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성격을 달리 하는 두 명의 거장에 주목한다. 장-클로드 브리소와 하인츠 에미히홀츠는 영화 서사와 형식, 스타일의 관습을 혁신하는 작품들로 확고한 세계를 형성한 감독들이다.

<템프팅>

먼저 브리소는 프랑스 영화의 계보 안에서 누구에게도 속해 있지 않은 예외적인 작가이다. 철학교사와 여학생의 격렬한 감정을 묘사한 <하얀 면사포>(1989), 통속적인 성애영화쯤으로 알려진 <남자들이 모르는 은밀한 것들>(2002)이 한국에 소개되었지만 독보적인 개성과 세심함으로 만들어진, 브리소의 10여 편의 노작은 창작의 자유를 얻기 위한 크고 작은 투쟁의 결과물이었다. 1987년작 <소리와 분노>가 칸국제영화제를 통해 알려진 이후 브리소의 이력은 누벨바그 작가 에릭 로메르와의 협력으로 이루어졌다. 로메르는 파트타임 교사였던 브리소에게 영화감독 일을 권유했고 여러 작품들에서 그의 후원자가 돼 주었다. 파리 교외 청소년들과 갱들을 묘사한 <소리와 분노> 직후 브리소는 사회적 관심을 가진 영화감독쯤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강도보다 브리소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판타지적 요소와 초현실적인 감각, 그리고 자연주의를 방해하는 그로테스크에 대한 끌림이다. <남자들의 모르는 은밀한 것들>은 장르의 혼합과 초현실적인 요소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다른 한편으로 브리소는 초월의 작가라 할 만하다. 그는 현실로부터의 초월, 장르의 관습으로부터의 초월, 제도와 도덕률로부터의 초월을 추구하면서 현실과 영화를 잇는 이미지의 힘을 신뢰하는 경향을 보인다. 19회 전주국제영화제 ‘마스터즈’ 섹션에서 상영되는 브리소의 근작 <템프팅>(2017)은 에릭 로메르 영화의 포르노그래피 버전처럼 보인다. 알몸의 여체가 스크린 위에 빈발하고 여성 인물들끼리의 ‘스리섬’ 섹스 신이 나오는 이 영화는 그러나 포르노그래피와는 관련이 없다. <템프팅>의 서사는 한마디로 종잡을 수 없다. 기차역에서 은밀한 동영상이 저장된 핸드폰을 주운 카밀과 핸드폰의 주인 수지, 카밀의 동거인이자 수지와 기이한 연적 관계를 이루는 클라라, 세 여인의 욕망과 자의식이 어지럽게 교차한다. <템프팅>에서 이 반문화적인 프랑스 감독의 출발점은 리비도이다. 우아한 에로틱 스릴러의 외양을 띤 이 영화는 존재감이 넘치는 성적우화이며, 타자에 대한 통제가 지닌 부조리함을 탐구하는 에세이다. 여성의 무고함과 활력을 표상하는 극중 인물들은 각자의 딜레마와 맞선다.<템프팅>의 원제는 ‘유혹하는 악마들’이다. 악마는 무엇으로 인간을 꾀는관습을 타파하고 개인은 어떻게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영적인 수행을 통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러한 관행은 우리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지 않는다. 여인들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감춰졌던 사실을 드러내는 방식에서는 에릭 로메르의 흔적이 느껴진다. 상당한 수위의 섹스 신과 몇몇 이미지들은 의도적인 인위성을 띄고 있지만 단지 쇼크를 주기 위한 선택으로 보이지 않는다. 완전한 상상의 장소 안에서 전개되는 것 같은 이 영화는 발자크적인 세계관과 소프트코어 포르노, 잔혹 개그, 히치콕적인 서스펜스를 결합한다.

<두 개의 대성당>

장-클로드 브리소와 달리 독일 감독 하인츠 에미히홀츠는 엄밀한 구조와 형식에 기초한 실험적인 영화들을 양산해왔다. “영화는 시간 안에 축조된 상상의 건축”이라고 믿는 에미히홀츠는 초기에 ‘구조영화’ 계열의 실험작들을 만들다가 건축과 영화의 관계를 탐구하는 다수의 작품을 연출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건축 관련 영화들의 최신작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트리트스케이프(대화)>(2017), 단편 <두 개의 대성당>(2018)을 선보인다. <스트리트스케이프(대화)>는 에미히홀츠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만든 네 편의 ‘스트리트스케이프’ 시리즈 영화 중 세 번째 장에 해당한다. 건축가나 건축에 기초한 그의 영화는 잘 알려진 도시의 유명한 거리나 길을 익명의 장소로 만든다. ‘스트리트스케이프’ 시리즈에서 그는 거리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보이즈 시티, 오클라호마, 멕시코시티 와 같은 횡단보도와 막 다른 골목, 황폐한 건물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건물은 현실의 응축으로서의 중요성을 갖지만 카메라는 주제와 직접적으 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식물이나 풍경과 앙상블을 이룬다.

<스트리트스케이프(대화)>

<스트리트스케이프(대화)>는 ‘이야기체 영화’의 형식으로 전개된다. 외상 심리학자 조하르 루빈스타인과 하인츠 에미히홀츠가 6일간 나누었던 대화에 기초한 이 영화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의 어느 건물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조명한다. 트라우마에 빠진 사람들, 영화와 건축의 관계에 대한 기나긴 대화는 도시 경관 이미지들과 조응하면서 새로운 주제를 제시한다. 이 영화의 뼈대는 그 자체가 영화가 되는 영화 제작의 분석이다. 에미히홀츠의 건축영화는 어떤 종류의 텍스트도 포함하지 않고 공간을 보여주지만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종종 비난을 받았다. 거리 장면에서 에미히홀츠(를 연기하는 미국 배우 존 에르드만)는 영화를 만들 때 그에게 의미가 있는 것을 자세히 설명한다. ‘스트리트스케이프’ 시리즈는 한 영화가 다른 영화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므로 이 대화는 4장 <디에스테(우루과이)>로 이어진다.

전체와 부분, 부분들 사이의 충돌을 구조화한 에미히홀츠의 장면 구성법은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주 미학을 연상시킨다. <두 개의 대성당>은 주어진 환경을 가늠할 수 없는 익명의 상황을 증가시킨다. 주어진 시간과 주어진 날씨 안에서 실제의 질감은 연속체처럼 보인다. 카메라는 개별 장면에서 이 연속체를 조명하거나 흐리게 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에미히홀츠의 영화에서 이미지는 사전에 설계되지 않는다. 때문에 그의 영화에는 카메라 뒤에서 의식을 형성하는 선택이 존재하지 않는다. 프레임의 결정 역시 틈을 메우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도시의 거리 네트워크를 반복 촬영하고 흘려보냄으로써 관객들은 많은 쇼트와 앵글, 거리, 사운드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들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정지 쇼트와 다중변각 이미지, 반복으로 만들어진 커넥션은 모두 가능한 루트들을 정의하기 위해 쓰인다.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는 구성적인 방식으로 조직한 영상은 진부한 것들로부터 새로움을 추출하면서 장소성이 사라진 형태의 순수한 충돌을 만들어낸다. <스트리트스케이프(대화)>와 <두 개의 대성당>은 이와 같은 이미지 제작자의 철학에 대한 유익한 연출론 <두 개의 대성당> 이다. 

템프팅

감독 장-클로드 브리소

출연 파비안느 베이브, 이자벨 프림, 애너 시가레비치

개봉 2018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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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대성당

감독 헤인즈 에미그홀즈

출연

개봉 2018 덴마크,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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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스케이프(대화)

감독 헤인즈 에미그홀즈

출연

개봉 2017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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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원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씨네21>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데일리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