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어떤 영화들에게 미래로 선택받은 연도였다. 꼭 아주 오래된 영화들만 그런 것은 아니었고, 21세기에 만들어진 영화들도 종종 2019년의 지구를 상상했다. 그런데 영화 속에 그려진 2019년의 지구는 하나같이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미래였다. 마침내 도달한 2019년 오늘의 인류. 우리는 이 영화들을 두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안도일까, 우려일까?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해리슨 포드, 룻거 하우어, 숀 영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은 2019년 11월의 로스앤젤레스다. 여기엔 지구인과 레플리컨트,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복제인간인 레플리컨트는 주로 병력에 이용됐고 사람보다는 제품으로 취급됐다. 스모그로 뒤덮인 도시의 날씨는 늘 비 아니면 구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이주한 사람들도 늘어 갔다. 그러나 타 행성의 식민지화에 투입된 레플리컨트들이 반란을 일으킨 사건 이후, ‘블레이드 러너’라 불리는 경찰들에게 레플리컨트를 사살하는 임무가 내려진다. 그리고 이 미션은 ‘사형’이 아닌 ‘제거’로 불렸다.

레플리컨트는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하지만 그 합리성과 민첩성은 인간 이상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인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레플리컨트를 구별하기 위해 인간은 ‘인간성’을 테스트하는 수십 문항의 질문지를 만들어 냈고, 동공의 움직임을 통해 감별해 냈다. 하지만 수명이 4년 밖에 되지 않는 레플리컨트는 더 오래 살기를 갈망하고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인간과 갈등을 빚게 된다.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복제인간을 대하는 인간의 비인간성 앞에 ‘인간다움’의 의미는 흐릿해진다.


아키라

アキラ, 1988

감독 오토모 가츠히로

출연 이와타 미츠오, 사사키 노조무

재패니메이션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린 <아키라>의 배경 역시 2019년이다. 제3차 세계대전 이후 도쿄는 폭발해 버렸고, 재건된 도시 ‘네오도쿄’는 혼란으로 가득 차 있다. 어느 날 밤 오토바이를 탄 폭주족 테츠오는 늙은 아이의 모습을 한 초능력자와 충돌해 이상한 폭발을 겪는다. 정부군에게 끌려가 알 수 없는 검사를 받은 테츠오. 과학자들은 테츠오가 ‘아키라’의 힘을 능가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제3차 세계대전의 폭발을 일으킨 초능력 비밀병기. 그것이 아키라의 정체였다. 그 엄청난 힘을 통제하기 위해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왔다. 테츠오가 그보다 더한 힘을 가지게 된다면, 네오도쿄는 강력한 무기를 얻은 동시에 가장 위험한 폭탄을 안은 셈이었다.

하지만 <아키라>가 그려 놓은 세계관은 미래의 것이라기 보다 과거의 상징에 가깝다. 말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겪었던 히로시마 원폭의 비극은, <아키라>가 설정한 제3차 세계대전의 대폭발과 겹쳐진다. 그뿐만 아니라 <아키라>에 등장한 올림픽 주경기장의 모습은 원폭 이후 국가 재건을 위해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개최했던 일본을 연상시킨다. 감독 오토모 가쓰히로는 전쟁 이후 버블 경제를 맞이한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고 자랐다. 이는 다시 작중 ‘네오도쿄’의 혼란기로 묘사된다.


아일랜드

The Island, 2005

감독 마이클 베이

출연 이완 맥그리거, 스칼렛 요한슨

재앙이 닥쳐 오염된 지구. 살아남은 일부의 인류는 대형 지하 공간에서 살아간다. 수천 명의 사람들은 완벽히 통제된 이곳에서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매일 아침 소변으로 건강 상태가 체크되고, 어쩌다 나트륨 과다 판정이라도 받을라 치면 바로 맞춤형 식단을 제공받는다. 여기 살고 있는 인류의 유일한 꿈은, 지구에서 유일하게 오염되지 않은 희망의 땅 ‘아일랜드’에 추첨돼 나가는 것이다. 시스템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곳은 유토피아다. 그러나 링컨 6-에코(이완 맥그리거)의 머릿속에 문득 싹튼 의문은 이 세계의 균열을 가져온다. 왜 그깟 베이컨 하나 마음대로 먹지도 못하는지. 왜 이렇게까지 통제된 세계에 살고 있는지.

<아일랜드>는 복제인간의 잿빛 미래에 관한 영화다. ‘링컨 6-에코’라는 낯선 이름은 링컨의 복제품에게 부여된 이름이었던 것이며, 진짜 인간에게 신체 부위를 제공하기 위해 길러진 이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기회의 땅 아일랜드는 죽음을 의미했다. <아일랜드>가 개봉한 2005년 당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가 세계적으로 화제였다. 제작사는 그 이유 때문에 개봉을 앞당겼고 1800억 원을 훌쩍 넘긴 수익을 달성했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대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는 조작으로 밝혀졌다.


더 로드

The Road, 2009

감독 존 힐코트

출연 비고 모텐슨, 샤를리즈 테론, 코디 스밋 맥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 소설가 코맥 매카시. 그의 다른 소설 <더 로드>가 동명 영화로 탄생했다. <더 로드>의 2019년에서 인류는 멸망 직전에 있다. 앞서 소개한 세 편의 영화에 보였던 과학 기술의 진보는 이 세계에 없다. 오직 잿빛 세상. 동물도 식물도 보이지 않는 이곳엔 전기도 흐르지 않으며, 식량 고갈로 사람들은 죽어갔다. 아버지(비고 모텐슨)와 아들(코디 스밋 맥피)이 남쪽을 향해 길을 떠나고 있다. 약속의 땅이 있다는 보장도 없지만 막연한 희망으로 정처 없이 걷고 있다.

<더 로드>의 세계는 어떤 미래적인 장치 하나 없이 회색 톤으로 그려졌기에 어떤 상상보다도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온다. 아버지와 아들은 남쪽으로 가는 여정 중에 끔찍한 무리를 보게 된다. 먹을 것이라곤 없는 이곳에서 인간은 인간을 사냥하고 있다. 인간 사냥꾼들로부터 가까스로 벗어난 부자는 다시 길을 떠돌다 어느 빈 집에서 추위를 피하게 되는데. 집을 둘러보던 이들은 식량으로 잡혀온 인간들의 창고를 발견한다. 디스토피아를 다룬 영화 가운데서도 가장 섬뜩하고도 현실감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는 <더 로드>. 영화 속 2019년으로부터 발견한 공포 속에서 우리는 안도감이 아닌 위기를 읽어내야 할 것이다.


씨네플레이 심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