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까. 우리가 처음 본 영화를 떠올려보자. 대부분은 영화가 재밌어서, 현실과 다른 판타지가 있어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건 설렘을 동반하는 즐거움이 있다. 아마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재밌으려고, 현실을 잠시 잊으려고 영화를 보고 있을 것이다. <아이스>를 보면서 딱 그런 영화라고 생각했다. 영화란 매체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본연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빙판 위에서의 달콤한 로맨스
<아이스>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얼음 위에서 펼쳐지는 로맨스를 그린다. 나디아(아글라야 타라소바)는 어린 시절부터 피겨 스케이팅 선수를 꿈꾼다. 곁에서 그의 꿈을 응원하던 엄마(크세니야 라포포트)가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은 나디아. 피겨 영재학교에서 마주쳤던 샤탈리나(마리아 아로노바) 코치가 그를 학교에 입학시켜준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서툴고 어색했지만, 나타샤는 자신을 믿고 끊임없이 노력해 마침내 피겨스케이팅 간판선수 레오노프(밀로스 비코비치)의 파트너로 발탁된다.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며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는 두 사람. 하지만 나타샤가 부상을 당해 휠체어 신세가 되면서 급격히 레오노프와의 관계가 식어간다.
결국 나타샤는 레오노프의 곁을 떠나 샤탈리나에게 돌아온다. 샤탈리나는 경기 중 폭행으로 퇴출 위기에 놓인 아이스하키 선수 사샤(알렉산더 페트로브)에게 나타샤의 재활 파트너를 제안한다. 실의에 빠진 나타샤와 오직 선수 생활을 위해 재활 파트너가 된 사샤. 첫 만남부터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진심으로 의지하게 된다.
장점을 아는 팔방미인의 매력
이쯤에서 다들 생각할 것이다. ‘로맨스 영화면 결국 나디아랑 사샤랑 잘돼서 꽁냥꽁냥하겠네? 완전 평범한 영화구만.’ 앞 문장은 맞고, 뒤 문장은 틀리다. <아이스>는 로맨스라는 장르에 충실하게 어느 정도 안정적인 전개를 선택한다. 뻔하지만, 그래서 재밌다. 왜? 로맨스 영화의 관객들이 기대하는 게 무엇이겠나. 바로 두 인물이 사랑하는 순간과 과정을 만끽하는 것이다.
<아이스>는 안정적인 전개를 택한 대신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빠르게 진행시킨다. 나타샤의 꿈부터 그의 노력, 실패, 그리고 우연처럼 찾아온 사랑. 이 영화는 그걸 90분이란 짧은 시간에 담아낸다. 요즘 말로 하면, ‘고구마’ 없이 ‘사이다’로 가득하다.
<아이스>는 그 뻔한 전개를 새롭게 느낄 만한 두 가지 요소로 포장한다. 하나는 피겨 스케이팅. 영화에서는 남녀가 호흡을 맞추는 페어 스케이팅에 초점을 맞춘다. 세계 최고였던 한 여성이 좌절을 극복해나가는 성장 드라마와 한 남녀가 서로를 알아가고 마침내 완전히 이해한다는 멜로드라마를 페어 스케이팅을 통해 조합한다. 그리고 위트 넘치고 때로는 환상적이기까지 한 피겨 스케이팅을 스크린으로 만난다는 재미 또한 <아이스> 만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다른 비장의 카드는 바로 뮤지컬이다. 굉장히 진지한, 혹은 잔잔할 것 같은 <아이스>지만 영화를 열고 막을 내릴 때까지, 뮤지컬 장르를 적극적으로 차용해 특별한 경험을 안겨준다. 특히 ‘피겨’ 하면 떠오르는 클래시컬한 음악부터 힙합 장르의 음악까지, 그 장면의 상황과 감성에 적합한 장르로 듣는 재미를 더한다. 음악적 요소가 당연히 필요한 피겨와도 잘 어울리며, 빠른 전개에서 모자랄 수 있는 인물들의 묘사를 뮤지컬 장르로 커버해 빠른 리듬감을 유지한다.
<아이스>는 자신만의 최애배우를 찾는 재미도 있다. 아글라야 타라소바, 알렉산더 페트로브, 밀로스 비코비치는 이번 영화로 처음 한국에 얼굴을 비친 러시아 배우들이다. 앞서 언급했듯 피겨와 뮤지컬, 감정적인 드라마를 오가는 가운데 세 사람의 연기는 그에 걸맞은 경쾌한 에너지를 스크린에 불어넣는다. 특히 나디아를 연기한 아글라야 타라소바는 극중 곱슬머리에 패딩을 껴입은 내추럴한 스타일부터 무대에 서는 피겨 선수의 스타일까지 다양한 이미지를 소화해 누구라도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물론 <아이스>의 장점은 곧 단점이기도 하다. 관계에 대한 진지한 영화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아이스>의 판타지에 오글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을 다루는 좋은 영화는 많아도, 우리의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영화는 점점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아이스>는 그런 점에서, 우리가 잊었었던 영화의 판타지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재밌는 영화로서 추천해보고 싶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