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평도 리콜이 되나요] 〈퍼펙트 데이즈〉 히라야마상의 플레이리스트에 대하여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어딘가에 그윽하고 깊은 것이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봐야 한다. 만약 카세트테이프에 대한 추억이 있다면 이 영화를 봐야 한다. 아니, 없어도 괜찮다. 누군가의 미소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때로 감동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 영화를 봐야 한다. 야쿠쇼 코지 주연, 빔 벤더스 감독 영화 <퍼펙트 데이즈>다.

 


〈퍼펙트 데이즈〉
〈퍼펙트 데이즈〉

야쿠쇼 코지가 연기한 주인공 히라야마의 삶은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해가 지면 책을 잠깐 읽고, 일찍 잠에 든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 동안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이 현관문 앞에 정확하게 놓여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출근할 시간이다. 히라야마는 집 앞 자판기에서 커피 한 캔을 뽑는다. 차에 타고 시동을 건 뒤 카세트테이프들 중 하나를 골라서 플레이한다. 여기에는 전자식 문도 없고, 그 흔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없다. 스포티파이는 더더욱 없다. 히라야마는 카세트테이프로 젊은 시절 애정 했을 그 음악을 듣고, 또 듣는다.

 

〈퍼펙트 데이즈〉
〈퍼펙트 데이즈〉

영화 속 첫 출근 장면에서 히라야마는 하늘을 바라보고 미소를 짓는다.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음악이 흐른다. 아니나 다를까. 애니멀스(The Animals)의 ‘House of the Rising Sun’(1964)이다. 이 곡, 애니멀스가 창작한 노래는 아니다. 작자 미상의 흑인 민요다.

 

‘House of the Rising Sun’은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아들의 이야기다. 영화를 봐도 우리는 히라야마의 구체적인 과거에 대해 알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다만 몇 가지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꽤나 부잣집 아들이었을 것이다. 한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집안, 정확하게는 아버지와 연을 끊은 상태다.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딱 여기까지다. 영화는 ‘왜’를 적시하지 않는다. 다만 미루어 짐작하게 할 뿐이다.

 

〈퍼펙트 데이즈〉
〈퍼펙트 데이즈〉
〈퍼펙트 데이즈〉
〈퍼펙트 데이즈〉

 

그가 영화에서 듣는 모든 곡들이 “좋았던 어떤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흔히 말하는 노스탤지어다. 원래 노스탤지어는 부정적인 표현이었다. 이 용어는 17세기 후반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둔한 일부 스위스 병사들이 겪는 심각한 향수병을 설명하기 위해 스위스 출신 의사 요하네스 호퍼가 만든 것이다. 호퍼가 꼽은 증상으로는 낙담, 울음, 체중 감소, 자살 시도 등이 있었다.

 

이제 우리는 노스탤지어를 고통만이 아닌 즐거움 역시 수반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의 그리움이 치유의 대상이었다면 이제 그것은 탐닉의 대상이다. 더욱이 지금의 노스탤지어는 장소보다는 시간을 강조한다. 이러한 변화는 적절한 것처럼 보인다. 17세기 이후 장소는 점점 더 비슷해지고 시간은 점점 더 달라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스탤지어는 시간에 풍화된 구식 기술과 문화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바로 영화 속 카세트테이프와 거기에 녹음되어 있는 오랜 명곡들이다.

 

〈퍼펙트 데이즈〉
〈퍼펙트 데이즈〉

 

예를 들어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의 ‘Pale Blue Eyes’는 이뤄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노래다. 1969년 발표되었고,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접속> OST로 사랑받았다. 히라야마가 영화 속 두 번째 출근길에 선택하는 카세트테이프는 1968년 공개된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의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다. 오티스 레딩은 이 곡을 항구에 정박한 배에서 혼자 만들었다. 히라야마의 경우 도심 속 외딴 주택에서 홀로 생활한다. 이를테면 히라야마가 사는 공간은 그가 선택한 자발적 유배지인 셈이다. 영화에 나오는 여타 장소들로 미뤄봤을 때 히라야마의 집은 아사쿠사 어디쯤일 것이다. 그가 자전거를 타고 건너는 다리, 단골 밥집 등이 모두 아사쿠사에 있는 곳들이다.

 

〈퍼펙트 데이즈〉
〈퍼펙트 데이즈〉

이 외에도 <퍼펙트 데이즈>에는 팝 명곡들이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잊을 만하면 흘러나온다. 심지어 휴일에 집에서 쉴 때 흘러나오는 킹크스(The Kinks)의 ‘Sunny Afternoon’(1966)의 경우, 테이프가 약간 늘어진 것처럼 들린다. 그리고 바로 그 곡, 루 리드(Lou Reed)의 ‘Perfect Day’(1972)가 영화 제목 때문에라도 빠질 수 없다.

 

글쎄. 모르긴 몰라도 이 곡, <트레인스포팅>(1996) 덕에 친숙한 사람들 많을 것이다. 그러나 오해받은 측면이 있다. <트레인스포팅>으로 인해 이 곡이 ‘마약’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루 리드는 이와 관련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부인한 바 있다. 어쩌면 영화의 주제를 압축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그의 말을 들어본다.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하루라는 건 뭐 거창한 게 아니에요.

사랑하는 사람과 샹그리라 한잔 마시고 집으로 함께 가는 것.

단순하다는 바로 그 이유로 완벽할 수 있는 하루.

이게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하루에요.

 

영화를 본다면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삶에 있어 어떤 열망이 사라진 자리에 맑고, 고요한 정적만이 남았다. 히라야마는 인연이라는 수인을 오래전에 벗어던진 상태다. 격정으로 들끓는 사건 따위 이제는 그의 일상을 감히 침범할 수 없다. 빔 벤더스는 히라야마를 “일상적인 삶의 단순함을 통해 깊은 내면의 평화를 찾은, 세속의 수도승 같은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히라야마는 삶이라는 경전을 자신의 일상으로 기록하는 인물이다.

 

〈퍼펙트 데이즈〉
〈퍼펙트 데이즈〉

영화는 니나 시몬(Nina Simone)의 ‘Feeling Good’(1965)으로 마무리된다. 이 곡이 나올 즈음에야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영화를 보는 동안 히라야마가 최선을 다해 구축했을 저 단단한 일상이 부디 무너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는 점을 뒤늦게 알아챘다.

 

그럴 수 있기를. 그의 하루하루가 마치 아침을 맞이하는 그의 미소처럼 언제나 ‘필링 굿’일 수 있기를. 만약 당신에게 이 영화의 잔잔한 여운이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면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퍼펙트 데이즈〉

몰라도 아무런 상관없는 참고사항: 여러 보도자료를 통해 알려져 있다시피 영화에 나오는 여러 화장실은 실제 존재한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기획된 공중 화장실 개선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라고 불렸다. 그중 영화 속 흑인 여성을 당황하게 하는 화장실이 하나 있다. 요요기 공원 인근에 위치해있는 화장실이다. 어떻게 아냐고? 가봤다.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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