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말이 있다.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도 있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들은 저런 속담들에 딱 맞는 상황들 때문에 완성본이 두 개 이상인 작품들이다. 그 유명한 <블레이드 러너>부터 최근 새로운 버전을 공개한 <지옥의 묵시록>까지 정리해봤다.
사전 시사회 |
극장판 |
국제판 |
감독판 |
파이널컷 |
113 |
116 |
117 |
116 |
117 |
<블레이드 러너>는 사전 시사회 당시 음울한 분위기로 흥행이 어렵겠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내레이션을 넣고 엔딩을 바꾼 극장판을 개봉했다. 결국 흥행엔 실패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재평가 받고 걸작이란 찬사를 받았다. 그래서 리들리 스콧과 제작진은 1992년 원래 의도한 엔딩과 몇몇 장면을 교체한 ‘감독판’을 공개했다. 그리고 2007년, 이 감독판을 기반으로 CG를 통해 수정한 장면, 감독판 제작 이후에야 원본 필름이 발견된 장면을 추가한 ‘파이널컷’을 공개했다. 이 파이널컷을 공개하면서 당시까지 말로만 전해지는 ‘사전 시사회 버전’도 DVD로 출시했다.
여기서 더 복잡해진 이유는 개봉 당시 극장판이 미국판과 국제판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판은 미국 극장판보다 폭력적인 묘사가 강하게 그려졌다. 아주 많이 다른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블레이드 러너>는 5개의 판본을 가지게 된 셈이다. 여기에 각 국가별 2차 매체, TV 방영을 위해 편집한 걸 포함하면 한도 끝도 없다. 국내 비디오 85분으로 편집한 버전이 있다고 하니까.
칸 영화제 최초 공개 |
북미 개봉판 |
TV 방영판 |
2012년 칸영화제 복원판 |
최종 복원판 |
229 |
139 |
180 |
246 |
250 |
갱스터 장르의 마스터피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미국 개봉 당시 ‘최악의 영화’라는 혹평까지 들었단다. 왜? 최소 4시간짜리 영화를 139분으로 편집해 개봉했기 때문이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이 영화를 약 6시간 분량으로 기획했고, 정 안되면 2부작으로 나눠서 개봉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제작사는 흥행을 고려해 ‘일단 자르고 보자’고 결론 내렸고 139분짜리 괴상한 영화가 탄생했다.
다행히 북미 개봉(1984년 6월 1일)을 앞둔 5월 20일, 칸 영화제에서 최초 공개한 버전은 세르지오 레오네가 직접 편집에 관여한 것이었다. 229분짜리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어마어마한 찬사를 받았고, 북미를 제외한 국가에는 이 버전으로 개봉했다. 이후 <블레이드 러너>처럼 2차 매체, TV 방송을 위해 여러 버전이 나왔는데, 그중 국내에 방영한 180분 버전이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229분 칸 영화제 버전이 완성본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가족들과 구찌(그 구찌 맞다), 마틴 스콜세지 주도 하에 새로운 복원판이 2012년 칸 영화제에서 공개됐다. 총 상영시간은 17분가량 길어진 246분. 2015년엔 이보다 더 긴 250분 분량의 확장판이 공개됐다. 이 확장판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최초 편집본 269분 버전 복원이 목적이었으나 저작권 문제가 얽힌 19분 분량을 복원할 수 없었다. 현재로는 250분 확장판이 세르지오 레오네의 의도와 가장 가까운 판본이다.
극장판 |
TV 방영판 |
확장판 |
137 |
189 |
176 |
영화 제작 과정을 영화로 만들라면 <듄>만큼 적절한 소재도 없으리라. 프랭크 허버트의 대하 SF 소설 <듄>은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가 연출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16시간짜리 대서사시’라는 방대한 비전은 제작자들이 감당할 수 없었고, 오랜 시간 표류하다 데이빗 린치가 메가폰을 잡게 됐다. 제작자는 <이레이저 헤드>, <엘리펀트 맨>으로 떠오른 신예 감독이니 잘 통제할 수 있겠다 싶었을 텐데, 데이빗 린치는 그런 소박한 감독이 아니었다. 그 역시 <듄>을 최소 3시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듄>은 어김없이 제작자들의 의도에 맞춰 잘려나갔다. 이 과정에서 데이빗 린치는 나중에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고통스러워서 다시 이 영화를 손대고 싶지 않다”고 회상할 만큼 작품의 결정권에서 멀어졌다. 극장 개봉판은 137분으로 최초 기획한 3시간 버전보다 최소 43분 이상 편집됐다. 그리고 흥행도, 비평도 잡지 못한 채 일부 팬들의 ‘컬트’로만 남게 된다.
<듄>이 다시 주목받은 건 TV 시리즈로 재편집되면서였다. <듄>은 2부작 TV드라마로 재편됐고, 총 상영시간은 189분이었다. 재밌게도 이 확장판은 ‘데이빗 린치’ 가 아닌 ‘앨런 스미시’ 연출이다. 린치가 본인 이름을 아예 빼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앨런 스미시는 감독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을 때 쓰는 익명 이름이다. 이후 이 TV 시리즈 버전을 하나로 통합한 확장판이 공개됐다. 중복되는 장면, 엔딩 크레딧을 뺀 확장판은 176분이다.
극장판 |
감독판 |
알렉산더 리비지티드 |
얼티메이트컷 |
175 |
167 |
214 |
206 |
공들인 영화가 혹평을 받으면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가 딱 그렇다. 시나리오 집필을 몇 년간 하고, 촬영도 3년이나 했는데 영화는 그의 필모그래피 중 최악이라는 악평까지 받았다. 그래서 올리버 스톤은 2차 매체를 아예 재편집한 감독판으로 발매했다. 175분 극장판을 167분으로 줄였는데 삭제만 한 건 아니고, 일부 장면을 추가한 버전이었다.
작품의 호불호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영상미가 매혹적인 탓일까, 아니면 사람들의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알렉산더> 2차 매체는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고, 이후 <알렉산더 리비지티드 - 파이널 언레이티드 컷>을 발매할 수 있었다. 제목이 암시하듯 분량이 확 늘어난 확장판으로 214분에 달한다(상세한 비교는 이곳을 참고하자). 하지만 여기서 만족할 수 없었는지, 올리버 스톤은 <알렉산더 얼티메이트 컷>을 발매한다. 이번 버전은 214분이 너무 길다고 판단해 206분으로 줄이는 방향을 택했다.
극장판 |
특별판 |
감독판 |
135 |
132 |
137 |
<미지와의 조우>가 흥행작인 것도 맞고, 호평받은 영화인 것도 맞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버전이 나올 수 있는 건 순전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애정 때문이라 할 수 있다. 1977년 개봉 당시, 스필버그는 개봉일을 미루고 싶었지만 영화사의 재정난에 강제 개봉을 해야 했다. 그래서 개봉 직후 상당한 성공을 거뒀음에도 “미완성작”이라고 말하며 1980년에 ‘특별판’ 제작에 들어갔다. 영화사와 협의해 장면을 새로 촬영하고, 극장판의 장면을 제거하는 등 단순한 재편집 이상의 과정을 거쳤다. 그래서 특이하게도 극장판보다 3분 짧은 132분으로 완성됐다.
이후 한 TV 방송국에서 특별판에 없는 극장판 장면을 추가한 143분 버전을 방영했다(이 버전은 현재 어떤 매체로도 발매되지 않았다). 스필버그는 1998년, <미지와의 조우> 개봉 30주년 DVD에서 또 다른 버전을 공개했다. 극장판과 특별판을 적절히 섞은 이 버전은 스필버그가 최종 승인한 버전이라 ‘감독판’이라 볼 수 있다. 대다수 영화 사이트도 상영시간을 감독판 기준 137분으로 표기하고 있다. 2018년 40주년 기념 재개봉도 이 버전으로 상영됐다.
극장판 |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
파이널컷 |
147 |
199 |
183 |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재편집본을 발표한 <지옥의 묵시록>을 소개한다. <지옥의 묵시록>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에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전쟁 영화로, 베트남전의 광기와 서구 문명의 편협함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1979년 칸영화제 및 극장에서 개봉한 버전은 147분. 이후 2001년, 52분을 추가한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가 공개됐다. 아마 2000년대 넘어서 본 관객이라면 리덕스판을 봤을 가능성이 크다. DVD나 블루레이나 리덕스판이 먼저 발매됐기 때문이다.
리덕스판에서는 윌러드 일행이 프랑스인이 운영하는 농장에 들르는 장면이 추가됐다. 이 장면의 추가는 서구 문명의 맹목적인 이기주의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며 메시지를 뚜렷하게 했지만, 반대로 베트남전이 주는 야생적인 이미지를 해친다는 비판도 받았다. 코폴라 스스로도 두 영화를 다른 영화라고 설명했고, “<지옥의 묵시록>이 종교 영화라면,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는 전쟁 영화”라는 평가가 있는 만큼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는 단순한 확장판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지옥의 묵시록> 개봉 40주년을 맞아 <지옥의 묵시록 파이널컷> 제작에 착수했다. 스티븐 소더버그와 함께 작업한 <지옥의 묵시록 파이널컷>은 극장판보다 길고 리덕스보다 짧은 183분. 트리비카 필름 페스티벌에 공개된 <지옥의 묵시록 파이널컷>은 8월 15일에 소규모 개봉하고 8월 27일 블루레이로 발매될 예정이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직접 “가장 완벽한 판본”이라고 말했으니, <지옥의 묵시록 파이널컷>이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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