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

명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배우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맡을 수 있는 배역에 한계를 느낀 그는 오래도록 영화 일을 하고 싶었다. 감독이 되겠다는 결심은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고 그는 지금까지 수 편에 이르는 마스터피스를 만들었다. 여기, 감독을 선언하고 나선 또 다른 후배 배우들이 있다. 이르면 올해나 내년 관객들을 찾을 네 편의 영화 소개를 정리했다.


폴 다노

<와일드라이프>

폴 다노

삼십 대 중반에 접어든 배우 폴 다노의 연기 이력은 벌써부터 화려하다. 특히 <데어 윌 비 블러드>(2007)에서 명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벌인 광기 가득한 호연은 곧장 ‘연기 천재’라는 수식을 그에게 달아주었다. 조연으로 잠깐 얼굴을 비춘 영화에서도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내던 이 배우의 다음 행보는 감독 데뷔다. 그가 제작, 각본을 겸한 첫 연출 데뷔작 <와일드라이프>는 올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호평을 받았고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부문에도 초청 상연돼 화제를 모았다.

<데어 윌 비 블러드>

영화는 1960년대의 미국 몬태나, 어머니의 외도로 인한 한 가정의 붕괴를 16세 아들 조의 시선으로 담담히 서술하는 이야기로 펼쳐진다. ‘현존하는 가장 미국적인 작가’로 불리는 리처드 포드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캐리 멀리건과 제이크 질렌할이 부부를, 에드 옥슨볼드가 아들 조 역할을 맡았다. 선댄스 영화제에 공개된 이후 언론들은 “첫 연출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 능숙하다”, “캐리 멀리건의 연기가 일품이다” 등의 평을 쏟아냈고 현재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100%을 기록하고 있다. 폴 다노는 <와일드라이프>의 각본을 오랜 연인이자 배우인 조 카잔과 함께 썼는데, 그녀는 두 사람이 동반 출연한 <루비 스팍스>(2012)의 각본가로도 알려져 있다.

<와일드라이프>

해외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흔히 배우 출신 감독들이 그렇듯 셀프 캐스팅을 염두에 두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영화를 만드는 꿈을 갖고 있었고 그 작업에 완전히 빠져들고 싶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연출은 굉장한 작업이며, 감독들이 출연 배우들에 애정을 아끼지 않는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재미난 사실은 감독이 아니라 배우들을 존중하는 시각이 생겼다는 것이다.”


에단 호크

<블레이즈>

에단 호크

지적인 매력의 할리우드 배우 에단 호크도 감독으로 변신했다. 하지만 <블레이즈>가 그의 첫 연출 데뷔작은 아니다. 예술가들이 묵었던 첼시 호텔에서 영감을 받고자 하는 몽상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첼시 호텔>(2001), 미국판 <봄날은 간다>라 불리는 <이토록 뜨거운 순간>(2006), 뉴욕의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과의 만남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2014) 이후 <블레이즈>는 그가 연출한 네 번째 영화가 됐다.

<첼시 호텔>

배우 이전에 작가를 꿈꾸던 에단 호크의 관심사는 여전히 예술가와 그들의 삶 주변에 있는 듯하다. <블레이즈> 역시 <와일드라이프>와 함께 같은 해 선댄스에서 공개됐는데, 영화는 텍사스의 전설적인 컨트리 가수 블레이즈 폴리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대중적이지는 못했으나 일부 마니아들의 환호를 받았던 가수 블레이즈 폴리는 알코올 중독으로 불화를 몰고 다니다 1989년 총격으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아티스트다. 에단 호크는 <블레이즈>의 연출, 제작, 각본을 모두 겸하며 다시 한 번 예술가의 삶을 조명한다. 블레이즈 역은 포크 뮤지션 벤 딕키가 맡아 열연했다. 앨리아 쇼캣, 샘 록웰, 조쉬 해밀턴도 함께 주연을 빛냈다.

<블레이즈>

한 북미 평론가는 <블레이즈>가 “<인사이드 르윈>을 이을 최고의 음악영화”라며 “폴리의 대사를 통해 훌륭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에단 호크를 확인할 수 있다”고 격찬했다. 호크는 <비포>시리즈의 시나리오에도 참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 두 번이나 후보에 오른 바 있어 <블레이즈>가 보여줄 스토리텔링에 단연 기대가 모인다. 적은 지표이지만 이 영화도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100%를 기록하고 있다.


브래들리 쿠퍼

<어 스타 이즈 본>

브래들리 쿠퍼

브래들리 쿠퍼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너구리 ‘로켓’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다. 삼십 대 후반의 나이에 뒤늦게 빛을 본 배우 브래들리 쿠퍼는 <행오버> 시리즈로 크게 인기를 얻었으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으로 본격적인 할리우드 배우의 반열에 올라선다. 이 영화에서 그는 아내의 외도로 정신질환을 얻은 남자를 연기해 생애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됐다. 감독이었던 데이빗 O. 러셀은 이후로도 그와 두 편의 작품을 함께했는데 <아메리칸 허슬>(2013), <조이>(2015)에서 연이어 주연을 꿰차며 감독과의 두터운 신뢰를 쌓았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쿠퍼는 곧 레이디 가가와 함께한 음악 영화 <어 스타 이즈 본>으로 연출가로서의 역량을 선보일 예정이다. 1937년 작인 <스타 탄생>(A Star Is Born)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리메이크 영화로, 권태에 빠진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가 무명가수를 발견해 스타로 만들지만 스타의 자리에서 밀려난 그는 결국 자살을 결심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이미 여러 번 리메이크됐다. 유명 배우의 눈에 띄어 스타가 된 가수 ‘에스더’역을 주디 갈랜드, 자넷 게이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등의 명배우가 열연했다.

<어 스타 이즈 본>

브래들리 쿠퍼의 <어 스타 이즈 본>은 원작의 플롯과 흡사하게 전개되지만 유명 배우가 무명 가수를 발굴하는 것이 아닌, 유명 가수 잭슨이 무명 가수 앨리를 발굴하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메인 캐릭터가 될 앨리 역할에 팝의 여왕 레이디 가가가 출연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어 스타 이즈 본>은 공식 예고편을 공개하며 북미 10월 5일 개봉을 확정 지었다. 첫 연출작인 만큼 기대와 우려는 피할 수 없겠지만 공개된 예고편에 긍정적 기대가 쏟아지는 양상이다.


크리스토프 왈츠

<조지타운>

크리스토프 왈츠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 한 편으로 모든 커리어를 종결지은 배우 크리스토프 왈츠도 감독 데뷔를 한다. 그는 연극 무대에서 시작해 연기파 배우로 이름을 떨쳤으나 스크린에선 무명에 가까운 시기를 보냈다. 왈츠의 커리어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해 각종 영화제의 남우조연상을 싹쓸이했다. 가히 조연이 주연보다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낸 영화의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타란티노는 자신이 만든 캐릭터 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왈츠가 맡았던 '한스 란다'를 가장 아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왈츠는 로만 폴란스키의 <대학살의 신>(2011), 팀 버튼의 <빅 아이즈>(2014), 샘 멘데스의 <007 스펙터>(2015), 알렉산더 페인의 <다운사이징>(2017)까지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명감독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그런 그가 이번엔 연출과 주연을 겸한 <조지타운>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조지타운>은 2011년 워싱턴에서 나이 많은 사교계의 명사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알브레트 무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결혼 당시 무스의 나이는 26이었고, 부인은 71세였다. 이 사건은 사회로부터의 인정욕구에 집착한 한 아웃사이더가 벌인 참극이었다. 크리스토프 왈츠 본인이 남자 주인공 모트를 연기하고,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나이 많은 부인 엘사를, 아네트 베닝이 부인의 딸 아만다를 연기했다.

<조지 타운>

크리스토프 왈츠는 <조지타운>에서 첫 연출가 데뷔를 하는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나는 카메라의 앞과 뒤에서 동시에 존재해야 했다.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연기를 함과 동시에 큐사인과 컷사인까지 내려야 했던 감독 겸 배우의 난감함에 대해 왈츠는 쉽지 않은 경험이었음을 털어놓았다. 어쩌면 <조지타운>이 그가 연기와 연출을 겸한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지타운>으로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하게 된다면 그는 고단했던 기억을 잊고 다시 카메라의 앞과 뒤에 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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