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촉각과 청각, 유려한 감각의 총화
<이투마마>(2001)를 다시 보다가 10여년 만에 놀라운 발견을 했다. <이투마마>는 알폰소 쿠아론이 멕시코에서 데뷔작 <러브 앤드 히스테리>(1991)를 찍고, 할리우드로 건너가 원작이 있는 영화인 <소공녀>(1995)와 <위대한 유산>(1998)을 만든 뒤, 다시 멕시코에서 멕시코 배우들과 찍은 그의 네 번째 영화다. 섹스에 빠진 10대 청년 훌리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와 테녹(디에고 루나)이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루이사와 ‘천국의 입’이라는 해변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인데, 여행하는 동안 자동차는 언제나 멕시코의 풍경을 끼고 달린다. 여행의 어느 지점에선가 테녹은 길가의 표지판을 보고 잠시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말한다. “여긴 내 보모의 고향 동네야.” 어쩌면 편집해도 무방한 대사와 장면. 그런데 좀더 되감기를 해보면, 여행을 떠나기 전 테녹의 집에서 테녹에게 샌드위치를 건네는 보모이자 가정부의 모습이 놀랍게도 <로마>(2018)의 입주 가정부 클레오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투마마>에서 가정부는 단역으로 딱 한신 등장한다. 그리고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의 유년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며, 자신을 길러준 입주 가정부 리보 로드리게즈(영화 속 클레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로마>의 싹이 오래전부터 발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흠칫 놀란 건 기억과 정체성의 깊은 뿌리를 확인한 때문일 것이다.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이 천착해온 영화적 재료들이 뜨겁게 녹아든 영화다. 멕시코인의 정체성이 전면에 드러난 작품이고, 역경을 극복하는 놀라운 여성이 주인공이며, 계급과 차별과 폭력의 메시지가 가득하고, 정치적 상황을 직시하며, 미학적 실험을 밀어붙이는 영화라는 점에서 그렇다. 미학적이고 도덕적이며 자연적인 요소를 주무르는 한편 정치적인 알폰소 쿠아론의 솜씨는 언제나 유려하다. <로마>가 특별한 건 가장 개인적인 기억에 기댄 이야기를 비상업적이라 치부되는 도구로 풀어냈지만 그럼에도 감각과 감성에 호소하는 기운은 더욱 짙어졌다는 데 있다. 언급했다시피 <로마>는 1970년대 초반, 멕시코의 한 중산층 백인 가정에서 입주 가정부로 일하는 멕시코 원주민 출신의 클레오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다. 거기에 가족을 버리고 떠난 남편 때문에 눈물을 훔치지만 이내 4명의 어린 아이들을 건사하는 엄마 소피아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임신했다는 말에 줄행랑을 치는 것도 모자라 창끝까지 들이미는 남자친구와 달리 소피아와 아이들의 할머니는 클레오를 (비난하거나 내쫓지 않고) 보듬는다. 영화의 포스터 이미지이기도 한 바닷가 장면은 상징적이다. 바다에 빠졌던 아이는 “클레오가 우릴 구해줬어요”라고 말하고, 그 자리에 있던 아이들과 여자들은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서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서로를 꼭 껴안으며, “우리는 널 아주 많이 사랑해”라며 아픔을 겪은 클레오를 위로한다. 혼자가 된 여자들이 서로를 껴안는 모습은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비겁하거나 극악한 남자들의 모습과 대비된다.
멕시코 중산층 백인 남성으로서 알폰소 쿠아론의 정체성은 영화 곳곳에 반영된다. 계급에 대한 이야기는 <소공녀> <위대한 유산> <이투마마> 등에서 반복되고, 자신을 길러준 여성들에 대한 미안함과 존경심은 이를 테면 결국 생존의 대상이 여성인 영화들, <칠드런 오브 맨>(2006)과 <그래비티>(201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새 생명의 탄생이 끊긴 불임 상태의 인류가 이민자 분리 정책을 펴는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임신하는 건 흑인 이민자 여성이며, <그래비티>에서 우주라는 절대 고독에 홀로 남겨졌다 끝내 살아서 지구로 귀환하는 이도 여성 우주비행사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생존의 과정엔 인간적 유대감이 깃들어 있다. 외로움을 공유하고 부족함을 보완하는 인간적 유대감은 알폰소 쿠아론 영화가 보여주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사회와 현상을 똑똑히 직시하게 만드는 건 감각적 촬영과 사운드다. 감각의 영역에서 알폰소 쿠아론은 일찍이 독보적이었다. <위대한 유산>의 분수대 키스신에서 두 주인공의 말랑한 혀가 닿을 때의 짜릿함처럼, 시각적 이미지가 촉각을 자극하는 경우는 예사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2004), <로마>를 제외하고 언제나 함께 손발을 맞춰온 촬영감독은 멕시코의 영화학교(C.U.E.C, Centro Universitario de Estudios Cinematográficos)에서 촬영전공으로 만난 동료 에마누엘 루베스키다. 에마누엘 루베스키에게 아카데미 촬영상을 안겨준 <그래비티>의 경우, 숨이 멎을 듯 아름다운 지구를 지구 바깥에서 굽어보거나 인간의 통제력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절대적 위급 상황을 급박하고도 초연하게 보여줌으로써 극강의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알폰소 쿠아론이 직접 카메라를 든 <로마>에선 직관적 표현으로 너울대는 환상적인 장면들이 마음을 훔친다. 치우지 않은 개똥이 드문드문 쌓인 차고에 고급 대형 세단을 우겨넣듯 주차하는 모습만으로도 고조되는 긴장감, 넓은 1층 거실의 불을 하나씩 소등하는 장면을 360도 팬으로 보여줄 때 인지하게 되는 공간감과 우아하게 춤추는 카메라의 신비로움, 호텔의 샤워커튼 봉을 뜯어 나체로 무술 시범을 보이는 빈민가 출신 남자친구의 모습과 정신이 육체를 움직인다며 기이한 복장으로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무술 시연을 하는 수련자의 모습이 주는 기이함들. 네오리얼리즘과 마술적 리얼리즘사이를 유영하는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감정을 가지고 꿈틀댄다. 더불어 흑백은 무엇이라도 상상 가능한 가장 다채로운 컬러가 된다. 또한 새소리와 강아지 소리, 바람 소리와 구호 소리, 자동차 경적과 사람들의 말소리가 이미지에 선명하게 덧입혀진다. 이미지를 보완하는 현실의 소리는 1970년대 멕시코 로마로 시공간을 이동하는 체험을 ‘완성’한다.
강렬한 영화적 체험을 선사하는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기억하는 과거이자 직시했던 현실이고 감각해온 삶의 총합이다. “<로마>는 개인적으로 언젠가는 꼭 만들고 싶은 작품이었고, 꼭 해야만 하는 작업이었다. 외국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고 외국어로 여러 편의 영화를 연출했지만, 내 감성의 뿌리는 멕시코에 있다. 해외에서 작품 활동을 할 땐 언어의 전환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데 <로마>에선 통역이라는 필터 없이 매우 직관적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내가 느끼는 바를 그대로.”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이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가장 익숙한 언어(예술적 언어를 포함해)로 풀어낸 작품이다. <로마> 이후 그의 직관의 더듬이는 어디로 향할까. <로마>로 향하는 길을 걷고 나니 <로마>에서 뻗어나갈 길이 궁금해진다.
<로마>는 언젠가 만들었어야 할 영화다
지난 12월21일, 알폰소 쿠아론 감독과 한국 기자들의 영상 기자회견이 열렸다. 알폰소 쿠아론은 한국 기자들에게 <로마>를 넷플릭스로 보았는지 극장에서 보았는지 묻고는 극장에서 봤다는 대답이 많자 행복하다며 환히 웃어 보였다.
<로마>는 넷플릭스 방영을 전제로 한 작품이지만 반드시 극장에서 체험해야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상황이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극장에서 보면 좋은 영화를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통해 만들었다는 사실이 나 역시 재밌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를 설명하면 <로마>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이고 제작 방식부터 극장 개봉까지 신경 써준 플랫폼이 넷플릭스이기 때문이다. 관객이<로마>를 극장에서 보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보다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즐기려면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이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로마>는 영어가 아니라 멕시코 언어로 만든 흑백영화다. 이런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보다 쉽게 작품에 접근할 수 있게 하려면 넷플릭스 같은 신규 플랫폼이 필요하다. 또 10년, 20년이 지나서도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반영한 영화인데, 주인공을 입주 가정부 클레오로 설정했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클레오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다. 그녀의 상처와 나의 상처, 나아가 한 가정의 상처, 멕시코라는 나라의 상처 그리고 전 인류의 상처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캐릭터가 클레오였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존경하는 감독이다. 그렇다고 레퍼런스로 삼거나 오마주하진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다르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럼에도 내 영화적 유전자를 무시할 순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로마>를 두고 네오리얼리즘을 운운하는데, 흑백이 아니라 컬러로 찍었어도 그렇게 느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만의 새로운 표현을 시도했지만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진 않다. 한번은 편집실에서 편집기사가 무술 장면을 편집하다가 이런 얘길 하더라. “이 장면에선 페데리코 펠리니 느낌이 많이 나는데?” 그래서 아예 펠리니 영화의 느낌이 나게 가는 바람이 부는 효과를 넣자고 했다. (웃음)
<그래비티> <칠드런 오브 맨>의 마지막 장면에도 바다가 나온다.
최근에 이런 얘기를 또 들었다. 내 영화엔 늘 바다가 나온다고. <위대한 유산>에도 바다가 나오고. 그런데 의도적으로 엔딩에 바다를 등장시키는 건 아니다. <그래비티>와 <칠드런 오브 맨>의 경우 이야기 전개상 필요한 장면이었다.
민주화 물결이 거세던 1970년대를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는 뭔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의 모습과 유혈 사태를 담은 장면을 보면서 한국에도 비슷한 역사가 있어 시대적 풍경이 가깝게 느껴졌다.
개인적인 삶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고, 그 이야기가 1970년대 초반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집을 떠나면서 가정이 깨지는 이야기에서 시작하지만 개인의 상처뿐 아니라 멕시코의 상처를 담아내기 위해서 사회의 갈등상도 같이 표현했다. 독재정권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있다는 점에서 멕시코와 한국 사이의 감정적 유대가 있는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유사한 특징 중 하나는 사회 고위층의 비리가 많다는 거다. 사회 고위층의 비리와 부패는 한국영화에서도 반복되는 테마인 것 같다.
씨네21 www.cine21.com
글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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