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곤 감독의 이름은 낯설어도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을 모르는 관객은 드물 것이다. 2006년 그를 충무로 기대주로 만들어준 이 작품 전에 <너무 많이 본 사나이>가 있었다. 살인사건이 녹화된 테이프를 찾기 위해 영화 비디오들을 섭렵한 킬러가 결국 영화감독에 도전한다는 내용을 그린 작품으로 당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기발랄한 설정과 재치 있는 대사로 자신만의 색깔이 가득한 격조 있는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온 손재곤 감독이 10년 만에 영화 <해치지않아>로 돌아왔다. 이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는 그의 전작들에 있다. <달콤, 살벌한 연인>부터 <이층의 악당> 그리고 <해치지않아>까지 신작 개봉을 맞아 그가 연출한 작품 세 편을 되짚어보았다.

*각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달콤, 살벌한 연인
My Scary Girl, 2006

영화는 요즘 여자들에 대한 대우(박용우)의 불평과 함께 시작된다. 첫 장면만 보면 대우는 여자를 만나지 않고 싶어 하는 남자로 비치는데, 실상은 친구에게 여자들과 어떻게 그렇게 잘 어울리냐며 넌지시 조언을 구하는 외로운 남자다. 서른이 넘도록 연애 한 번 못 해본 그의 일상은 어느 날 운명처럼 이웃집에 이사 온 미나(최강희)를 만나며 달라진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시작된 둘의 만남은 순항한다. 이탈리아로 유학을 준비 중이라는 그녀, 하지만 그녀에겐 살벌한 비밀이 있다. 그녀의 집 김치냉장고 안에는 김치 대신 전 남자친구가 들어있다는 것. 둘은 영화의 제목처럼 달콤하고도 살벌한 연애를 이어간다.

한국 최초의 패러디 영화 <재밌는 영화> 각본 작업을 통해 내공을 쌓은 손재곤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특유의 날카로운 유머와 위트 넘치는 대사가 러닝타임 내내 이어지는데, 여기에 박용우의 하이톤 목소리와 꼼꼼한 코미디 연기가 얹어져 제대로 시너지 효과를 낸다. 사람을 여럿 죽이고도 무심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살벌한 그녀를 연기한 최강희의 이미지 변신 또한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오랫동안 스릴러 영화만을 준비해오던 감독이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을 때 나올 수 있는 영화라고 밝히기도 했다.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했고, 2006년 디렉터스컷 어워즈에서 올해의 신인감독상을,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등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달콤, 살벌한 연인

감독 손재곤

출연 박용우, 최강희, 조은지

개봉 200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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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의 악당
Villain & Widow, 2010

창인(한석규)은 골동품 밀매범이다. 두 달을 쫓던 고가의 도자기가 한 가정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그 집을 찾아가고, 마침 위층에 빈 방이 난 것을 본다. 창인은 아래층에 살고 있는 집주인 연주(김혜수)에게 작가라 속인 뒤 소설을 쓰기 위해 두 달만 지내겠다며 계약서도 쓰지 않은 채 입주한다. 그렇게 연주는 자신의 집 이층에 악당을 들인다. 연주는 남편을 잃고 매일을 무료하고 우울하게 보내는 것이 일상이다. 중학생 딸 성아(지우)는 외모 콤플렉스가 심해 하루가 멀다 하고 쌍꺼풀 수술을 시켜달라 조른다. 모든 것이 버거운 그녀는 술 없이 잠들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고, 그러던 차에 들어온 창인은 그녀에게 하소연 상대가 된다. 예상치 못하게 가까워진 둘의 관계는 창인에게 2층과 1층을 넘나들며 도자기를 찾을 좋은 기회가 된다.
 
<달콤, 살벌한 연인>의 성공으로 당시 충무로 기대주로 급부상한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역시나 정상 범위를 묘하게 벗어난 남녀가 주인공이다.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범죄와 코미디를 섞어내는 그만의 장기를 톡톡히 발휘해내는데, 두 주연배우 한석규와 김혜수의 검증된 연기가 이를 탄탄하게 받쳐준다. 전작 <달콤, 살벌한 연인>보다 한 단계 더 세련되어진 <이층의 악당>은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서 웃음이 터지게 만드는 잔재미로 무장했다. 특히 연주와 창인이 빠른 속도로 대사를 주고받으며 티키타카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나 창인이 도자기를 찾기 위해 지하실에 들어갔다가 갇히고 탈출하고 다시 갇히게 되는 장면은 큰 웃음을 유발한다.

이층의 악당

감독 손재곤

출연 한석규, 김혜수

개봉 201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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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지않아
Secret Zoo, 2020

<이층의 악당> 이후 무려 10년 만에 내놓은 세 번째 작품 <해치지않아> HUN 작가의 동명 웹툰을 영화화한 것이다. JH 로펌의 생계형 수습 변호사 태수(안재홍)는 정규직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틴다. 그러던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로펌의 대표(박혁권)가 망하기 일보 직전의 동물원 동산 파크를 살리면 정규직을 보장해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그렇게 동산 파크의 신임 동물원장이 된 태수는 동물원을 살려보겠다며, 패기 넘치지만 다소 엉뚱한 제안을 한다. 동물원의 전 원장(박영규), 수의사 소원(강소라), 사육사 건욱(김성오), 해경(전여빈)에게 동물 탈을 쓰고 위장근무(!) 하라는 것. 말도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빚 때문에 팔려간 다른 동물들과 동산 파크를 살리기 위해 직원들은 태수의 사기행각에 동참한다.
 
손재곤 감독은 원작의 설정 자체가 기발하고 너무 좋았다고 말하며 웹툰의 영화화를 결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두 전작 <달콤, 살벌한 연인> <이층의 악당>에 비해 범죄의 색이 확연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태수의사기극과 그만의 독창적인 코미디가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그의 인장이 짙게 새겨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캐스팅 또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안재홍, 강소라를 비롯해 박영규, 김성오, 전여빈, 그리고 손재곤 감독의 영화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배우 김기천의 특별출연까지. 또 다른 특별출연 배우 한예리는 이번 작품에서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감독이다음엔 특별출연이 아니라 괜찮은 역할로 제안하고 싶다고 언급했을 정도. 여기에 동물 학대와 보호에 대한 메시지까지 놓치지 않고 묵직하게 담아내 웃음과 감동을 둘 다 잡아낸 똑똑한 작품이다.

해치지않아

감독 손재곤

출연 안재홍, 강소라, 박영규, 김성오, 전여빈, 박혁권

개봉 20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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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객원기자 B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