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잠!>

<샤잠!>은 과연 DC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DC 확장 유니버스’(DCEU)의 성적이 그다지 신통치 않은 상황에서 <원더우먼>과 <아쿠아맨> 등 최근 스탠드얼론 작품들이 힘을 발휘해 간신히 체면치레를 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슈퍼히어로가 출격한다. 원래는 ‘캡틴 마블’로 불리던 샤잠이 바로 그 주인공으로, 국내에선 다소 생소한 캐릭터지만 1939년부터 시작된 나름 유구한(그렇지만 기구하기도 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슈퍼히어로다. 슈퍼맨과 유사 시비에 얽혀 한동안 연재도 중단되고, 기나긴 법정 다툼 속에 자신의 이름도 마블에 빼앗기며, 결국 DC에 병합되는 수모도 당하지만, 한때는 슈퍼맨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던 작품이었다.

코믹스의 샤잠


<빅>과 <슈퍼맨>의 만남, 샤잠!

<샤잠!>

샤잠(SHAZAM)은 각 신들의 이니셜에서 따와 만들어진 주문이다. S는 솔로몬의 지혜, H는 헤라클레스의 힘, A는 아틀라스의 체력, Z는 제우스의 권위에 해당하는 번개, A는 아킬레스의 용기, M은 머큐리의 스피드. 14살 ‘빌리’가 이 여섯 개의 힘을 가진 슈퍼 영웅으로 변신해 세상의 7대 죄악과 결탁한 ‘닥터 사비나’와 대적한다는 게 주된 골자다. 비록 샤잠은 <저스티스 리그>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기획되던 아이템으로, 윌리엄 골드먼을 비롯한 여러 작가들을 통해 수많은 각색이 이뤄졌고, 샘 레이미나 피터 시걸이 연출 하마평에 오른 적도 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낙찰된 건 스웨덴 출신의 데이비드 F. 샌드버그였다.

<샤잠!> 연출을 맡은 데이비드 F. 샌드버그

그는 유튜브에 공개한 일련의 호러 단편들로 유명세를 얻었는데, 그 중 <라이트 아웃>이 제임스 완의 눈에 띄며 장편 감독으로 입봉한다. 컨저링 유니버스의 애나벨 속편 <애나벨: 인형의 주인>이 연이어 흥행에 성공하며 실력을 인정받았고, 제임스 완의 뒤를 이어 전격적으로 DC에 영입된다.(이런 이유에서 <샤잠!> 쿠키에 <아쿠아맨>과 관련한 농담이 나온다) 물론 <샤잠!>의 제작자가 컨저링 세계관을 총괄하고 있는 피터 샤프란이란 점도 한몫했다. 미드 <척>으로 알려진 재커리 레비가 타이틀 롤을 거머쥔 이 작품은 <빅>과 <슈퍼맨>이 합쳐진 것 같다는 평과 함께 최근 다크하던 DC세계관에 모처럼 밝은 분위기를 선사하는 가족물이란 반응이 주를 이룬다.

한스 짐머 사단의 유망주, 벤자민 월피쉬

벤자민 월피쉬

<샤잠!>의 음악은 데이비드 F. 샌드버그 감독과 데뷔작부터 줄곧 함께 해온 벤자민 월피쉬가 맡았다. 현재 한스 짐머 사단에서 가장 강력한 푸쉬를 받고 있는 그는 2017년 <그것>과 <블레이드 러너 2049>을 통해 상업적, 비평적 성과를 모두 거머쥔 영화음악가다. 한스 짐머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을 필두로 <덩케르크>와 <히든 피겨스>, 미리 언급한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그의 손을 빌렸는데, 락을 기반으로 삼은 짐머와 클래식 바탕의 월피쉬 조화는 상호보완을 이루며 썩 좋은 궁합을 보였다. 사실 그는 리모트 콘트롤 프로덕션에 합류하기 전부터 영국에서 주목받던 신예 음악가이자 오케스트라 편곡자 겸 지휘자였다.

1979년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와 조부모가 모두 클래식 연주자인 집안에서 태어나 정통 음악 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다른 영화음악가들도 흔히(?) 그렇듯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고, 6살 때부터 작곡을 했으며, 14살에 지휘를 시작한 음악 신동이었다. 맨체스터 북부 왕립음악원과 맨체스터 대학에서 공동으로 주관하던 교육 코스에서 작곡을 전공한 그는 최고 우등학위로 졸업하고 영국 실내관현악단 부지휘자에 오르며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듯 했다. 하지만 24살에 라스 폰 트리에가 각본을 쓰고, 토마스 빈터베르그가 연출한 <디어 웬디> 음악을 맡아 호평을 받으며 지휘에서 작곡으로, 클래식에서 영화음악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이런 이유로 벤자민 월피쉬의 경력 초기에는 굵직굵직한 영화음악들의 지휘와 오케스트레이션이 눈에 띈다. 특히나 <어톤먼트>로 오스카 음악상을 수상한 다리오 마리아넬리가 그를 신뢰했는데, <그림 형제-마르바덴 숲의 전설>이나 <브이 포 벤테타>,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 <안나 카레니나> 등 2005년부터 2012년까지 마리아넬리의 주요 작업에서 월피쉬의 이름이 빠지질 않았다. 그런 월피쉬도 2013년부터는 자신의 영화음악에 주력하며 폴 워커 유작인 <아워즈>를 비롯해, <해머 오브 더 갓>과 <섬머 인 페브러리> 등이 인정받아 빠른 시간 안에 자신만의 색채를 갖기 시작한다.

그 때 그 시절의 음악을 재현하라, 샤잠!

<샤잠!> OST 커버

<샤잠!>은 그가 단독으로 음악을 맡은 작품 중 가장 큰 예산의 영화로, 전체적으로 8-90년대 최전성기를 누리던 할리우드 심포닉 스코어와 맞닿아 있다. 이 분야의 전설인 존 윌리엄스를 비롯해 제리 골드스미스와 제임스 호너, 대니 엘프만, 알란 실베스트리와 브루스 브루톤, 셜리 워커, 존 데브니, 데이빗 뉴먼 등이 들려줬던 전통적인 방식의 화려하고 기품 있는 풀 관현악 사운드가 시종일관 압도한다. 데이비드 F. 샌드버그와 벤자민 월피쉬는 그 시절 유행했던 슈퍼히어로와 판타지, SF, 어드벤처 스코어들에 대한 애정을 강하게 피력하며, 그 음악들이 선사하던 경이로움과 희망을 다시금 재현하는 게 <샤잠!> 음악의 제일 큰 목적이었다고 밝혔다.

‘골든 에이지’ 시절을 연상시키는 히어로 영화의 음악들. (왼쪽부터) 대니 엘프만의 <배트맨>, 제리 골든스미스의 <슈퍼걸>, 존 윌리엄스의 <슈퍼맨>

무엇보다 그들은 ‘샤잠!’이 골든 에이지 시절의 슈퍼 히어로이기 때문에, 음악 또한 고전적인 슈퍼히어로 스코어처럼 느껴지길 원했다. 큰 스케일의 오케스트라와 코러스, 영웅적이고 낭만적인 팡파르, 드라마틱한 구조가 영화의 흥분과 유머, 활력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그래서 여러모로 존 윌리엄스의 <슈퍼맨>과 제리 골드스미스의 <슈퍼걸>, 대니 엘프만의 <배트맨>과 <플래시>, 제임스 호너의 <인간 로케티어> 등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그 시절의 쉽고 명료하던 테마는 짧고 복잡해지고, 변칙적인 전개에, 도시감각 넘치는 요소들과 강력한 퍼쿠션으로 귀를 현혹시키는 감이 없지 않지만, 그간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고 명랑한 활극의 요소를 들려주는 벤자민 월피쉬의 시원스런 영웅 찬가는 미니멀함이 특징이던 DC에 뚜렷한 인장을 남긴다.

분위기 전환은 성공적.

슈퍼히어로 장르에서는 8천만 달러라는 비교적 저렴한(!) 제작비로 만들어진 <샤잠!>의 초기 반응은 나쁘지 않다. 국내에선 낮은 지명도와 가족영화라는 성격상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1주 늦게 개봉되는 북미에선 오프닝 수익으로 4천만 달러에서 6천만 달러까지 예측되고 있다. 유치하지만 슈퍼히어로라는 장르에 가장 충실한 욕망과 판타지를 채워준다는 점에서, 또 이런 영웅담에 걸맞는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단 점에서 <샤잠!>의 구원 등판은 나름 성공한 셈이 아닐까.


사운드트랙스 /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