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벌써 3년 전이다. 그의 죽음은 갑작스러웠고 안타까웠다. 2014년 2월 2일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이 사망했다. 뉴욕 맨해튼 아파트의 욕실에서 발견된 그의 팔에는 주사기가 꽂혀 있었다고 한다. 호프먼의 사인은 약물 과다복용이다. 향년 46세.

호프먼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그가 출연한 작품을 돌이켜보려고 한다. 네이버 영화에는 모두 55편의 영화가 등록돼 있다. IMDb 사이트에는 TV시리즈까지 포함해 총 65편의 필모그래피가 있다. 

이 가운데 주목하고 싶은 영화는 호프먼이 조연으로 출연한 작품들이다. 부연하자면 주연 배우들과 연기 대결을 펼친 영화를 살펴보려 한다. 왜냐면 호프먼은 “양자적 관계의 인물 구도 안에서 한쪽 파트너로서 자주 등장했으며, 그 양자적 관계의 한쪽 파트너로 등장할 때 대체로는 호프먼이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떤 사태를 촉발하거나 결정짓는 것뿐 아니라 상대방 주인공의 어떤 영역을 침범할 만큼의 막강한 상대자로 자주 군림했기” 때문이다. (참고한 기사▶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라는 역(力)을 기억하며)

<부기 나이트>

<여인의 향기>(1992)의 단역으로 본격적인 배우 일을 시작한 호프먼이 처음 얼굴을 알린 작품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부기 나이트>(1997)다. 포르노 영화 산업을 다룬 이 영화에서 호프먼은 게이 붐 오퍼레이터를 연기했다.

<위대한 레보스키>
<패치 아담스>
<리플리>

이후 호프먼은 색깔 있는 조연으로 영화에 출연했다. 코언 형제의 <위대한 레보스키>(1998),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이었던 <패치 아담스>(1998), 맷 데이먼, 주드 로, 기네스 팰트로가 출연한 <리플리>(1999) 등이다.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출연한 영화 <플로리스>

이 시기 호프먼은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플로리스>라는 영화에 출연했다. 그는 게이 드래그퀸 가수 러스티를 연기했다. 대배우 로버트 드 니로 앞에서 그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호프먼의 연기에서 양자적 관계는 이 영화에서 시작됐을지도 모르겠다.

<매그놀리아>
<올모스트 페이머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 초반 무렵 호프먼은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 <매그놀리아>(1999)와 록 밴드를 다룬 음악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2000) 등이다.

<펀치 드렁크 러브>
<펀치 드렁크 러브>

2002년 또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인 <펀치 드렁크 러브>에 출연했다. 그가 연기한 딘 트럼벨은 폰섹스 업자다. 아담 샌들러가 연기한 주인공 배리 이건과 대립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둘은 처음에 전화상으로 싸우기 시작한다. 호프먼은 전화기에 대고 무차별 욕을 퍼붓는다. 이마에는 아마도 핏줄이 섰을 것이다. 이어서 배리가 딘을 찾아온다. 얼굴을 마주한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긴장감과 리듬이 어마어마하다.

<25시>에 출연한 (왼쪽부터) 베리 페퍼, 에드워드 노튼,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

스파이크 리 감독의 <25시>(2002)와 벤 스틸러와 제니퍼 애니스턴이 출연한 로맨틱 코미디 <폴리와 함께>(2004)를 거쳐 호프먼은 <카포티>(2005)에 다다른다.

<카포티>

그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겨준 <카포티>는 호프먼의 독보적인 메소드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등으로 유명한 작가 트루먼 카포티의 생애를 다룬 이 영화에서 호프먼은 카포티 그 자체였다. 사실 트루먼 카포티와 호프먼은 전혀 닮지 않았다. 카포티는 깡마른 체격에 서늘한 눈매를 지녔다. <카포티>를 연출한 베넷 밀러 감독은 “다른 배우는 고려하지 않았다. 카포티는 필립이어야 했다. 그가 거절한다면 그걸로 영화는 끝이었다. 아니, 최소한 나에게만은 <카포티>라는 영화는 그걸로 끝이었다”고 말했다.

<카포티> 이후 호프먼의 지위는 확 달라졌다. 그전까지 호프먼에 대한 인상은 연기 잘하는 조연 정도였다. 심지어 “그는 결코 주연배우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심지어 그는 세 단락으로 나뉜 기억하기 힘든 이름을 갖고 있다. 만약 그가 ‘필립 S. 호프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만 했더라도, 적어도 새뮤얼 L. 잭슨의 위치 정도에는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참고한 기사▶호프먼과 카포티)

<미션 임파서블 3>

오스카 수상 배우라는 수식어를 갖게 된 호프먼은 어느 정도 자신이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 또 <미션 임파서블 3>(2006) 같은 어마어마한 예산의 블록버스터에도 출연할 수 있게 됐다. 

<미션 임파서블 3>에는 재밌는 장면이 나온다. 두 명의 호프먼이 한 화면에 등장하는 것이다. 오웬(호프먼)과 오웬의 가면을 쓴 이단 헌트(톰 크루즈)의 만남은 다른 말로 호프먼과 톰 크루즈의 연기 대결처럼 보이기도 한다. “토끼발은 어디 있냐”며 톰 크루즈에게 호통치던 호프먼의 모습이 선하다. 그가 연기한 오웬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최고 악당이지 않을까. 참고로 호프먼은 톰 크루즈보다 5살 어리다.

<시네도키, 뉴욕>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에 출연한 에단 호크(왼쪽)과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

<미션 임파서블>이 공개된 다음해인 2007년 호프먼은 시드디 루멧 감독의 유작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와 찰리 카우프먼의 감독 데뷔작 <시네도키, 뉴욕>에 출연했다.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에서 호프먼은 에단 호크의 형을 연기했다. 다시 말해 호프먼이 양자적 관계에 있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이 둘의 연기가 훌륭했다는 건 이제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우트>에 출연한 메릴 스트립(왼쪽)과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

2008년, 호프먼의 엄청난 연기 대결을 볼 수 있는 영화 <다우트>가 등장한다. 호프먼의 상대도 만만치 않다. 아니 무시무시하다. 무려 메릴 스트립이다. <다우트>는 1964년 브롱크스의 성 니콜라스 교구 학교의 진보적인 플린(호프먼) 신부와 보수적인 교장 수녀 알로이시스(메릴 스트립)이 대결하는 영화다. 원작인 연극인 <다우트>는 서사로 보는 영화가 아니다. 연기력을 보는 영화다.

<락앤롤 보트>
<머니볼>

리처드 커티스의 코미디 <락앤롤 보트>(2009) 이후 주목할 호프먼의 영화는 <카포티>의 베넷 밀러 감독과 다시 만난 <머니볼>(2011)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브래드 피트)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에서 호프먼의 분량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호프먼의 팬이라면 빌리 빈 단장과 말다툼을 벌이는 감독 아트 하우(호프먼)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여기서도 또 호프먼은 누군가 싸우는 관계에서 특유의 연기력이 빛을 발한다.

<킹 메이커>에 출연한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왼쪽)과 라이언 고슬링.
<마스터>에 출연한 호아킨 피닉스(왼쪽)와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

<머니볼>에서 보여준 호프먼의 존재감은 조니 클루니, 라이언 고슬링, 폴 지아마티 등과 함께 한 <킹 메이커>(2011)에서도 빛났다. 다음에 공개된 <마스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폴 토마스 앤더슨과 또 만난 호프먼은 <마스터>에서 신흥 종교집단 같은 코즈연합회를 이끄는 마스터 랭케스터를 연기했다. 이 영화에서의 상대는 호아킨 피닉스였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광기 어린 남자 프레디(호아킨 피닉스)는 오로지 랭케스터만을 따른다.

<마지막 4중주>
<모스트 원티드 맨>
<헝거게임: 모킹제이>

<마스터> 이후 호프먼이 출연한 영화는 <마지막 4중주>(2012)와 <모스트 원티드 맨>(2014), <헝거게임> 시리즈 등이 있다. 존 르 카레 소설이 원작인 <모스트 원티드 맨>은 그의 죽음 이후에 공개됐다. 존 르 카레는 “또 다른 필립을 만나려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헝거게임: 모킹제이>와 <헝거게임: 더 파이널> 역시 그의 죽음 이후에 개봉한 영화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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