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맥베스> 메인 예고편

장엄한 결혼식. 카메라는 신부만 바라본다. 캐서린(플로렌스 퓨)의 모습에는 기쁨따위 없고, 지금 자신이 왜 여기에 서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불안만이 가득하다. 얼굴을 뒤덮은 면사포에 질식해버릴  것만 같다. 기우는 그치지 않는다. 설렘 없는 첫날밤,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로 방이 춥지 않느냐 같은 말이나 던지던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벗으시오"라고 '명령'하곤 등돌린 채 침대에 눕는다. 무미건조한 섹스 대신 수평선이 희미한 황량한 풍경이 따라붙는다.

<레이디 맥베스> 프롤로그 속 푸석푸석한 광경에서 사랑 없는 결혼에 착취당하는 여자의 고난이 펼쳐질 거라고 예상하기 십상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물론 캐서린의 결혼 생활이 행복할 리 없다. 아내를 아이 낳는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남편의 들러리 노릇을 하며 지루한 시간을 버텨야 하고, 언제부턴가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캐서린은 이 부조리를 참지 않는다. 애초부터 강압적인 시아버지와 남편의 태도에 짜증난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고, 그들의 되도 않는 요구에 제 의견을 똑바로 피력한다. 더불어 자기 시중을 드는 흑인 하녀 애나(나오미 아키에)가 흑인 하인들에게 유린당하는 걸 구해주는 신을 보면, 두 여성이 연대해 폭력의 고리를 끊는 착한 성장기 같은 걸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레이디 맥베스>는 그런 해피엔딩에 대한 기대를 보기 좋게 짓밟는다.

제목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처음 등장한 인물 '레이디 맥베스'는 그야말로 욕망의 화신이다. 권력을 탐하려는 의지는 분명하지만 행동하기를 주저하는 맥베스와 달리, 레이디 맥베스는 한시도 망설이지 않고 남편의 야욕을 북돋아 결국 그를 욕망의 구렁텅이에 처넣는 인물이다. 과거에는 더욱 파격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 캐릭터는 수많은 예술 작품들의 모티브가 됐고, <레이디 맥베스>가 바탕으로 삼은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소설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는 그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레스코프의 레이디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그것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남편을 종용해 뜻을 이루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그 욕망의 주체가 되어 맹렬한 기세로 파멸의 끝을 향해 돌진한다.

<레이디 맥베스>의 캐서린 역시 마찬가지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모두 집을 비운 사이, 캐서린은 자기 욕망을 충실하게 따른다. 속박에서 벗어난 그녀는 어느새 남편에게 들었던 고압적인 말을 그대로 내뱉으며 하인들을 제압한다. <레이디 맥베스>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캐서린이 애나를 괴롭히던 하인 세바스찬(코스모 자비스)에 이끌리면서부터다. 애나에게 험한 짓을 했다는 걸 빤히 알지만, 그럴수록 그에게 더 강력하게 매혹될 뿐이다. 감독 윌리엄 올드로이드는 캐서린이 세바스찬과 육체적으로 가까워지는 과정과 애나를 점점 하대하게 되는 과정을 교차해 보여줌으로써 과연 그녀의 자유에 동의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흑인 하녀 애나는 원작에 없는 캐릭터다. 이는 <레이디 맥베스>가 끊임없이 드러내려는 지옥의 고리를 명백히 하는 결정이다. 헐값에 늙은 지주의 아내로 팔려온 캐서린은 실상 '계급'과 '성별'의 차별로 고통받는 운명에 놓일 뻔하지만,  결국 '계급'의 상승과 '인종'의 우위에 서서 그 모든 면에서 약자에 놓인 애나를 기어코 끌어내려 자기가 원하는 걸 지켜내고자 발악한다.  <레이디 맥베스>가 제 욕구를 충족해나가는 인물을 따라감에도 불구하고 만족의 기쁨이 완벽하게 비어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기하학적인 프레임으로 잡아낸 공간을 벗어나 벌판에 몸을 맡기던 캐서린은, 더 이상 그 속박의 공간을 떠나지 않고 스스로 만든 더 큰 지옥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을 고통으로 내몬다. 폭력적인 태도로 애나를 대하는 걸 넘어, 자기에게 방해되는 이들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죽이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모골이 송연해질 수밖에 없다. 연쇄살인범의  '우아한' 범행일지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레이디 맥베스>의 히로인 플로렌스 퓨는 자기가 원하는 걸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격렬함과 그걸 '완성'시키기 위한 의연함을 능수능란하게 오가며 기괴한 파국의 주인공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이렇게 극단적인 팜므파탈은 처음이다.

레이디 맥베스

감독 윌리엄 올드로이드

출연 플로렌스 퓨

개봉 2016 영국

상세보기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재밌으셨나요? 내 손 안의 모바일 영화매거진 '네이버 영화'를 설정하면 더 많은 영화 콘텐츠를 매일 받아볼 수 있어요. 설정법이 궁금하다면 아래 배너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