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구, 배성우, 남주혁, 조인성(왼쪽부터).

안시성 전투는 지금으로부터 1400여년 전, 동아시아 역사에서 가장 기록할 만한 승리의 역사다. 성의 입지를 활용한 지략과 전술로 6배에 달하는 당의 군대에 맞서 승리로 이끌었으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방불케 하는 전투였다. 당시 당 태종이 이끄는 대군에 맞서 싸운 안시성 성주가 양만춘(조인성)이었다. 88일간 펼쳐진 치열한 전투를 2018년의 스크린에 재현하기까지 지난겨울 7개월간의 촬영과 22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다. 스크린에서 조명되지 않았던 고구려 전투를 경험하게 만드는 스펙터클한 촬영과 미술의 완성도가 135분이라는 러닝타임을 잊게 만든다. 특히 안시성의 재현과 네 차례에 걸친 전투 신 구현으로 드러난, 사람의 목숨이 나뒹구는 전쟁터 한가운데서도 ‘싸움’이 아닌 ‘평화’를 지키려 했던 성주의 철학은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시성>의 ‘전쟁 같은’ 촬영에 뛰어든 조인성, 남주혁, 배성우, 엄태구 배우를 만났다. 전장의 한가운데서, 함께 작업한 배우, 선후배의 관계망으로 더 돈독해진 그들, 스튜디오에서도 시종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안시성

감독 김광식

출연 조인성, 남주혁, 박성웅

개봉 201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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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성·남주혁 - 전쟁 같던 촬영의 추억
사물(남주혁)은 ‘고구려의 반역자’로 지칭되는 양만춘(조인성)을 고구려 왕 연개소문(유오성)의 명령으로 처단하러 간다. 그런데 가까이서 본 양만춘에게 무사로, 또 인간으로 매혹된다. 양만춘은 사물의 의도를 알고도 그를 옆에 둔다. 둘의 이 규정할 수 없는 관계는 큰 전투의 흐름 속, <안시성>의 드라마를 만들어주는 절대적인 열쇠다. 김광식 감독은 “사물에게서 어린 양만춘의 모습이 비치도록, 서로가 서로를 투영하도록, 그래서 조인성을 연상하게 하는 남주혁을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쌍화점>(2008)에서 고려 말 호위무사 홍림으로 나왔으니, 사극은 10년만의 출연이다. 

조인성_ 사극이 부담스럽다기보다는 규모가 부담스러웠다. 양만춘과 조인성의 매칭에 대한 물음표와 편견 속에서 시작했고, 나 역시 ‘내가 맞을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컸다. 그걸 보고 한재림 감독(전작 <더 킹>(2016) 연출)이 “해야 할 때가 됐다” 하시더라. (웃음) ‘한번은 겪어야 될 산이다’라는 각오로 했다. 해보자, 안 되면 죽자 했다. 

남주혁_ 
형이 해서 다행이다. 대본 받고 너무 설레는데, 인성이 형이 나오는 영화에 참여할 수 있어서였다. 스크린은 처음인데 형이 옆에서 조언을 많이 해주셨고, 그 바람에 나도 모르게 질문을 너무 많이 했다. (웃음) 작품을 떠나 배우로,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까지 이번에 정말 많이 배웠다. 

조인성_ 
내가 (정)우성이 형, (이)정재 형 보면서 막연한 부분을 해소하면서 온 것처럼 나도 주혁이한테도 그런 역할을 해주고 싶다. 전투 신을 제외하고 초반에 감정 신을 몰아서 찍어야 했다. 5회차엔 감을 확실히 잡아야 해서 서로 도움을 주면서 빨리 적응을 해나갔다. 주혁이가 스크린은 처음이지만, MBC 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를 보면서, 눈에 띄는 배우라고 생각했었다. 

-양만춘을 죽이러 외부에서 온 사물은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을 들여다보는 ‘창’과 같은, 안시성 전투의 화자로서 중요한 역할이다. 

남주혁_
 사물은 실전 경험이 많지 않은 태학생도다. 그가 보기에 5천명의 안시성 사람들이 20만 당나라 대군과 싸우겠다고 나서는 건, 그야말로 ‘질 게 뻔한 싸움을 왜 하지’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가 안시성 사람들과 동화되어가고 변화한다. 그 입체적 변화를 가능하게 한 게 그가 옆에서 바라본 양만춘이라는 존재였다. 전투하기 전 연설 장면에서, 사물이 양만춘의 등 뒤에 서 있는데, 그 뒷모습만 보더라도 성주의 아우라가 느껴지더라. 

-사람들을 살피는 따뜻한 인성, 유머러스함, 그리고 장수로서의 지략. 양만춘은 그야말로 완벽한 군주다. 여러모로 오래 지켜본 배우 조인성과 닮았다. (웃음) 


조인성_
 감독님이 나를 투영했다고 하시더라. (웃음) 그래서 이질감 없이 연기할 수 있었다. ‘비범함’이란 게 무언지 그 부분에 대한 논의를 많이 했다. 연개소문이나 당 태종 모두 카리스마가 앞서는데, 양만춘까지 카리스마로 격돌하면 안 되겠더라. 좀더 자유로운 인물로 만들어보자. 연개소문과 등져야 했던 인물인 만큼 야망에 차 있기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인물로 만들어보자 했다. 

-네번의 큰 전투가 스토리를 전개시킨다. 지난 겨울 5개월간의 ‘고통스러운’ 촬영을 마쳤다. 

남주혁_ 
액션스쿨을 정말 열심히 다녔다. 칼 휘두르고 합 맞추는 연습을 몇달간 했다. 현장에서는 무조건 처절하게 싸웠다. 전투 장면이 많다보니 어느 때는 진짜 전쟁터에 나가 있는 것 같고, 또 전쟁 게임을 정말 좋아하는데 찍는 동안 정말 게임을 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더라. 

조인성_ 
몸쓰고 고생하는 건 어떤 작업이든 마찬가진데, 이번에는 컨셉이 달랐다. 한 구간을 넘어갈 때마다 심혈을 기울였다. 고대사를 연기한다는 데서 오는 무게감이 꽤 크더라. 안시성 전투는 동아시아 전쟁사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를 이끈 전투이며, 양만춘은 그 전투의 수장인데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언성 히어로’(unsung hero)였다. 명백히 존재했던 실존 인물인 그를 알리는 데 대한 책임감도 느껴졌다. 

남주혁_ 
3차전은 야간전투였다. 정말 당나라가 무시무시하게 진격해오고, 그 와중에 성주인 양만춘이 칼을 휘두르는데, 전율이 느껴졌다. 편집본을 보고서는 “형, 정말 죽이는데요” 하면서 박수를 쳤다. (웃음) 정말 다른 영화에서는 보지 못한 새로움이었다. 

-대작의 개봉을 앞두고 어떤 생각을 하나.

조인성_ 
<안시성>에 대한 호응이 소재의 폭을 더 넓혀주리라 믿는다. 고구려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매력적인 영화이고, 그렇게 남길 바란다. 

남주혁_ 
이제 시작인데,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맡아서 책임감이 크다. 주어진대로 열심히 하자, 말로만이 아니라 정말 최선을 다하자 하는 마음이다. 이번 현장이 그걸 가르쳐줬다. 


배성우·엄태구 - 쉼 없이 말 달리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작품.” <안시성>이 필모그래피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묻자, 배성우는 이렇게 답했다. 영화 개봉은 잠시 동안이지만, 오랫동안 함께할 동료를 얻는 건 그처럼 많은 영화에 출연한 배우에게도 흔치 않은 기회라는 말과 함께. 당의 20만 대군에 맞서 안시성을 지켜내는 사람들의 투쟁을 다룬 영화 <안시성>은 팀플레이가 무엇보다 중요한 영화였다. 성주 양만춘(조인성)의 부관 추수지를 연기하는 배성우와 안시성을 지키는 기마대장 파소로 분한 엄태구는 ‘팀 안시성’의 밑그림을 완성하는 중요한 퍼즐이다. 그런 그들이 혹독하지만 끈끈했던 <안시성>의 추억을 말한다.

-<안시성>은 전투 장면이 주가 되는 사극 액션영화다. 최근의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설정인데. 

배성우_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다. 안시성 전투라고 하면 우리 민족의 역사 가운데서도 가장 호쾌했던 승리의 전투잖나. 드라마보다 전투에 몰입하는 사극이라는 점이 흥미롭고도 신선했다. 

엄태구_
 나도 선배님과 비슷한 이유로 출연을 결심했다. 액션 연기가 힘들 수는 있겠지만 찍는 과정이 재미있을 것 같았고, 멋진 장면으로 완성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더라. 개인적으로는 악역이 아니라 좋았다. 기존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꼭 도전해보고 싶었다. 

-영화에서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을 보필하는 부관 추수지, 기마대장 파소 역을 맡았다. 각자의 캐릭터에 대한 첫인상은. 

배성우_ 
사실 처음 봤을 때는 밋밋했다. 전투에 몰입하는 영화이다보니 개인의 서사가 많지 않다. 추수지의 경우 개인적인 특징이 전혀 없는 인물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그러다보니 더더욱 이 인물을 어떤 캐릭터로 만들지 고민을 많이 했다. 감독님, (조)인성이와 많은 얘기를 나누며 추수지라는 인물을 만들어나갔다. 특히 인성이와는 <더 킹>을 함께하며 자주 보는 사이가 됐는데, 그런 개인적 친분이 영화에도 투영되지 않았나 싶다. 격의 없는 사이라면 서로 투닥거리기도 하고, 계급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를 이해해주잖나. 양만춘과 추수지의 관계도 그럴 거라고 봤다. 

엄태구_
 파소는 드라마틱한 사연을 가진 인물인데 스포일러가 될까봐 말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기본적으로 우직하고 따뜻한 인물이다. 능글맞은 모습도 있는 것 같다. 설현씨와 함께 연기하는 장면이 꽤 있는데, 서로 낯을 많이 가려서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굉장히 올곧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추수지는 창검에, 파소는 기마에 능하다. 이처럼 인물마다 액션 컨셉이 뚜렷한데 준비는 어떻게 했나. 

배성우_
 우리 영화는 슬로모션으로 액션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다. 천천히 보여줄수록 관객은 디테일에 집중하게 되니까, 가짜는 금방 들통나게 되어 있다. 최대한 리얼한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했다. 창은 휘두르는 자세가 중요해서, 멋진 자세를 위해 연습을 많이 했는데 대역을 맡은 친구의 시범포즈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겠더라. 그래도 모든 장면을 대역 없이 스스로 연기했다는 점은 뿌듯하다. 

엄태구_
 기마 대장 역할이기에 말 타는 연습을 많이 했다. 현장에서 쉴 때도 안장 위에 앉아 있거나 말과 함께 산책하는 등 기마에 익숙해지려는 노력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말을 탄 채로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가 떨어지면 달리기 시작하는데, 맨 앞에서 달리는 희열이 엄청나더라. (웃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안시성>은 모두의 모습이 한 화면에 걸리는 전투 장면이 많다. 팀워크가 무척 중요했을 것 같다. 

배성우_
 우리끼리 “<안시성>은 ‘힘듦’이 장르”라는 농담을 했다. 혹독한 날씨, 먼지와 불, 바람이라는 외적 요소들 때문에 다들 많이 힘들었을 거다. 그런데 참 감사하게도 배우들 성격이 너무 좋았고 현장에서 빠르게 친해졌다. 마침 <안시성>이 똘똘 뭉쳐서 적을 물리치는 이야기잖나. 우리의 끈끈한 팀워크를 영화 속 모습으로 연결시켜보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극중에 전투에서 이긴 뒤 맛있는 걸 먹으며 웃고 떠드는 장면이 있다. 대본이 따로 없어서 배우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는데 감독님이 그 모습을 그대로 영화에 쓰셨더라. 옛날 고구려 사람들도 딱 우리 같지 않았을까. 지지고 볶고 웃고 떠들고. 

-차기작 계획도 궁금하다.


배성우_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촬영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만났던 인물 중 가장 특징이 없다 싶은 인물이 추수지였는데, 그보다 더 특징이 없는 게 특징인 인물을 맡았다. (웃음) 그래서 어렵다. 강렬한 임팩트가 있는 인물보다 가장 일반적인, 보통 사람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더 어렵더라. 

엄태구_ 
<뎀프시롤>(가제)을 촬영했다. 장구 장단에 맞춰서 복싱을 하는 ‘판소리 복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특이하고 기발한 영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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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화정 장영엽·사진 오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