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의 전작들. <스위밍 풀> / <타임 투 리브> / <영 앤 뷰티풀>

'파격과 도발의 시네아스트'. 프랑수아 오종을 늘 따라다니는 수식이다. 그는 욕망이라는 테마를 꾸준히 변주한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로 2000년대 초 '프랑스영화계의 악동’으로 불리며 젊은 거장 반열에 올랐다. 오종의 영화에선 살인의 위험이 감도는 수영장에서든, 시한부를 선고 받은 사내의 황량한 마음에서든 늘 에로티시즘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악동'이 종종 시치미 뚝 떼도 진지한 척을 할 때마저도 어딘가 치기어리고 호들갑스럽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대를 저 멀리 20세기 초로 돌린 새 영화 <프란츠>는 오종의 작품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정제된 정서가 극 전반에 퍼져 있다.

<프란츠> 메인 예고편

1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1919년 독일의 작은 마을. 안나(폴라 비어)는 전쟁으로 약혼자 프란츠를 잃은 뒤에도 그의 부모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자신을 프란츠의 친구라 소개하는 프랑스인 아드리앵(피에르 니네이)이 마을이 찾아온다. 프랑스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아드리앵은 환영 받지 못하지만, 안나를 비롯한 프란츠의 가족들은 함께 그의 죽음을 그리워하며 상처를 공유하는 아드리앵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문제는 아드리앵이 얼결에 뱉은 거듭된 거짓말로 그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 그의 순수함에 사랑을 느끼던 안나는 결국 그 비밀을 알게 되고 혼란에 빠진다.

내가 죽인 남자

<프란츠>는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의 1932년작 <내가 죽인 남자>를 기반으로 한다. 전쟁터에서 독일군을 죽인 프랑스인이 종전 이후에도 괴로워하다가 용서를 구하고자 그의 집을 찾아가고, 그 가족이 자신을 프랑스인 친구라고 믿게 되면서 거짓말을 부풀리다가 그의 약혼자를 사랑하게 된다는 골격을 그대로 가져왔다. 하지만 오종은 루비치의 원작과는 달리, 프랑스인이 아닌 독일군의 약혼자에게 무게중심을 옮겼다. 독일인 루비치가 프랑스인 남자 주인공의 시점을 펼쳤다면, 프랑스인 오종은 독일인 여자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춘 채 전쟁의 비극을 이야기 하는 셈이다. 오종의 중심인물들이 대부분 여성이었다는 걸 떠올려본다면 당연한 듯 보이는 변화다.

프란츠

기존 오종의 방식이었다면 <프란츠>는 연인을 죽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여자의 욕망을 드러내는 데에 에너지를 쏟았을 것이다. 하지만 <프란츠>는 전쟁을 지낸 이들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를 어루만지는 데에 더 집중한다. 원작의 '내가 죽인 남자'가 아닌 '프란츠'라는 보편적인 이름을 제목으로 택한 것도 그런 방향과 닿아 있는 것 같다. 원작의 그것이 프랑스 남자가 품은 죄책감만을 드러내는 한편, '프란츠'는 그와 더불어 약혼자를 그리워하면서 그를 통해 만나게 된 이에 대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보다 풍부하게 드러낸다. 아드리앵이 거짓말을 통해 프란츠의 연인과 가족을 위로하면서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전반부보다는 그가 모든 걸 안나에게 고백하고 독일을 떠난 후 안나의 미묘한 변화를 세밀하게 보여주는 후반부가 훨씬 큰 감정적인 힘을 자랑한다. 마른 표정을 유지하고도 그토록 커다란 마음을 담아내는 폴라 비어가 발산하는 가만한 에너지는 <프란츠>의 얼굴이고 영혼이다.

안나 역의 폴라 비어

오종은 "프랑스와 독일이 공유한 역사의 아픔을 애도하기 위해" 흑백의 이미지를 택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건 흑백을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드문드문 파스텔톤의 컬러를 적용하면서 자칫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감정선을 보완했다는 점이다. 아드리앵의 거짓말에 등장하는 컬러는 프란츠의 가족들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심지어 전쟁 중에 벌어진 '진실'을 보여주는 순간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컬러는 안나가 프란츠에게 프로포즈 받았던 길을 아드리앵과 함께 걸어갈 때 아무렇지 않은 듯 스며드는 순간의 것이다. 오종은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의 적막한 마음에 사랑이 찾아오는 순간을 그렇게 단명하게 드러낸다.

프란츠

감독 프랑소와 오종

출연 피에르 니네이, 폴라 비어

개봉 2016 프랑스,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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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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