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칼 라거펠트가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클로에, 발렌티노 등을 거쳐 1960년대 중반 펜디를 이끌게 된 라거펠트는 1983년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도 일하면서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까지 전설 같은 행보를 이어나갔다. 라거펠트가 영화계에 남긴 흔적을 돌이키며 그를 추모한다.


출연

라무르

칼 라거펠트의 영화 출연작은 4개다. 가상의 인물을 연기한 건 앤디 워홀의 영화 <라무르>(1973) 하나뿐이다. 파리에 살며 언제나 로맨스를 꿈꾸는 두 미국인 여자를 그린 영화에서 라거펠트는 귀족적인 독일인 칼을 연기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라무르>에 대해 그리 좋은 작품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코미디 <발렛>(2006)과 <할리우>(2011), 줄리 델피가 연출한 <롤로>(2015)는 카메오 출연작이다. 느슨하게 뒤로 묶은 백발, 눈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선글래스, 흑과 백의 수트와 실버 악세서리,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칼 라거펠트의 모습 그대로였다.

발렛

롤로


연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샤넬의 프로모션 일환으로 단편영화를 연출해 내놓기도 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 키이라 나이틀리, 카라 델레바인, 제럴딘 채플린 , 퍼렐 윌리엄스 등 그 시기 샤넬과 연을 맺은 '셀럽'이 출연했다. 그 감각 어디 안 간다 싶을 만큼 예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의상

어두워지기 전에

Juste avant la nuit, 1971

프랑스의 명배우 스테판 오드랑은 칼 라거펠트와 영화의 연결고리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의상 담당자가 미국으로 떠나 새로운 인물을 물색하던 중 한 잡지에서 라거펠트를 발견하게 되면서 오랜 연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당시 남편이었던 프랑스의 거장 감독 클로드 샤브롤이 연출한 <어두워지기 전에>(1971)가 오드랑-라거펠트 듀오의 첫 협업이다. 세 사람은 오드랑과 샤브롤이 헤어지는 1980년까지 <붉은 결혼식>(1973), <비올렛 노지에르>(1978) 등 등 총 네 작품을 함께 했다.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Le Charme discret de la bourgeoisie, 1972

오드랑은 루이스 부뉴엘의 걸작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에서도 라거펠트가 만든 옷을 입었다. 영화의 지독한 유머가 극대화된 저녁 만찬 신에서 입었던, 등이 3개의 삼각으로 뚫린 로우컷 드레스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오드랑은 "프로덕션 매니저의 아내가 촬영 시작부터 그 드레스를 자세히 보고 있길래 촬영이 끝나고 그대로 내가 소장했다"고 인터뷰 했다.


바베트의 만찬

Babettes gæstebud, 1987

스테판 오드랑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덴마크 영화 <바베트의 만찬>까지 라거펠트와의 협업은 계속됐다. 프랑스 혁명 중 남편과 아들을 잃고 덴마크의 해안 마을로 도망쳐 온 프랑스의 일류 요리사 바베트는 서서히 암울했던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마을의 소박한 분위기에 이질적이지는 않되 묵직한 고풍이 느껴지는 의상이 바베트를 더욱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하이힐

Tacones lejanos, 1991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1991년 작 <하이힐>의 초반부는 흡사 샤넬 광고처럼 느껴진다. 15년 만에 엄마를 만나러 온 주인공 레베카(빅토리아 아브릴)는 안경부터 발끝까지 온통 샤넬로 빼입은 채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 내내 샤넬만 입고 나온다. 심지어 백 안의 로고까지 정확히 찍은 장면도 있다. 알모도바르는 18년 후 <브로큰 임브레이스>에서도 페넬로페 크루즈에게 샤넬 수트를 입혔다.


칼라스 포에버

Callas Forever, 2002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 비엔나의 부르크 극장, 잘츠부르크 음악제의 의뢰로 오페라 의상을 작업했던 라거펠트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칼라스 포에버>에도 참여했다. 칼라스가 세상을 떠난 1977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은둔 생활을 접고 오페라 <카르멘>을 영화로 만들게 된다는 가상의 이야기를 다룬다. 라거펠트는 샤넬의 창립자 코코 샤넬의 디자인에서 영감 받은 의상으로 활기를 보탰다.


블루 재스민

Blue Jasmine, 2013

명품으로 휘감고 파티를 즐기는 뉴욕의 상류층이었던 재스민은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고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된다. <블루 재스민>은 제목 그대로 우울한 재스민(케이트 블란쳇)이 완전히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따라간다. 재스민에게 남은 몇 안 되는 자존심 중 하나인 수트가 바로 라거펠트가 디자인 한 샤넬 제품이다. 퉁퉁 부은 눈을 하고 홀로 벤치에 앉은 재스민과 어쩐지 확 낡아진 듯한 수트가 마치 한 몸처럼 보였다.


라거펠트의 드레스를 입고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들

줄리안 무어

마고 로비

니콜 키드먼

자넬 모네

제니퍼 로페즈

카메론 디아즈

카라 델레바인

커스틴 던스트

페넬로페 크루즈


샤넬 광고 속 배우들

크리스틴 스튜어트

마고 로비

카라 델레바인

다이앤 크루거

블레이크 라이블리

키이라 나이틀리

틸다 스윈튼


문동명 /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