블의 대표이자 프로듀서인 케빈 파이기는 '마블 페이즈 4'의 첫 시작으로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속편이 위치할 것이라 밝혔다. 당분간 마블과 소니의 기묘하면서도 전략적인 동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변이 없는 한 2019년 7월5일에 개봉할 속편에서도 존 왓츠 감독과 마이클 지아치노의 음악을 접할 수 있을 듯 싶다.


스파이더맨

감독 샘 레이미

출연 토비 맥과이어, 윌렘 대포, 커스틴 던스트, 제임스 프랭코, 클리프 로버트슨, 로즈마리 해리스, J.K. 시몬스

개봉 200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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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스파이더맨

감독 마크 웹

출연 앤드류 가필드, 엠마 스톤, 리스 이판, 마틴 쉰, 샐리 필드

개봉 201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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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홈커밍

감독 존 왓츠

출연 톰 홀랜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마이클 키튼

개봉 201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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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트랙스 / 영화음악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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