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을 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주-
“아이를 낳으면 육아휴직 1년 3개월 동안은 내가 키워야지. 복직하고 나서는 친정 엄마한테 맡기고. 아, 그 전에 엄마 집 근처로 전셋집을 얻어야겠네. 엄마도 힘드시니까 애는 어린이집에 일찍 보내는 걸로 하자.” 주변 어린이집을 검색해보다 며칠 안 남은 입소 기한을 보고 마음이 조급해진다. 신청 버튼을 누르려는데 정신이 확 든다. 아참 나 임신도 안 했지.
결혼 2년차에 접어 들며 우리 부부는 2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맞게되는 대혼란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부모님의 도움과 국가의 지원을 더하니 육아 계획표는 순식간에 완성됐다. 이대로라면 육아는 식은 죽 먹기인데? 왜 다들 앓는 소리를 하는거야!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떡할건데
영화 <첫 번째 아이>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쩔쩔 매는 정아와 우석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정아와 우석은 부부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돌을 갓 넘긴 딸 서윤이가 있다. 딸 서윤이는 그동안 정아의 친정 엄마가 맡아 주었다. 정아의 육아휴직이 끝났고 서윤이는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어린 나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아의 친정 엄마가 갑자기 쓰러졌다. 퇴원을 하더라도 아이를 맡아줄 여력은 안 된다고 한다. 급하게 윗집 이웃에게 맡겼지만 이도 한시적일 뿐. 결국 부부는 보모를 찾아 나선다.
여차저차 보모를 구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딘가 음산한 분위기도 걸리고 무엇보다 조선족이라는 타이틀이 영 꺼림칙하다. 인력사무소에 따져 봐도 당장 보낼 사람은 외국인 밖에 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맞벌이가 워낙 많으니 웬만하면 좋게 넘어가라는 식이다. 돈을 쓰는 것은 부부인데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됐다.
내가 얼마만에 다시 일 하는 건데
정아는 대리다. 그것도 일 잘하는 대리. 정아가 회사에 돌아오자 팀원들은 복직 파티까지 준비했다. 중간 계급의 귀환에 팀장님도 한숨 돌린 눈치다. 하지만 의도 없는 말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판다. “대리님 출근하시면 아이는 어떡하세요?” 해맑은 한마디에 집에 놔두고 온 딸 서윤이가 생각난다. 뒤이어 들려오는 말이 더 가관이다.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게 맞긴 한데” 정아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진다.
일도 영 익숙지 않다. 육아휴직해봐야 출산휴가까지 더해도 1년 3개월인데 그 사이 강산이 변했는지 하는 일마다 턱턱 막힌다. 동료에게 물었다가 이런 것도 모르냐는 핀잔을 듣는다. 오랜만에 나선 외근에서는 후배가 속을 긁어 놓기 시작한다. 마주 앉은 후배는 결혼 같은 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친구들 만나고 좋아하는 일 하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거기에다 육아휴직 자리를 메워 주었던 계약직 직원은 호시탐탐 정아의 자리를 노린다. 일도 잘하고 싹싹하지만 내 자리를 탐내는 직원에게 마음을 열 수는 없다.
육아는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아
회사에 있는 정아에게 전화가 온다. 남편 우석이다. 서류를 챙기러 잠깐 집에 들렀는데 보모와 딸 서윤이 사라졌다는 연락이다. 아이가 사라졌으니 당연히 집으로 가봐야 하지만 우석도 정아도 회사에 꽁꽁 묶였다. 서로 못 간다고 실랑이를 하다 정아가 결국 반차를 쓴다. 아파서 집에 가봐야 겠다는 거짓말과 함께. 경찰에 신고하려던 찰나 보모가 서윤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정아는 화가 난다. 보모의 사정을 들어볼 틈도 없이 아이를 확 낚아챈다. 홧김에 보모를 해고하고 나니 새로운 보모를 구할 때까지가 걱정이다. 어쩔 수 없이 윗집 이웃에게 한 번 더 아이를 맡긴다.
이번에는 운 좋게 입소한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온다. 딸 서윤이가 전염병에 걸린 것 같다는 연락이다. 퇴근할때 데리러 가겠다고 사정하지만 어린이집도 곤란하다. 서윤이 때문에 같은 반 아이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아는 또 회사에 거짓말을 한다. 이번엔 서윤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기 위해서다. 서윤이는 확진을 받고 일주일 동안 어린이집에 못 나가게 됐다. 이번에는 서윤을 맡아줄 윗집 이웃도 없다.
남편과 내가 세운 계획에는 정아와 우석과 같은 상황은 없었다. 나와 남편이 일을 할 때는 친정 엄마든 시어머니든 누군가는 우리의 아이를 반드시 돌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린이집도 아침에 보내면 3~4시까지는 무조건 맡아 줄 거라 생각했다. 우리 부부는 변수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변수에 우석은 등장하지 않는다. 신세 져서 죄송하다고 윗집 아주머니에게 조아리는 것도 정아, 아이에게 행여 해코지 할까 보모 눈치를 보는 것도 정아,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회사에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도 정아. 이 또한 우리 부부의 계획에는 없었다.
아이는 같이 키우는 거잖아
정아에 과몰입 하다못해 빙의가 돼버린 나는 남편을 다그치기 시작한다. 정아편 우석편 나눠서 싸우자는 건 아니다. 늦은 밤 아이가 울자 정아에게 떠넘기는 우석의 태도에 화가 치밀 뿐. 시끄럽다며 획 돌아눕는 우석의 모습에 훗날의 내가 괜히 걱정이 된다. 아니 같이 일하는데도 왜 아이는 여자가 봐야 해? 자기도 그럴 거야?
남편은 물론 아니라고 답한다. 아이를 낳으면 많이 도와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도와준다는 말도 왠지 기분 나쁘다. 도와주긴 뭘 도와줘. 같이 하는 거지.
가사 분담보다 어려운 것이 육아 분담이라고 한다. 아이가 생기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라고도 말한다. 사이좋은 우리 부부에게도 그런 시련이 오겠지. 그 생각을 하니 정아와 같은 표정을 짓게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되어야 할 육아가 <첫번째 아이>에서는 부부 사이에 갈등을 생기게 하고, 정아의 경력에 발목을 잡는 일로 치부되고 있다. 남자는 회사, 여자는 육아. 이런 문화를 당연시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반문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둘 다 못하겠으면 하나만 해야지, 안 그래?
팀장이 정아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은 결국 현실이 되고 만다. 정아는 일을 그만두고 육아만 하기로 결심한다. 정아는 이제 서윤이의 엄마로만 살아가게 됐다. 회사에 사원증을 반납하니 사회에서의 정아의 이름도 지워졌다. 물론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것이 나쁜 선택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선택 앞에 붙은 ‘어쩔 수 없이’ 라는 수식어가 서글프다.
정아가 일을 그만두자 영화에는 평화가 찾아온다. 정아와 우석이 처음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더 이상 보모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되고 윗집 이웃을 찾아가 앓는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정아의 표정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까지도 어둡다.
영화가 끝나자 우리 부부도 식탁에 마주 앉았다. 육아 계획을 세울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물론 우리 부부의 미래는 다를 수도 있다. 변수 없이 계획한 대로 잘 흘러갈 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 찜찜하다.
친정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부터 다시 점검한다. 혹시 엄마가 아이를 못 맡아줄 일이 생기면 시어머님이 일을 그만두실 수 있으려나. 아니면 그냥 보모를 쓸까나. 일을 그만두기는 정말 싫은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때 쯤 남편이 한마디 한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한테 괜히 미안하네
폭탄 돌리기도 아니고 참나.
매일신문 임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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