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영화음악 감상실에서 곱씹어볼 작품은 스파이크 존즈 감독,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그녀>다. '노래'의 활용이 폭넓진 않지만,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 다운 섬세한 음악 배치가 인상적인 영화다.


Off You

THE BREEDERS

2025년 근미래에 사는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편지 대필 작가다. 업무가 업무인지라 타인의 감정에 너무 많이 이입한 나머지 마음속은 허무함과 외로움으로 가득하다. 퇴근길에 테오도르는 인공지능 시스템에게 "우울한 노래 틀어줘"라고 명령하고, "죽을 날을 받아놓으면 죽을 맛이겠지~" 하는 이상한 노래가 성에 차지 않자 다음 노래를 주문한다. 그리고 브리더스(The Breeders)의 노래 'Off You'가 나온다. 낮은 기타 소리가 웅얼거리면서 시작하는 노래가 테오도르의 퇴근길과 함께 이어진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친구 에이미(에이미 애덤스)가 보낸 이메일을 읽는 소리와 함께 반듯하되 지극히 삭막한 미래 도시의 풍경이 걸린다. 지하철 안이라고 다를 바 없다. 무심하게 인공지능에게 명렁어만 던지고, 연예인의 세미누드 사진을 흘끗댈 뿐이다. 브리더스가 9년 만에 내놓은 세 번째 앨범 <Title TK>의 첫 싱글 'Off You'는 원년멤버라곤 밴드 리더 킴 딜(Kim Deal) 밖에 남지 않은 채로 다시 활동을 시작하고 처음 발표한 곡인 만큼 기존 브리더스의 당차고 박력 있는 기세는 없고, 한껏 늘어질 정도로 멜랑콜리한 무드만이 가득하다. 외로움과 허무함으로 가득한 테오도르의 일상을 수식하기에 딱이다. 스파이크 존즈는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명성을 날릴 90년대 중반 브리더스의 노래 'Cannonball'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바 있다.


Divorce Papers

ARCADE FIRE

<그녀>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캐나다 출신의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가 담당했다고 알려졌다. 스파이크 존즈는 (아케이드 파이어에게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안긴) 세 번째 음반 <The Suburbs> 리드싱글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면서 밴드와 연을 맺은 바 있다. 다만 엄밀히 따져 <그녀>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아케이드 파이어가 아닌, 아케이드 파이어의 프론트맨 윌리엄 버틀러(William Butler)와 솔로로 활동하는 캐나다 뮤지션 오웬 팔렛(Owen Pallett)이 함께 만든 결과물이다. 밴드 사운드의 기색은 전혀 없고, 건반 악기와 자잘한 앰비언트 사운드들이 붕 떠 있는 것 같은 <그녀>의 공기를 장악한다. 테오도르가 감정을 배우는 인공지능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의 관계가 중심을 이룬 영화인 만큼, 그들의 첫 만남이 특히 중요할 텐데, 첫 대화부터 신통하게도 말이 잘 통하자 테오도르의 얼굴엔 자연히 미소가 떠오르고 버틀러와 팔렛의 'Divorce Papers'가 기체처럼 서서히 퍼진다. 그리 밝은 건반 소리는 아니지만 음들이 상승곡선을 타서 묘하게 업된 분위기를 만든다. 그런 정서와 '이혼 서류'라는 제목은 영 안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 곡은 나중에 테오도르가 떨어져 사는 아내 캐서린(루니 마라)를 만나러 가는 길에 다시 한번 등장한다. 아내를 만난 테오도르는 인공지능인 사만다와 연애한다는 사실을 밝히자 망신당한다. 'Divorce Papers'의 배치만으로 테오도르에게 사만다와 캐서린을 양립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나타내는 것 같다.


I'm So Glad

ENTRANCE

사만다와 테오도르는 점점 친밀해져 간다.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만질 순 없지만, 사만다는 테오도르가 그녀의 욕망을 일깨워줬다고, 세상 모든 걸 배워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던 테오도르는 "나랑 일요일 모험 떠나볼래?"라고 묻는다. 모험이라고 해서 대단한 건 아니다. 사만다의 말을 귀를 기울이며 열차를 타고 바깥에 외출하는 것. 테오도르가 편안하다는 듯 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으면 사만다는 "며칠 전에 들었는데 중독성 있"다며 기 블레이크슬리(Guy Blakeslee)가 이끈 원맨 프로젝트 엔트랜스(Entrance)의 'I'm so Glad'를 틀어준다. 아슬아슬 느릿한 리듬을 펼쳐놓는 기타 소리가 리드하는 'I'm so Glad'와 함께 바깥에 쏟아지는 햇빛을 맞으며 엷게 미소짓는 테오도르의 감정이 분명 기쁨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다채로운 악기와 리듬이 더해지며 노래 분위기가 고조되면, 언제나 축 늘어진 채로 걷던 테오도르가 힘차게 뛰면서 사람들 사이를 통과한다.


Need Your Love So Bad

LITTLE WILLIE JOHN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 섹스 대리인을 고용해보자고 제안하고, 내키지 않는 테오도르는 어쨌든 그녀의 간곡한 뜻을 듣고 허락한다. 테오도르가 홀로 맥주를 홀짝이며 대리인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의 집에선 리틀 윌리 존(Little Willie John)의 노래 'Need Your Love So Bad'가 흐른다.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자음만 섞인 소리들에 노출돼서일까, 50년대에 활동한 소울 싱어의 노래인 만큼 전자음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어 리틀 윌리 존의 간드러진 보컬을 잠깐 듣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섹슈얼한 에너지가 퍼지는 것만 같다. 'Need Your Love So Bad'는 단순히 옛날 가수의 노래인 걸 넘어, 리틀 윌리 존이 18살 나이에 처음 녹음한 노래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곡이다. 대리인의 자연스러운 연기에 작전은 그럭저럭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리틀 윌리 존의 노래가 끝나고 5인조 여성 소울 그룹 샨텔스(The Chantels)의 'Sure Of Love'와 함께 본격적인 애무가 시작되자 테오도르가 "모르는 분이라 너무 이상하다"고 머뭇거리고 곧 실패로 돌아간다.


The Moon Song

SCARLETT JOHANSSON & JOAQUIN PHOENIX

KAREN O & EZRA KOENIG

'The Moon Song'은 <그녀>의 주제가다. 테오도르와 사만다는 '함께' 여행을 떠나 낮에는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고 밤에는 서로 목소리를 포개어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잘한다는 평가 같은 건 끼어들 틈 없이 어설픈 노래가 그저 테오도르와 사만다가 서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증명한다. 이 노래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오르면 다시 한번 나온다. 이번엔 요한슨과 피닉스가 아닌, 예 예 예스(Yeah Yeah Yeahs)의 보컬 카렌 오(Karen O)와 뱀파이어 위크엔드(Vampire Weekend)의 보컬 에즈라 코닉(Ezra Koenig)의 목소리다. 'The Moon Song'은 카렌 오가 그간 보여준 야생 괴물 같은 보컬과는 달리 자장가에나 어울릴 법한 여린 목소리가 먼저 들어오는 노래다. 스파이크 존즈와 카렌 오의 인연은 꽤 길다. 존즈는 2006년 예 예 예스의 콘서트 필름 <Tell Me What Rockers to Swallow>(2006)의 촬영감독을 맡았고, 카렌 오는 존즈의 세 번째 장편영화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카렌 오에게 맡긴 바 있다. 'The Moon Song'는 2014년 오스카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지만, 안타깝게도 'Let It Go'라는 무적의 상대를 마주해야만 했다.


Dimensions

ARCADE FIRE

<그녀>가 '사만다'가 아닌 '그녀'인 까닭은, 테오도르가 적적한 삶을 지탱해나갈 수 있는 건 사만다만이 아닌 늘 곁에서 격려를 아끼지 않는 옛 연인이자 친구 에이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만다가 641명과 동시에 사랑에 빠져 있고 능력을 더욱 진화하기 위해서 떠날 것이라는 이별을 통보하면, 테오도르는 사만다과 캐서린 모두와 헤어져야 한다는 걸 받아들인다. 그리고 같은 건물에 사는 에이미를 찾아간다. 테오도르의 얼굴을 보자마자 사만다가 떠났다는 걸 직감하는 에이미. 두 사람은 옥상에 올라가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끼고 알아서 눈을 맞출 수 있는 테오도르와 에이미의 마음을 윌리엄 버틀러와 오웬 팔렛의 스코어 'Dimensions'가 대신한다. 떠다니는 공기 정도로만 느껴지던 그 전의 스코어들과 달리, 풍성한 현악기가 함께 한 'Dimensions'는 비단 분위기를 넘어 밤하늘을 바라보며 서서히 차오르는 사람의 마음을 대변한다. 버틀러와 팔렛이 의기투합한 <그녀>의 사운드트랙 역시 오스카 음악상 후보에 올랐으나, 스티븐 프라이스의 <그래비티>(2013)에 밀려 수상하진 못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