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헤일리 조엘 오스먼트)는 로봇 회사 사이버트로닉스에서 개발된 최초의 감정형 어린이 로봇이다. 이 로봇의 목표는 ‘보호자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고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로, 음식을 먹을 수 없고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로봇이다. 프로토타입으로 생산된 데이비드는 테스트를 위해서 사이버트로닉스사 직원인 헨리(샘 로바즈)와 모니카(프랜시스 오코너) 부부에게 입양이 되었으나, 불치병 치료를 위해 5년 간 냉동인간 상태로 있던 헨리와 모니카의 친아들 마틴(제이크 토마스)이 깨어나면서 그 위치를 위협당한다.

마치 이복동생을 경멸하는 형처럼, 마틴은 데이비드를 노골적으로 멸시하며 어른들에게 오해를 살 만한 일을 하라고 시키곤 한다. 엄마의 머리카락을 잘라 와. 장난감을 부숴봐. 봐, 너는 나처럼 음식 못 먹지? 먹어 봐. 먹어 봐. 그리고 그럴 때마다 로봇 공학자인 헨리는 데이비드를 두려워한다. 사랑이 가능하면 미움도 가능할 텐데, 애가 마틴을 질투해서 무슨 일을 벌일지 어떻게 알아. 헨리의 오해와 성화 속에 모니카는 눈물을 머금고 데이비드를 숲 속에 버리고 도망간다.

“제가 사람이 아니라서 죄송해요. 제발 날 버리지 마세요. 허락하신다면 사람이 될게요.” 데이비드는 생각한다. 자신은 마틴처럼 진짜 사람이 아니라서 버림받은 거라고. 그렇다면 진짜 사람이 되면 다시 예전처럼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 데이비드는 동화 속 피노키오를 사람으로 만들어 준 푸른 요정을 찾아 진짜 사람이 되겠노라 생각하고, 진짜 사람이 되기 위한 긴 여정에 오른다. 스탠리 큐브릭과 스티븐 스필버그가 함께 상상한 달콤씁쓸한 동화, 영화 〈에이 아이〉(2001)의 내용이다.

인간의 피조물이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는 상상은 수많은 창작물의 클리셰다. 최초의 SF 소설 〈프랑켄슈타인〉부터 시작해 카를로 콜로디의 〈피노키오〉, 아이작 아시모프의 〈바이센테니얼 맨〉 등 다양한 작품들이 “인간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는 피조물들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들려주었다. 인간이 제 종에 대한 자긍이 너무 심해 인간찬가를 부르는 걸까? 그런 면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나 〈바이센테니얼 맨〉의 앤드류가 그랬듯, 창작물 속 피조물들은 인간과 같은 자유와 권리를 얻고 싶어했다. ‘인간’이 특별히 좋아서 인간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이 다른 종에게는 허락하지 않은 동등한 자유와 권리를 존중받고 싶었던 것이다.

〈에이 아이〉 속 데이비드도 상황은 비슷하다. 자신이 로봇이 아니라 진짜 어린아이였다면, 이렇게 사랑하는 이에게서 함부로 버림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모니카를 엄마로 여기고 사랑하기로 프로그래밍 된 데이비드는, 자신의 프로그램이 시키는 바를 이행할 수 있는 지위인 ‘인간’을 욕망한다. 그것만 아니라면 데이비드가 굳이 인간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데이비드의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의 지능 수준에 육박하고, 데이비드의 외양과 행동 양식은 로봇 혐오자들조차 ‘저건 사람이잖아’라고 말할 만큼 인간의 그것에 가까우며, 기능 정지라는 한계가 있는 육체지만 인간처럼 노화하지 않는다. 데이비드는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한 존재다. 그러니 데이비드에게 ‘인간이 되는 것’은 차라리 수단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이 아이>의 결말이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닌 것도 이해할 만 하다. 물 속에 가라앉은 코니 아일랜드 놀이동산 속 푸른 요정 조형물을 발견한 데이비드는, 잠수함을 타고 내려가 푸른 요정에게 기도를 한다. 진짜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그 기도는 아주 오래 지속되어, 잠수함의 불빛이 꺼지고 바다가 얼어 붙은 뒤 급기야 자신의 기능이 정지될 때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2000년이 흐른다. 인류는 멸망했고, 뛰어난 과학기술로 문명을 이어가는 로봇들이 인류의 역사를 연구하던 중 얼어붙은 바다 속 데이비드를 발견한다. 데이비드의 기억을 통해 인류에 대한 정보를 얻은 로봇들은, 데이비드에게 답례로 기억 속의 집을 재현해준다. 하지만 데이비드에게 모니카가 없는 집은 무의미하다. 로봇들은 데이비드에게 묻는다. 네가 가지고 있던 모니카의 머리카락으로 모니카를 ‘복원’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살려낸 인간은 하루 밖에 살 수 없는데 괜찮겠니? 데이비드는 되묻는다. 하루가 영원이 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데이비드는 이렇게 살려낸 모니카와 함께 꿈 같은 하루를 보낸다. 엄마에게 모닝커피를 타주고,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엄마와 슈퍼토이 테디(잭 앤젤)와 함께 놀면서 보낸 하루는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그래 봐야 모니카의 육체는 DNA로 복원한 사본에 불과하고, 모니카의 기억과 습성 또한 데이비드의 기억을 통해 추출해 낸 모사본이며, 만 하루 밖에 살 수 없는 수명은 되살려낸 모니카를 인간이라 부르기 망설여지게 만든다. 그럼에도, 데이비드는 2000년의 기다림 끝에 자신이 바라던 하루를 얻는 데 성공한다. ‘가짜’라는 이유로 버림받아 엄마와 같은 ‘진짜’가 되고 싶었던 소년은, 자신이 ‘진짜’가 되는 대신 자신과 같은 ‘가짜’ 엄마에게 사랑을 받는 ‘가짜’ 하루를 선물 받는다.

영화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스탠리 큐브릭의 차가운 비전을 스티븐 스필버그가 특유의 멜로드라마와 가족주의로 망쳐버렸다고 툴툴거렸다. 나는 그 이들이 영화를 심각하게 오해했다고 생각한다. <에이 아이>는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탄식과 포기로 가득한 작품이다. 〈에이 아이〉는 어느 구석을 뜯어보아도 인간 찬가가 아니다. 영화 속에서 인간은 로봇보다 냉혹하고 불합리하며 잔인한 존재다. 로봇 혐오자들은 아직까지 의식이 남아있는 고물 로봇들을 모아다가 고문하고 부수고 불태우며 “인간이 로봇보다 위대하다”고 소리 지르고 다니고, 로봇 동생이 생긴 마틴은 데이비드를 모함했으며, 가족 중 가장 데이비드를 사랑했던 엄마 모니카마저도 데이비드가 폐기될 게 가슴 아프다는 이유로 데이비드를 숲 속에 버렸다. 데이비드를 도왔던 건 인간이 아니라 섹스로봇 지골로 조(주드 로)와 슈퍼토이 테디였다.

그래서 인간이 모두 멸망한 끝에, 인간이 되어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안드로이드는 그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 자리에서 엄마의 복제인간에게 사랑받는 것으로 행복을 찾는다. 데이비드에게 그것은 ‘진짜’ 행복이었을 테니 상관 없는 이야기겠지만, 인간인 나는 <에이 아이>의 비전이 아직도 슬프다. 서로 미워하고 헐뜯고 나와 다른 것들은 배척하면서 멸망을 향해 걸어가기를 멈추지 않는 삭막한 우리들을 차마 부정할 수 없어서, 그런 인간을 포기한 자리에서야 비로소 해피엔딩을 찾은 데이비드의 결말을 마음껏 기뻐해줄 수 없어서.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