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차별하는 사람들은 자기들밖에 몰라. 운동장에서 축구 하는 고학년들처럼.”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의 눈에 비치는 운동장은 마냥 평화로운 놀이와 배움의 장이 아니다. 이들이 경험하는 운동장은 폭력이 난무하는 투쟁의 영토이자, 불평등을 미리 체감하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아이들이 가족 없이 사회와 접촉하는 첫 번째 장소 중 하나”인 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벨기에 감독 로라 완델의 장편 데뷔작인 영화의 원제는 세계(Un Monde). 유년 시절 별다른 준비도 못 하고 맞닥뜨렸던 냉혹한 생태계가 그 자체로 얼마나 공고하고 거대한 하나의 세계로 느껴졌는지 돌이켜보면 더없이 적절한 제목이다. 물론 이곳에 어른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또래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어른이 줄 수 있는 도움은 극히 제한적이다. 미세한 감정적 다툼은 물론이거니와, 안타깝게도 심각한 따돌림과 괴롭힘 또한 마찬가지다. 세계의 외부자인 어른은 아이들의 행동을 제지할 순 있지만, 그것을 궁극적으로 중단할 순 없다. 영화는 주인공 남매를 가까이 따라가며 이 잔혹한 세계의 단면을 카메라에 담는다.

노라(마야 반데베크)의 첫 등교 날, 교문은 통곡의 벽이 된다. 아빠(카림 르클루) 옆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노라의 모습은 흡사 전쟁 통에 헤어지는 가족을 연상케 한다. 오빠 아벨(군터 뒤레)의 조용한 응원과 함께 학교생활을 시작해보는데, 역시 힘든 것투성이다. 모르는 아이들 앞에서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큰 용기가 필요하고, 체육 시간처럼 난생처음 접해보는 활동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 두려움은 더 커진다. 서툴고 겁 많은 소녀는 학교에서 단 한 순간도 즐겁지 않다. 운동장에서 겨우 오빠를 찾아냈지만, 이쪽도 문제가 심각하다. 한 무리의 남학생들에게 괴롭힘당하는 아벨. “오지 마. 여기 있으면 너도 맞아.” 남매는 각개전투해야 한다. 다행히도 노라는 학교생활에 천천히 적응해간다. 신발 끈도 못 묶는다며 수군거리던 친구들은 매듭짓는 법을 알려주고, 외로웠던 식사 시간은 잡담과 웃음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아벨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진다. 폭력의 수위는 점차 높아지는데, 아벨은 어른들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며 노라를 단속한다. 그럴수록 노라는 걱정에 속이 탄다.

<플레이그라운드>의 화면은 오직 노라의 모습과 감각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카메라는 줄곧 노라의 눈높이에 머물며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고, 노라가 들을법한 앵글 바깥의 소리들은 이미지를 켜켜이 감싸며 입체적인 청각의 풍경을 구성한다.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에서, 이러한 형식은 꽤 일반적 선택이다. 이와 같은 촬영의 이유를 묻는 말에 적지 않은 감독이 어른의 관점에서 내려다보지 않고, 아이들이 감지하는 그들만의 세상에 집중하고 싶었다는 답변을 내놓으니 말이다. 하지만 <플레이그라운드>의 촬영엔 아이들의 고유한 세계를 온전히 담아낸다는 식의 수사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답답할 정도로 노라에게 바짝 붙어있는 카메라는 시야의 한계를 체감하도록 만든다. 학교는 아이들의 세계이나, 이곳은 분명 교사와 경비원, 담장 밖의 학부모가 관여하는 사회 속의 공간이기도 하다. 노라의 눈과 다름없는 카메라엔 언제나 어른들이 비치지만, 간절한 아이의 시선에 누군가 응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제한적 앵글과 극도로 얕은 심도가 특징인 <플레이그라운드>의 화면 구성이 역설하는 건, 카메라가 놓인 쪽이 바로 사각지대라는 점이다.

결코 아이의 자리에 서볼 수 없는 어른들은 끝까지 무능하거나 무기력하다. 영화는 노라가 아빠와 선생님(로라 베르랭당)에게 오빠의 피해 사실을 알리면서 이리저리 요동치기 시작한다. 성급하게 가해 학생들을 혼내는 아빠는 사태를 악화시키고,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방법을 알지 못하는 선생님은 노라보다 더 힘 빠져 보인다. 게다가 오빠를 따돌리던,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잔인한 힘은 이제 노라에게 직접 영향을 끼친다. 친구들은 아벨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노라에게서 등을 돌린다. 겨우 피해에서 벗어난 오빠는 “내가 맞는 게 더 좋아?”라고 물으며 가해자의 위치에 선다. 한 발만 떨어져서 본다면 평범하기 그지없을 아이들의 운동장은 실상 자기 자리를 찾고 지키기 위해 쉴 새 없이 타인을 공격하는 격전지다. 노라는 도저히 출구가 없는 악순환 속에 갇힌 것만 같다. 하지만 놀랍게도 소녀는 행동한다. 영화의 감정을 순식간에 아주 먼 곳까지 끌고 가는 결말의 제스처는 도덕, 선, 정의 같은 단어들로 쉽사리 설명되지 않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초청작이자,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벨기에 출품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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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시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