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낮과 다르게 약간은 비일상적인 시간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밝은 하늘 아래 다른 사람들과 좋든 싫든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게 운명이라면 운명인데 심야에는 그런 상태에서 아주 약간은 벗어난다.
 
감정도 그렇다.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동물로서 낮에는 생존을 위해 활기차고 빠르게 움직이게 되지만 밤에는 반대가 된다. 좀 더 안정되고, 좀 더 가라앉아서 내일 하루를 다시 준비할 수 있게 한다.
 
대개는 그렇다는 말이다.
 
밤에 생활하고 낮에 잠드는, 그런 조금 일반적이지 않게 사는 사람도 드물지 않고 또 그런 사람들은 결국 남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런 조금씩 특이하고 달라서 조금은 더 힘들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려낸 영화가 있다. 바로 <심야식당 : 2015>

심야식당

감독 마츠오카 조지

출연 코바야시 카오루, 오다기리 죠

개봉 2015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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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30초 예고편

영화 <심야식당>은 원래 아베 야로가 그린 만화책이 원작이다. 간판도 따로 없이 めしや:밥집이라고만 쓰여있는 포렴을 내걸고 밤 12시에 문을 열어 아침 7시에 문을 닫는 식당을 배경으로 한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참고로 메뉴는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 하나. 그렇지만 메뉴에 없는 걸 주문해도 괜찮은 곳. 맥주나 사케, 소츄는 주종 관계없이 한 사람당 3잔까지만.
 
, 만화의 주인공을 굳이 말하자면 식장 주인(마스터라고 부른다)이 되겠지만 마스터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경우는 드물고 그때그때 식당을 찾아오는 손님의, 혹은 손님들 간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을 이룬다

메뉴는 간단하지만 메뉴에 없는 걸 주문해도 어지간하면 만들어주는 마스터, 삶의 무게를 각기 다른 모습으로 짊어지고 살아가는 손님들의 허름하지만 따뜻한 모습들 때문에 일본 현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대만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만화가 큰 인기를 끌면서 2009년에 처음 드라마로 제작되었고 시즌 2, 3까지 뒤이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영화 제작이 결정되어 2015년에 같은 제목의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만화처럼 드라마도 30여 분의 시간 동안 심야식당을 찾아오는 손님의 이야기를 하나씩 담았고, 이 영화에서도 서로 다르지만 조금씩 연결되는 3개의 이야기들을 모아 한 편의 영화로 만들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술집에서 일하다 남자의 두 번째 부인으로 살던 한 여인이 남편을 먼저 보낸 후 연하의 순진한 남자와 연애를 하다 헤어지는 이야기, 두 번째 에피소드는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다 그 남자친구가 돈을 들고 도망가는 바람에 길거리를 떠돌다 마스터와 같이 일하게 된 한 여자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로 후쿠시마를 덮친 쓰나미 때문에 부인을 잃은 남자와 자원봉사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근본적으로 밥집이지만 심야에 영업하기 때문에 술도 판매한다. 손님들은 맥주를 마시지만 하이볼과 일본주(사케), 그리고 손님에 따라서는 물을 탄 술(?)도 판다. 여기서는 영화 <마더워터>에서도 언급했던 하이볼을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다.

하이볼

이전 글(<마더 워터>, 흔하디흔한 칵테일과 잘 어울리는 영화)에서도 언급했지만 하이볼은 아주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일본 현지 이자카야에 가면 대부분은 그냥 조끼라 불리는 맥주 잔에 냉장고 얼음을 넣고 덕용 포장 형태로 페트병에 넣어서 판매되는 산토리나 니카 블랙 같은 저렴한 위스키를 사용해 만든다.
 
방법 역시 간단하다. 잔에 얼음을 넣고 1/4 정도 위스키를 채운 후 그 위에 탄산수를 넣으면 하이볼이 만들어진다. 그게 다다. 물론 바에서야 긴 경력을 가진 훈련된 바텐더가 다양한 종류의 싱글 몰트나 블렌디드를 사용해 고급 얼음에 온도를 잘 맞춘 탄산수를 넣어 서브하지만.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싼 물건이 형편없긴 쉽지만 싼 물건이 좋기는 어렵다. 하이볼도 그렇고, 사케도 그렇고 비싼 게 있으면 싼 것도 있다. 그래도 비싼 것만이 꼭 좋은 것이 아니고 싼 것이 꼭 나쁜 것도 아니다

긴자 한복판에서 수십 년간 경험을 쌓은 노련한 바텐더가 좋은 얼음과 잔, 그리고 술을 사용해 완성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하이볼이 있는 반면, 동네 허름한 이자카야 구석자리 다찌에 앉아 주인이 냉장고 얼음에 탄산도 충분하지 않은 탄산수로 대강 만들어주는 하이볼도 있다.
 
긴자에서 멋진 옷을 차려입고 격조 있는 공간에서 초고급 하이볼을 마시면 당연히 행복하겠지. 하지만 매일 그렇게 살 수는 없다. 바라는 공간은 근본적으로 연극 무대를 닮아 있고 그곳에 생활을 날것으로 녹여내긴 쉽지 않다. 뭣보다 하루 종일 뜨겁게 달궈진 맥반석 같은 세상에서 반건조 오징어처럼 이리 구부러지고 저리 삶을 태워가며 하루를 견딘 사람이 퇴근 후 동네 이자카야에서 벌컥벌컥 마실 하이볼이 굳이 그렇게까지 고급스러울 필요가 있을까? 조금 서툴고 조금 분량이 어긋나도 괜찮을 것이다. 우리 사는 모습이 그렇듯이.

삶은 항상 깨끗할 수 없고, 항상 당당할 수 없고, 항상 풍요로울 수도 없다. 그래서 허름한 이자카야의 하이볼은 존재가치를 갖는다. 그런 하이볼이 어울리는 공간이 바로 <심야식당> 아닐까?
 
위에도 언급했지만 영화 <심야식당>의 완성도가 아주 빼어나다고 하긴 어렵다. 그래도 이런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영화고, 제목에 걸맞게 심야에 하이볼이나 텐운 같은 사케를 한잔하면서 보면 좋은 영화다.

텐운

그러고 보니, 새콤달콤한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글을 쓰다 보니 영화에 나온 나폴리탄과 같이 하이볼을 마시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내 뱃살은 어쩌나.

+ 소위 ‘술맛’을 돋우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영화에 있어 주제가의 힘을 빼놓을 수 없다. 도심의 역설적인 쓸쓸함을 잘 표현한 이 주제가는 스즈키 츠네키치라는 사람이 부른 추억이라는 제목의 노래. 원곡은 ‘A Pretty Girl Milking Her Cow’라는 아일랜드 민요다. <심야식당>을 더 짙게 감상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비교해서 들어보시길.

<심야식당> 뮤직비디오
원곡 'A pretty girl milking her cow'

데렉 / 술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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