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수많은 영화가 있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 이들을 위해 쓴다. ‘씨네플레이’는 ‘씨플 재개봉관’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봉하면 당장 보러 갈 영화, 실제로 재개봉하는 영화들을 소개해왔다. 이번에 만나볼 영화는 14년 전, 2004년 3월에 개봉한 <빅 피쉬>이다. 

<빅 피쉬>는 다니엘 월레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이 위독하단 소식을 듣고 윌 블룸은 아내와 함께 집으로 향한다. 윌은 아버지의 허풍 섞인 인생 얘기를 들으며 커왔고, 끝내 자신의 삶을 털어놓지 않는 아버지와 3년간 대화하지 않았다. 윌은 이제 세상을 떠날 아버지에게 ‘재밌는 거짓말’이 아닌 진짜 본인의 인생을 들려달라고 부탁하지만, 에드워드는 자신의 이야기를 거짓말로 취급하냐며 그를 타박한다.

영화는 에드워드, 혹은 그 주변 사람들의 입을 빌려 에드워드의 삶과 현재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전설과도 같은 거대한 메기를 잡고, 마을에 위협을 가하는 거인을 데리고 떠나고, 숨겨진 마을과 서커스를 거쳐간 에드워드의 이야기는 동화적이면서 유쾌하다. 하지만 윌은 그의 진짜 인생을 듣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아버지와의 유대를 꿈꾼다. <빅 피쉬>는 에드워드의 인생과 윌의 시선, 두 가지 이야기를 통해 볼거리를 챙기고 질문을 남긴다.

빅 피쉬

감독 팀 버튼

출연 이완 맥그리거, 알버트 피니, 빌리 크루덥, 제시카 랭, 헬레나 본햄 카터, 알리슨 로먼, 마리옹 꼬띠아르

개봉 200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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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의 가장 따뜻한 판타지

<빅 피쉬>에서 팀 버튼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를 포기한다. 음울한 환경과 아름다운 풍경을 대비시켜 하나의 세계를 그렸던 전작들과 달리, <빅 피쉬>는 현실 위로 덧붙여진 허풍을 그리고자 극단적인 대비를 최대한 절제했다. 황색 톤의 색감과 영상으로 에드워드의 성격을 투영하고, 영화의 중심이 되는 긍정적인 정서를 표현했다.

팀 버튼 영화 중 가장 로맨틱한 장면도 <빅 피쉬>에서 나온다. 에드워드가 서커스장에서 산드라에게 반하는 장면과 에드워드가 산드라에게 1만 송이 황수선화로 고백하는 장면이다. 이 두 장면에 에드워드의 이야기가 추구하는 낭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무한한 가능성과 환상성이 내포돼 있다.


세세한 디테일도 흥미롭다. 생명을 상징하는 물을 갈구하는 에드워드가 병상에 누워, 음식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한 통조림을 먹는 건 의미심장하다. 에드워드가 그림자놀이로 어린 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실제(손)를 빛으로 왜곡시킨 환상(그림자)이란 점에서 영화 전체를 아우른다. 실내에서도 신을 신는 서양 문화권에서 맨발로 걷는다는 것, 에드워드가 거대한 폭우를 만나면서 차가 나무에 걸린 일 등 극중극의 특성상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해볼 수도 있다.


아버지를 향한 화해

팀 버튼의 영화를 봐왔다면, 누구라도 <빅 피쉬>가 그와 참 안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느낄 것이다. 1985년 <피위의 대모험>으로 데뷔해 2001년 <혹성탈출>까지, 팀 버튼은 평범한 이야기를 그린 적도 없고, 특히 부자관계에 집중한 적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일각에선 팀 버튼이 <빅 피쉬>를 선택한 이유가 2000년 아버지를 잃은 것과 관련돼 있다고도 말했다.

막상 <빅 피쉬>를 보고 나면,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허풍 속에 자신을 숨기는 아버지와 그의 진심을 알고 싶은 아들의 관계는 오히려 거꾸로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영화 속에서 주로 아버지가 부재한 인물을 그려온 팀 버튼은 오히려 에드워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빅 피쉬>에서 서로 이해할 수 없던, 환상을 꾸미는 사람과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이 서로를 응시하려 노력한다는 게 의미 있다. 늘 인생을 밝게 포장한 에드워드는 서서히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맞이해야 하고, 현실에 남아야 하는 윌은 가짜가 아닌 진짜 아버지의 맨얼굴을 기억하고 싶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바라는 건 다르지만,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두 사람에겐 서로를 인정해야만 하는 시간이 오고 만다.


무언가 믿는다는 것

다시 본 <빅 피쉬>는 무작정 부자 관계를 다룬 이야기가 아니었다. 극중 윌은 “아버지와 난 그냥 서로를 잘 아는 이방인 같았다”고 말한다. 윌이 “진짜 아빠의 이야기”를 알려달라고 하자 에드워드는 “단 한 번도 내가 아닌 적이 없다”고 반박한다. 가족의 관계를 벗어나 상대를 향한 믿음의 문제다. 믿을 수 없는 걸 믿어달라는 쪽과, 믿어달라는 말을 거부하는 쪽의 대립이다.

<빅 피쉬>는 이 문제가 죽음 앞에서야 해소되는 것으로 마무리짓는다. 윌이 에드워드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채워주고 진짜 그의 삶을 만나게 되는 결말은 가족을 다룬 영화답게 눈물을 쏟게 하고, 한편으론 진실과 환상 중 어떤 걸 선택하는지 각자 결론을 내리게 한다.

9년 뒤, 2012년에 이와 비슷한 문제를 제기한 영화가 있다. <빅 피쉬>처럼 소설을 원작으로 한 <라이프 오브 파이>다. 호랑이와 바다를 건너온 파이 파텔의 표류기는 막판에 새로운 해석을 만들며 진실과 믿음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빅 피쉬>를 보고 이 문제를 좀 더 고심해보고 싶다면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는 걸 추천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

감독 이안

출연 수라즈 샤르마, 이르판 칸, 라프 스팰

개봉 201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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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성찬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