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드라이버>는 '덕심'을 제대로 아는 영화다. 그게 음악이든, 로맨스든, 자동차든, 범죄물이든 무엇을 기대해도 그 이상의 쾌감을 안겨준다. 어릴 적 사고로 앓게 된 이명을 견디고자 음악을 끼고 사는 남자 베이비(안셀 엘고트)는 귀신 같은 운전 실력의 소유자다. 그 능력으로 어려서부터 범죄에 가담하던 그는 연인 데보라와의 새 삶을 꿈꾸며 악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한다. 영화를 연출한 에드가 라이트의 전작들을 아는 이들이라면, 사이먼 페그/닉 프로스트 주연의 재난(?) 코미디 영화들보다는 감독의 록 음악에 대한 애정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에 좀 더 가깝다고 느낄 법한 이야기다. 지난 8월 25일, 홍보차 한국을 찾은 에드가 라이트 감독을 만나 여섯 번째 장편영화 <베이비 드라이버>에 대해 물었다.

에드가 라이트


시작점은 역시 음악!

시작은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전(The Jon Spencer Blues Explosion)의 ‘Bellbottoms'였다. 에드가 라이트는 22년 전 'Bellbottoms'를 처음 듣고 주인공이 범행 장소에서 탈출하는 장면에 이 음악을 사용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리면서 평소 좋아하던 "액션, 음악, 운전이 결합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베이비 드라이버>에는 운전, 로맨스, 범죄, 가족 등 수많은 요소들이 즐비하게 모여 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모아주는 것이 결국 음악이라는 점 역시 바로 이 사실과 닿아 있을 것이다. 영화의 발단처럼 'Bellbottoms'와 함께 문을 여는 오프닝은 5분을 훌쩍 넘기는 트랙의 리듬에 딱딱 맞춰 진행되며, ‘음악’이 이 영화의 피와 살이라는 걸 대번에 선언한다. 에드가 라이트는 이 선언을 완전하게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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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의 음악 취향이

끝내주는 비결

주인공 베이비(안셀 엘고트)는 눈 뜨고 있는 거의 모든 순간을 음악과 함께 하는 남자다. 어릴 적 자동차 사고로 인해 평소에도 이어폰을 끼고 사는 처지인 그는 아이팟 클래식을 제몸같이 지니고 다닌다. "아이폰으로 음악을 듣다보면 전화나 메시지가 올 때 방해가 되기 때문에" 음악을 들을 때 무조건 아이팟을 사용하는 에드가 라이트의 기호가 잘 드러나는 설정이기도 하다.

앳된 얼굴이나 이름과 달리, 베이비의 음악 취향은 꽤나 '올드'하다. 록, 소울, 훵크, 힙합 등 다양한 장르들이 뒤섞여 있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2000년대, 즉 아이팟 세대 이전의 음악들로 구성돼 있다. "시대를 초월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라이트는 "베이비가 어릴 적부터 차량을 훔치면서 사람들이 거기에 두고 내렸을 아이팟을 수집해 그 안의 트랙리스트를 보며 자기 취향을 만들"어 갔을 것이라고 설정해 캐릭터를 구축했다고 한다.

베이비

베이비 역의 안셀 엘고트는 배우와 뮤지션 활동을 겸하고 있다. 2014년 안솔로(Ansolo)라는 DJ명으로 댄스음악을 웹상에 공개하고 파티 무대에 서던 그는 작년 거대음반사 아일랜드와 계약해 자기 이름으로 싱글을 발표하고 있다. 에드가 라이트가 엘고트를 베이비에 캐스팅 한 이유도 바로 "탁월한 음악적 재능"에 있었다. 시종일관 쏟아지는 음악들에 반응하는 감각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 음악 얘기만 실컷 나눴다고 한다.

얼핏 미성숙해

보이는 히어로들

사이먼 페그 / 마이클 세라 / 안셀 엘고트

에드가 라이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위기에서 무언가를 구해야 하는 존재였지만, 그들은 대개 "영웅스럽지 않은 영웅"이었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와 <뜨거운 녀석들>(2007)의 사이먼 페그,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2010)의 마이클 세라처럼, <베이비 드라이버>의 안셀 엘고트 역시 전형적인 히어로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우선 나부터가 그들의 이미지와 가깝다"는 에드가 라이트는 이번에도 엘고트의 어린 얼굴에 매력을 느꼈다. 배츠(제이미 폭스)와 버디(존 햄) 같은 대놓고 위협적인 인물들 사이에서 눈에 확 띄는 아우라를 풍겨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언제나 "저 꼬맹이는 뭐야?" 따위의 말을 듣는 어린 남자가 범죄 집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운전사가 됐는지 사연을 풀어가며 민첩하게 관객들의 흥미를 움켜쥔다.

데보라와 베이비

음악? 운전? 범죄?

결국 '사랑'이 다한다

로맨스는 <베이비 드라이버>를 질주하게 이끄는 원동력이다. 음악, 운전, 범죄 등 영화를 이루는 요소들이 결국 베이비와 데보라(릴리 제임스)의 사랑을 위해 존재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에디터를 뒤흔든 장면이 있다. 베이비가 생전 엄마가 일하던 식당에서 첫눈에 반한 데보라-운명처럼 칼라 토마스(Carla Thomas)의 'B-A-B-Y'를 들으며 등장한다-와 음악 얘기를 나누는 신이다. 베이비라는 이름을 듣고 데보라가 가사에 "Baby"가 들어가는 노래들이 많아서 부럽다고 하고, 베이비가 티렉스(T-Rex)의 'Debora'도 있다고 하자 데보라는 벡(Beck)의 'Debra'를 소개해주며 둘의 사이가 한껏 좁혀진다. 우연히 듣던 노랫말에서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발견하고 그때부터 그 곡을 좋아해본 사람이라면, 그 순간의 엷지만 강렬한 떨림에 반응할 수밖에 없다.

설마 하고 감독에게 "그 장면을 위해 릴리 제임스의 이름을 데보라로 정한 건가?"라고 묻자, 당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여자의 이름이 제목인 노래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티렉스의 'Debora'를 발견했다. 'Oh Deborah, always look like a zebra'라는 라임이 특히 재미있더라. (베이비는 데보라의 유니폼이 얼룩말 같다고 말한다.) 서로 자신들이 아는 데보라의 노래를 알려준다는 게 그 장면이 태동하게 된 계기다. 또 다른 'Debora'가 있었는데, 그 노래 속의 데보라는 나쁜 여자여서 수록하지 않았다.(웃음)" 대답을 듣자마자 에드가 라이트에게 하이파이브를 던질 뻔했다.

에드가 라이트

제3의 주인공, 애틀란타

애틀란타는 에드가 라이트의 첫 할리우드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애초 시나리오의 배경은 LA였지만, 애틀란타로 공간을 수정해야 했다. 비용 자체가 많이 들고, 사용할 수 있는 도로가 제한적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이트는 그 선택이 전화위복이었다고 말한다. "애틀란타는 음악의 도시, 자동차의 도시, 그리고 꽤나 가끔(!) 범죄도 일어나는 도시다. 하지만 애틀란타를 다른 도시인양 촬영하는 경우는 많았어도 정작 이곳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곳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매 순간 다른 소리들로 울리는 BGM들과 함께 쾌속질주하는 가운데 보이는 애틀란타의 풍경이 뭔가 달라 보였다면, 라이트의 노력이 적중한 셈이다.

사이먼 페그/닉 프로스트는

어디에?

뜨거운 녀석들 / 지구가 끝장나는 날

두 갈래의 에드가 라이트 영화가 있다. 사이먼 페그/닉 프로스트 듀오가 나오는 영화와 아닌 영화. 라이트는 <새벽의 황당한 저주>, <뜨거운 녀석들>, <지구가 끝장나는 날>(2013)뿐만 아니라 TV 드라마, 단편까지 꾸준히 그들과의 협업을 이어오며 남다른 우정을 과시한 바 있다. 에드가 라이트는 "닉 프로스트의 경우, 베이비가 TV 채널을 돌릴 때 2003년 내가 촬영한 민트 로얄(Mint Royale)의 'Blue Song' 뮤직비디오(<베이비 드라이버>의 오프닝이 이것과 아주 유사하다)가 나오는데, 거기서 목소리가 나온다. 출연했지만 출연하진 않은 셈"이라고 했다. 지독한 자 같으니라고!

이번 영화에서 페그/프로스트 듀오와의 콜라보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두 사람을 모두 주인공으로 써야 한다"는 자기만의 방침에 맞지 않은 이야기였던 탓이다. "그들과 늘상 같이 하다가 이따금씩 완전히 새로운 캐스트들과 일하는 것 역시 좋은 경험이다.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와 <베이비 드라이버> 모두 작업하는 데에 있어 신선한 에너지가 됐다." 아직 시나리오도 나오지 않은 탓에 바로 차기작에서 에드가 라이트-사이먼 페그-닉 프로스트 트리오의 협업을 만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다시 뭉치자는 논의는 진행중이라 하니 세 사람이 만드는 포복절도 코미디를 다시 한번 기다려봐도 좋겠다. 물론 <베이비 드라이버>를 아주 실컷 즐기고 나서.

사이먼 페그, 닉 프로스트, 에드가 라이트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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