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를 씹어먹는다”라는 말은 비에게 더 없이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비의 춤에는 기술적인 것만으론 측정할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감이 있었다. 그런 비에게 대중은 시선을 강탈당했고, 열광했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비의 인기를 견인했던 것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노력하는 악과 깡이었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이를 악물고 노력해 정상까지 올라온 ‘자수성가형 스타’에게 대중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스타보다 더 많은 애정을 줬다. 한때는 독보적이었다. 국내를 넘어 아시아 시장 찍고, 뉴욕 매디슨 스퀘어 단독 콘서트 찍고, 워쇼스키 형제의 <스피드 레이서>를 찍고, <닌자 어쌔신>으로 할리우드 영화 타이틀롤도 찍었다. <닌자 어쌔신> 주연은 <스피드 레이서> 때부터 쉬지 않고 연습하고 엄격하게 수련하는 모습으로 신뢰를 쌓아 획득한 자리였다는 일화는 비의 호감도에 기름을 부었다. ‘국위 선양’이 스포츠 스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듯, 언론은 앞다퉈 비의 활약을 활자로 중계했다. 그의 성과가 과대포장됐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어쨌든 그때의 사람들은 비의 근성과 오기를 사랑했다.
스타의 장점은 뒤집으면 단점이 되기도 한다. ‘자수성가형 아이콘’이란 수식어가 그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소속사 제이튠엔터테인먼트 주식 매각을 둘러싼 ‘먹튀 논란’은 무혐의 처리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미지에 큰 오점을 남겼다. 제대를 앞두고 불거진 군대 휴가 일수와 관련된 특혜 논란은 더 큰 반감을 불렀다. 해당 사태들에 대중이 가혹한 시선을 보낸 것은 그것이 밑바닥에서 시작해 일가를 이룬 비였기 때문이다. 애정과 애증은 한 몸이다. 대중은 자신이 애정한 스타에게 실망하면, 쏟았던 사랑을 회수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비의 경우 애정이 컸던 만큼 애증도 컸다. 그리고 애증은 그의 활동 부진과 함께 애꿎게도 비호감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Only one’이었던 그의 입지는 후발 주자들의 놀라운 성과 앞에서 비교당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그를 걸고넘어진 건 ‘월드스타’라는 수식어였다. 싸이와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침공은 ‘이것이 진짜 월드스타’라는 평가 아래 비의 기존 행보를 암묵적으로 깎아냈다. 물론 이 시기에도 비의 근성은 죽지 않았다. 그는 쉬지 않고 연습했고, 전투적으로 자신을 다그쳤고, 음반 프로듀서에도 도전했다. 문제는 그의 변화 속도가 대중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니, 에두르지 말자.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이었다. 그 최전선에서 터져 나온 게, 2017년 발매된 ‘깡’을 향한 조롱이다. 허세 작렬하는 가사와 ‘병맛’ 코드를 노린 게 아닌가 싶은 춤은 ‘비라는 아이콘’의 존재감마저 의심받게 했다. 그는 정말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이었나. 하아, 그런데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이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다. 트렌드를 역행했다는 혹평을 받은 <자전차왕 엄복동>은 “술 한잔 마셨습니다”와 ‘UBD(엄복동=17만 관객수)’라는 조롱만을 남기고 퇴장했다. 그렇게 비의 신화는 산화되는 듯했는데, 예상치 못한 반전! 자, 이제 화려한 조명이 다시 비를 감쌀 차례.
반전의 발원지는 유튜브였다. 사람들은 ‘깡’ 영상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깡’은 패러디를 낳고, 주옥같은 댓글들을 낳았다. 창의적인 댓글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깡’ 뮤직비디오를 또 찾았다. 기묘한 중독성에 ‘1일 1깡’이란 유행어도 생겼다. ‘밈(meme·패러디되거나 변조되며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문화 콘텐츠 놀이)’의 한 형태인 이러한 놀이 기저에 비를 향한 조롱이 있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 그런데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비가 “아침 먹고 깡, 점심 먹고 깡, 저녁 먹고 깡. 1일 3깡” 드립을 치며 대인배적 모습을 보이자 여론은 급반전됐다. “‘깡’이 요즘 사람들이 보기 별로였던 거다”라고 쿨하게 인정하자 호감도가 상승했다. 진성팬이 직언한 ‘시무 20조’에 대처하는 비의 모습에선 여유마저 엿보였다. 요지는 ‘조롱의 아이콘’이라는 사실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순간, 그는 ‘조롱의 아이콘’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파급효과는 거세다. ‘깡’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1000만 뷰를 넘어섰고, 그의 과거 영상을 찾아보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것이야말로 ‘깡’이 낳은 나비효과. 조롱의 시간을 뛰어넘어, 인정받은 비의 가치. ‘새우깡-양파깡-고구마깡’ 회사들이 쾌재를 부를 상황 아닌가. 시대에 뒤처졌다고 평가받던 가수가 시대의 유행(‘밈’)으로 되살아난 놀랄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깡’이 가수 비에게 반등의 기회를 줬다면 배우로서의 정지훈은? 비의 전성기 시절은 그가 품고 있는 3개의 자아, 즉 가수 ‘비’와 배우 ‘정지훈’과 해외에서 활동하는 ‘RAIN’이 서로를 밀고 끌면서 시너지를 냈다는 점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비는 연기를 곧잘 하는 배우다. 가수가 연기하는 것 자체가 색안경이었던 시대에 비는 드라마 <상두야 학교 가자>에서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이며 배우로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상두야 학교 가자>는 <대장금>과 동시간대에 붙고도 시청률이 꾸준히 상승했으니, 연기자 비의 스타 파워를 증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됐다. 그를 내수용 스타에서 해외 스타로 이끈 것 역시 노래가 아닌 연기였다. 드라마 <풀하우스>의 인기를 타고 비는 아시아 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했고, 아시아 시장을 교두보로 할리우드까지 뻗었다. 배우로서의 비에게 호감을 보낸 이중엔 박찬욱 감독도 있지 않았나.
그런데 행운의 여신이 비를 잠시 잊은 것일까. 이후 배우로서의 비의 행보는 기이할 정도로 풀리지 않았다. <도망자 플랜B>는 초호화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반토막 난 시청률로 막을 내렸고, 군입대전 마지막 작품이었던 블록버스터 영화 <R2B:리턴투베이스>는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 모두를 놓치며 ‘기획 영화의 안 좋은 예’로 남았다. 배우로서의 위상이 떨어져 가는 시기에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팬들을 ‘붙잡을 캐릭터’. 전역 후 복귀작은 부침의 시기를 뒤엎을 기회였을 텐데, 그의 선택은 할리우드 작품 <더 프린스>였다. 비 입장에선 브루스 윌리스와 함께 하는 작품이라는 점 등이 매력적으로 다가갔을 게다. 하지만 비의 매력이 제대로 살기엔 캐릭터 자체가 납작했고, 무엇보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개봉조차 되지 못했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전략적으로 고비용 저효율 시장을 팠다고 볼 수 있다.
비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할리우드는 그에게 그리 낙관적인 환경이 아니다. 기실, 할리우드에서 그의 이미지는 ‘액션 스타’에 멈춰있는 게 사실이고, 이러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건 아마도 그 자신일 것이다.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악바리 비가 앞으로 또 어떤 노력을 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입증했듯 가장 한국적인 게 세계적으로 통하는 시대이고 국내 영화/드라마가 OTT를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되고 있는 시대인만큼, 할리우드 작품에 출연하는 것이 글로벌을 위한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국내 활동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깡’의 가사대로 “수많은 영화(제) 관계자”가 그를 “못 잡아 안달”이 났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중요한 건 ‘섭외 빈도수’가 아니라 ‘누가 섭외’를 하느냐다. 즉, 옥석을 가리는 게 필요하다. 작품 보는 안목이 중요하다.
그래서 다시, UBD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자전차왕 엄복동>이 ‘깡’처럼 역주행의 아이콘이 되는 건 요원해 보이는 일이다. 그러나 잠시 발상을 전환해서 바라보면, 이 영화는 어쨌든 영화계 흥행에 UBD라는 하나의 척도를 제시했다. 어떤 영화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문득 비가 그 기준을 차기작들을 통해 새롭게 써 내려가는 것을 상상해 본다. 본 투 ‘비’ 긍정의 마음으로. 타고난 근성으로. 그 힌트를 비는 ‘깡’에서 이미 얻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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