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여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는 가족 별장에서 한가롭게 열일곱 살의 여름을 지낸다. 어느 날 아버지(마이클 스털버그)의 연구를 돕기 위해 미국에서 젊은 철학 교수 올리버(아미 해머)가 찾아온다. 자기 방을 내준 엘리오는 그에게 첫눈에 반한다. 올리버를 향한 마음은 커져만 가고, 그는 알 듯 모를 듯한 태도로 엘리오의 시선을 붙든다. 다른 여자와 어울리는 올리버를 바라보며 질투를 느끼던 엘리오는 끝내 참지 못하고 자기 마음을 고백한다. 그렇게 서로 키스도 나눴지만 올리버의 태도는 여전히 애매할 따름. 올리버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동네 친구 마르치아(에스더 가렐)를 만나보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점점 더 멀어져가는 것 같다.
영화는 풍성한 햇볕 아래 두 남자의 사랑이 만개했던 여름의 시간들을 펼친다. 2시간을 넘기는 넉넉한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주인공 엘리오의 사랑을 에두르는 데에 시간을 흘리지 않는다. 오프닝 크레딧이 오르고 불과 4분이 지난 시점. 엘리오는 저녁 식사 시간을 알리기 위해 침대에 뻗어 있는 올리버를 흔들려다 말고 곁에 있던 책을 떨어트려 그 소리로 그를 깨운다. 너무 만지고 싶어서, 손 대는 걸 더 망설이게 되는 마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그렇게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육체적으로 이끌리고 있음을 단번에 드러낸다. 엘리오는 처음 느끼는 이 떨림을 의심하지 않고, 영화의 시간은 줄곧 엘리오만을 따라간다. 올리버가 배구를 하다 말고 대뜸 엘리오의 어깨를 주무를 때, 엘리오가 바짝 긴장했다는 걸 보여주는 신은 귀여운 사족처럼 보인다. 아무리 책을 읽고 악보를 그려봐도 올리버를 떨칠 수 없던 엘리오는 그가 벗어놓은 반바지를 머리에 쓰고 침대에 눕는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안드레 애치먼이 쓴 같은 제목의 소설(한국어판은 <그해, 여름 손님>으로 나왔다)을, <아이 엠 러브>(2009) <비거 스플래쉬>(2015)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시네아스트로 올라선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영화로 옮겼다. <전망 좋은 방>(1985), <하워즈 엔드>(1992) 등을 통해 고풍스러운 배경 속 성(性)을 넘나드는 사랑에 천착하는 영화 세계를 선보인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각색한 시나리오는 원작 소설과 뚜렷한 차이를 둔다. 원작이 철저히 엘리오의 시선에서 서술되던 것과 달리, 시나리오는 관찰자 시점에서 엘리오의 짝사랑과 그 마음이 짝을 찾아 한여름 복숭아처럼 무르익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의 제목이자 듣자마자 뭉클해지는 그 말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가 온전히 성립된다. 너와 나, 사랑의 객체와 주체가 그렇게 하나가 된다. 엘리오가 올리버를 “엘리오” 하고, 올리버가 엘리오를 “올리버” 하고 부르며 밤을 보낸 후, 올리버가 처음 온 날 입었던 셔츠를 품에 안고 아침을 맞는 엘리오는 정말 행복해 보인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만들며 세 감독을 떠올렸다고 한다. 장 르누아르, 모리스 피알라,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르누아르에게선 카메라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채 지극히 현실적인 이미지로 인간의 욕망을 전달하는 법을, 피알라에게선 구석의 사소한 요소조차 뭉뚱그리지 않는 태도를 배웠다. 베르톨루치(구아다니노는 2013년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바 있다)는 카메라가 배우의 정체성 저 깊은 데에 감춰진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도구라는 믿음을 일깨워줬다. 구아다니노는 태국의 시네아스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친애하는 당신>(2002), <엉클 분미>(2010) 등의 촬영으로 자연의 신비와 사랑의 관능을 어우르는 재능을 보여준 사욤부 묵디프롬을 새 촬영 파트너로 초대해, 엘리오의 사랑을 조용조용 분출하는 티모시 샬라메를 카메라에 담았다. <인터스텔라>(2014)로 처음 조연을 맡은 티모시 샬라메는 2017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통해 비로소 전 세계를 사로잡는 배우로 자리매김 했다.
영화 곳곳에 퍼져 있는 아름다운 미장센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선사하는 희열을 배가 시키는 결정적인 요소다. 엘리오의 가족과 올리버가 바다에서 마주하는 예술품들, 사랑 말고는 모든 걸 아는 것 같은 엘리오의 방을 채운 물건들, 틈만 나면 그가 손에 쥐고 있는 모서리가 닳은 고서들, 올리버의 건장하고 매끈한 육체를 감싸는 옷가지들(특히 그 하이탑 컨버스!), 심지어 저택의 고요를 깨며 움직이는 파리들까지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답다.
음악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 음악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우선 피아노. 중세 유물이 새겨진 이미지들의 콜라주 위 노란 분필이 스탭들의 이름을 휘갈겨 놓은 오프닝 크레딧을 유영하듯 흐르는 존 애덤스(구아다니노의 전작 <아이 엠 러브>의 영화음악이 그의 작품이다)의 ‘할렐루야 정션’(Hallelujah Junction) 1악장을 들을 때부터 매혹은 시작된다.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피아노를 연주하고 곡을 쓰는 걸 즐기는 엘리오의 취향을 반영하듯 사카모토 류이치, 에릭 사티, 바흐, 라벨의 피아노 곡들이 흐른다. 80년대 유행한 이탈로 디스코 넘버들 역시 두드러지게 사용됐다. 살짝 촌스럽되 말초신경은 제대로 자극하는 신시사이저의 리듬들이 넘실대는 가운데, 엘리오와 올리버는 혼자(누군가 몸을 흔드는 걸 상대는 뚫어져라 바라본다) 혹은 같이 춤을 추며 사랑을 키워나간다. 그리고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서프얀 스티븐스의 오리지널 트랙들이 있다. 피아노곡과 이탈로 디스코가 희열을 수식한다면, 스티븐스의 노래들은 홀로 막다른 사랑에 한없이 가라앉고 있는 엘리오의 심연을 대변한다.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티모시 샬라메의 마지막 얼굴은 ‘사랑의 미스테리’(Mystery of Love)에 허우적대는 소년의 표상 그 자체다.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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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출연 티모시 샬라메, 아미 해머
개봉 2017 이탈리아, 프랑스, 브라질, 미국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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