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다가, 유독 다정한 남매가 나오면 생각했다. ‘아, 이거 드라마지?’ 실제로 현실에선 그런 남매가 드물다는 의미로 ‘현실 남매’란 신조어도 등장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속단은 금물.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이니까. 천우희와 그녀의 오빠 사이가 그렇다. 서로가 서로의 고민 상담 대상 1순위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고, 가끔 둘만의 여행도 훌쩍 떠나는 사이. 그러니까 비현실남매랄까. 동생의 얼굴로 쏟아지는 햇살까지도 세심히 신경 쓰는 오빠의 손이 어쩜 이리도 달달할 수 있단 말인가!
# 이제까지 이런 남매는 없었다
시우: 어쩜 남매 사이가 이토록 훈훈할 수 있죠?
우희: 하하하. 특이하다고 많이 그래요. 주변에서도.
오빠: 그런 이야기 들을 때마다 ‘이게 이상한 건가?’ 했어요. (웃음)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남매는 보통 데면데면하다고 하더라고요. 저희는 어릴 때부터 워낙 친했어요.
우희: 그렇다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듯 오글거리고 그러지는 않아요.
오빠: 네. 신파는 없습니다. (웃음)
시우: (엇, 제가 아까 본 건…)
우희: 오빠와는 시시콜콜한 것들도 모두 공유해요. 처음에 일 이야기는 잘 안 했었어요. 괜히 걱정할까 봐. 그런데 힘든 순간이 오니까 어디라도 털어놔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랬을 때 가장 가까운 게 가족이잖아요? 특히 오빠는 저와 나이가 비슷하기도 해서 공감할 여지가 많으니까, 더 많이 털어놓게 되더라고요.
시우: 자매 같은 관계군요.
우희: (설)경구 선배님도 그렇고 저희 가게에 오시는 선배님들이 그런 말씀 많이 하세요. “너희는 남매가 아니라, 자매 같아”라고.
오빠: 신기하신가 봐요.
시우: 신기합니다. (웃음) 그나저나, 가족을 스크린에서 보는 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요. 긴장도 될 것 같고요.
우희: 그보다 가족들이 훈수를 참 많이 뒀었죠. (일동 웃음)
오빠: 참견을 많이 했어요. (웃음)
우희: 그러다가 <한공주>로 제가 상을 받고 나서 이야기가 쏙 들어갔죠.
오빠: 이전에는 “너, 그렇게 연기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넌 톤은 좋은데, 자세가~” 막 이랬거든요. <한공주> 관련해서는 아찔한 순간이 있어요.
우희: 혹시?
오빠: 촬영 전에 우희가 슬럼프가 조금 있었어요. 그런데 들어간 촬영도 너무 힘들어보니까 속상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밥 먹다 말고 큰소리쳤죠. “야~ 그거 하지 마!”
우희: 그게 아마 제가 첫 촬영에서 멍들고 들어왔을 때일 거예요.
오빠: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리는 장면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되게 추웠거든요. 그래서 격양되게 소리쳤는데, <한공주>를 뜯어말리려 했다니…지금 생각하면 가슴 철렁하죠.
시우: 동생 배우 인생엔 큰 영향을 미친 영화가 됐으니까요.
오빠: 그러니까요. 지금도 종종 생각하죠. ‘아, 그때 큰일 날 뻔했다.’ (웃음)
시우: 지금은 동생이 대견한가요? 어떤 마음일까요?
우희: 그래, 어디 들어보자! (일동 웃음)
오빠: 부모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처음에는 우희가 배우 하겠다는 말을 믿지 않았어요. ‘배우 하겠다고? 생뚱맞은데?’ 하는 느낌이 있었죠. 우리 집이 터치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래, 한번 해 봐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진짜 연기를 하더라고요. 대학도 그쪽으로 진학하고. ‘아, 진짜 연기의 길을 걸으려나 보다’ 바라보면서도 많이 도와주지는 못했어요. 오디션도 늘 혼자 보러 다니고 했으니까. 그런 동생을 보면 대단하다 싶죠. 대견하기도 하고요. 동시에 걱정도 돼요.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테니까요.
시우: 동생이 가장 자랑스러울 때는요?
오빠: 엔딩 크레딧에 이름이 올라갈 때. 그땐 정말 뭉클해요. 작품에 참여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이름을 남긴다는 건 참 멋진 일 같아요. 동생 연기요?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죠. 감정에 취해서 보면 저 혼자 좋고 말 수 있으니까요. 최측근으로서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면서 보려고 해요.
시우: 노골적인 질문 하나 할게요.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가 누구인가요?
오빠: 당연히 천우희죠!
시우: 연기를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여배우도 천우희인가요?
오빠: 그건 또 다르죠~ (일동 웃음)
우희: 오빠가 나름 냉정해요!
오빠: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천우희지만, 가장 잘하는 배우라고까지 아직은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언제고 이야기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있어요.
우희: (들릴 듯 말 듯) 내가 노력할게.
시우: <천우희의 희희낙낙>은 어떻게 보고 계세요?
오빠: 좋아요. 저는 그런 걸 했으면 좋겠다고 늘 이야기했었거든요. 우희가 쾌활해요. 그런데 워낙 어두운 캐릭터를 많이 맡다 보니, 많이들 어두운 이미지로 보시더라고요. 그게 어울리기도 하고요. 다만 가족의 마음이라는 게, 우희의 진짜 모습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게 있죠. <희희낙낙>에서의 인간적인 모습이 실제의 우희와 가장 닮아 있어요. 그래서 제가 많이 추천했죠. 했으면 좋겠다.
시우: <희희낙낙>은 오빠 영향이 크군요.
오빠: 저에게 상의는 하는데 답은 늘 정해져 있어요. ‘답정너’에요, ‘답정너’. (일동 웃음)
우희: 맞아. 난 ‘답정너!’ 하하하.
오빠: 가끔 ‘나에게 도대체 왜 물어보는 거지?’ 할 때도 있죠.
우희: 제가 듣고 싶은 답을 해 줄 때까지 물어보거든요.
시우: 아직 우희 씨가 대중에게 보여주지 않은 면이 많다고 느끼세요?
오빠: 많아요. 제가 영화에 전문적으로 관여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우희가 슬픈 연기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우: 잠깐만요, 슬픈 연기요? 그건 우희 씨 장기 아닌가요?
오빠: 제가 느끼기에 동생은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부분에서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모습을 아직 덜 보여 준 것 같아요. 가령 슬픔을 깊게 토해 낼만한 장면 자체가 별로 없었다고 저는 느껴요. 그런 신이 좀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시우: 배우에겐 민감한 질문일 수 있는데, 오빠니까 편하게 물어볼게요. 어떤 감독님께서 우희 씨 내면의 슬픔을 깊게 꺼내 봐 주면 좋겠어요?
우희: 오, 어려운 질문이다.
오빠: 저의 견해로는…이창동 감독님. 이창동 감독님이 캐스팅해 주신다면 우희가 정말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우: 이창동 감독님 현장은 배우에게 쉽지 않다고 들었어요.
우희: 저는 이겨낼 수 있습니다! (웃음) 너무 해 보고 싶죠. 이창동 감독님이 또 인간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하시잖아요? 그게 특히나 궁금해요.
시우: 우희 씨가 할리우드에 가서 슈퍼히어로 영화도 해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던데요?
오빠: 일단 국내에서 내가 보고 싶은 연기를 좀 보여주고! (웃음)
우희: 알았어. 한국에서 일단 잘하고!
시우: 참, 작년에 둘만의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고요.
우희: 조금 멀리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마침 프랑스에 오빠 친구들이 있으니, 이왕이면 지인이 있는 곳으로 가보자 마음먹었죠. 그랬더니 오빠가 따라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처음엔 혼자 가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해서 “새언니가 안 보내줄 텐데?” 했는데, 새언니도 너무 쿨하게 “그래, 같이 다녀 와” 하지 뭐예요. 그런데 <코코>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웃음)
시우: 픽사 애니메이션 <코코>요?
우희: 네. 그 여행이 오빠가 아이들이랑 떨어져 보는 첫 여행이었어요. 그런데 파리 가는 비행기 안에서 오빠가 하필 <코코>를 본 거예요. <코코>가 엄청 감동적인 가족 영화잖아요. 가족 사랑이 유별난 오빠를 완전 ‘저격’해 버린 거죠. 비행기 안에서 폭풍 눈물을 막~
오빠: 한국에 있는 가족 생각이 너무 나서 그만. (웃음)
우희: 마침 저희가 여행 떠나기 바로 전에 파리에서 테러가 있었어요. 또 파리에 한국 여행객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그때부터 오빠가 ‘멘붕’이 된 거죠. 안전에 대한 우려에, 혹시나 있을지 모를 ‘도촬’로부터 저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에…정신을 못 차리더라고요.
시우: 거의 매니저 마음이었군요.
오빠: 혹시 우리가 잘못되면 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우리 애들은 또 얼마나 슬플까 등등 제가 소설을 쓴 거죠. (웃음)
시우: 여행 중에 다투지는 않았나요?
우희: 없었어요. 나중에 제가 한 번 폭발하긴 했어요. 오빠가 저와 달리, 어릴 때 꾸미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남자였어요. 팩도 매일 하는. 그런데 아이를 낳고 가장이 되면서 본인이 좋아하는 걸 잊어버렸더라고요. ‘아, 우리 오빠가 아저씨가 됐구나’ 싶어서 속상했죠.
시우: 뭔가 엄마 마음인데요?
우희: 하하. 그런가요?
# ‘강강약약’, 천우희의 사랑법
시우: 제가 알기로는 지금 우희 씨가 연애 비수기에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누가 됐든, 우희 씨 남자 친구 입장에서는 오빠가 ‘허들’일 수 있겠다 생각. 너무 친하니까.
오빠: 그럴 것 같아요. 저를 어려워하거나 경계하지 않을까 싶긴 해요.
우희: 그런데 연애에 있어서, 저라는 사람 자체가 남자를 만나기 쉬운 타입은 아닌 것 같아요.
시우: 어떤 부분에서요?
우희: 남자든 여자든 가식이나 허세를 보이는 사람에겐 매력을 거의 못 느껴요. 조금만 으스대거나 진정성이 없어 보이면 호감이 바로 달아나 버려요. 그럴 때마다 ‘나 사람 만나기 참 쉽지 않겠다’ 생각하죠.
오빠: (끄덕끄덕) 남자친구 입장이라면 맞추기 힘든 성격이 아닐지.
우희: 왜 이러세요, 저 그렇다고 변덕스럽지는 않아요! (웃음)
오빠: 그러니까 보는 눈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핵심은 눈이 ‘높다’가 아니라, ‘다르다’에요.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좋아하는 걸, 우희는 우선시하지 않아요. 여장부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우희: 그건 그래. 저는 연애할 때 상대에게 기대는 타입이 아니에요. 선물 같은 것도 “됐어! 필요 없어!” 이러고.
오빠: 우희는 정말 ‘외유내강’이죠.
시우: 자기를 너무 사랑하면 연애를 또 잘 못 한다고 하더라고요. 자신이 세운 기준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 걸 보면 우희 씨는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
우희: 저를 사랑하죠. 안 그러면 이 일을 못 할 거예요. 배우는 기본적으로 보여 지는 직업이잖아요. 제가 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남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빠: 우희를 이해해주고 좋은 점을 더 좋게 평가해 주는 착한 남자를 만나면 좋겠어요.
시우: 너무 착한 남자에겐 매력을 못 느낀다는 사람도 있는데요.
우희: 저는 착한 남자가 좋아요. 제 성격이 상대적이거든요. 연애뿐 아니라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저는 강한 사람 앞에서 강하고, 유연하고 젠틀한 사람 앞에선 똑같이 부드러워져요.
시우: ‘강한 사람 앞에서 약하고, 약한 사람 앞에서 강한 사람’은 아니군요.
우희: 네. ‘강강-약약’인지라 좋은 사람을 만나면 저도 마냥 좋을 수 있어요. 반대로 ‘나는 너를 이겨 먹을 거야, 이러면~!’
시우: 서로 피곤해지는?
우희: 그렇죠. 하하하. 늘 좋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사람이 나를 이해하려고 하는 구나란 생각이 들면 저도 똑같이 베풀게 되는 것 같아요.
시우: 그런데 좋은 남자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우희: 오빠가 사람을 잘 봐요. 남자뿐 아니라 전반적으로요. 가끔 무서울 때도 있어요. ‘신기’가 있나, 하고.
오빠: 느낌인데 거의 맞더라고요. 어머니가 가게 하는 걸 곁에서 오래도록 지켜봤고, 또 제가 직접 장사를 한 것도 10년이 됐어요. 어렸을 때부터 워낙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어느 순간 사람에 대한 감이 생긴 것 같아요. 레이더가 조금 발달했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우희도 그런 쪽으로는 발달돼 있는 것 같아요.
우희: 서로 그래요. 내가 더 사람 잘 본다고. 하하하.
시우: 배우는 인간을 연구하는 직업이기도 하니, 연관이 있겠네요.
우희: 네. 아무래도 관찰을 많이 하다 보니 사람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는 게 있어요.
시우: 우희 씨는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된다고 생각하는 쪽인가요?
우희: 그 논제에 대해 딜레마가 한 번 왔었어요.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좋은 배우 중에서 그와 다르게 비도덕적인 사람도 봤거든요. 그런 게 커리어나 위치에 별 영향을 안 주는 모습도 봤고요. 그럴 걸 볼 땐 혼동이 오기도 하죠. 인격이 좋지 않음에도 흥행이 잘된다거나 연기를 잘하면 좋은 배우인가. 아니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일을 묵묵하게 하는 사람이 좋은 배우인가.
오빠: 그런데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런 것 같아요. 아이러니 투성이죠.
우희: 또 ‘좋은 배우’라는 게, 타인의 평가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도 많잖아요? 흠. 어려워요. 하지만 저는 아직 믿고 싶어요. 좋은 배우는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 내 사람만 나를 믿어주면
시우: 우희 씨가 어릴 때 ‘신동’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오빠: 도예가인 아버지 영향인지, 잘 그렸어요. 그래서 저는 동생이 미술 쪽으로 갈 줄 알았어요.
시우: 동생이 미술을 그만둔 게 아쉽나요?
오빠: 아니요. 어떤 면에서는 지금의 우희가 부럽기도 해요. 자기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산다는 게 되게 힘든 일이잖아요. 하고 싶은 걸 잘해 낸다는 건 더 어렵고요. 그걸 평생 업으로 삼아 먹고 산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죠. 그런 사람이 제 주변에 별로 없거든요. 저도 그렇고요. 가끔 ‘내 꿈은 원래 이게 아닌데’ 하면서 살죠. 그런 면에서 우희가 부러워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또 그 꿈을 어느 정도 이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게.
시우: 우희 씨에게 연기는 ‘좋아하는 일’인 거죠?
우희: 제일 좋아하는 일이죠. 제일 좋아하는 일인데 제일 괴롭기도 하고요.
시우: 좋아하지 않으면 괴로울 일도 없죠.
우희: 맞아요. 그래서 조금 더 엄격하게 제 일을 바라보기도 하죠.
시우: 그런데 미술은 왜 계속하지 않았던 건가요?
우희: 흥미가 떨어졌다고 해야 할까. 지역적인 영향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울만한 곳이 없었거든요. 엄마가 교육열이 높으셨다면 서울에라도 보내서 공부를 시키셨을 텐데, 그때 엄마는 정말 바쁘셨거든요. 저희 먹여 살리느라고. 매일 똑같은 것만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시들해지더라고요.
시우: 만약 연기에 흥미가 떨어진다면요?
우희: 그런 일은 절대 없으리라 생각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연기에 대한 의욕이 떨어진 적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걸 겪은 게, 아까 말씀드린 작년 즈음이에요.
오빠: 힘들어했지.
우희: 제가 본능적으로 경계하는 게, 자기 감성에 빠지는 거예요. 그런데 그땐 그랬어요. 내가 가장 힘든 것 같고, 가장 불쌍한 것 같고. 그런 생각이 들면서 공허해지고 그랬죠. TV에서 아름다운 배우들이 행복해하는 걸 보면서 괜히 제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다니까요. (웃음) ‘난,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면서. 힘들어하는 저를 보고 오빠가 그랬어요. “그들이 하고 있는 걸 네가 못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들이 하고 싶은 걸 네가 하고 있기도 하다”고. 그때는 그 말이 와 닿지 않았어요. 너무 힘드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을 종종 생각해요. 참 많은 위로가 되죠.
시우: 적확한 조언이었군요.
우희: 돌아보면 제가 저 스스로를 많이 아끼지 않았단 생각이 들어요.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하며 버텼던 것들이 쌓여서 결국 폭발했던 거죠. 그렇게 바닥을 치고 나니, 좋은 것들도 있어요. 이제는 저 자신을 조금 보살필 수 있게 됐다고 해야 하나?
오빠: 그런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우희가 자기에 대한 투자를 너무 안 해요. 가령 저는 100만 원을 벌면 그게 맞게 쓰는데, 동생은 100만 원을 벌면 10만 원도 안 써요. 어느 정도 수입이 생기면 좋은 옷을 산다든지, 가방을 산다든지 할 수 있잖아요. 피부 관리를 받을 수도 있고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우희: 물론 좋은 옷 입고 좋은 곳에 가고 싶기도 하죠. 그런데 저도 가족애가 크다 보니 ‘나만 누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그런 미안함이 있다 보니, 저도 그냥 안 하게 되더라고요.
오빠: 그럴 필요 정말 없다니까. 우희에게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그래서 “야, 돈 좀 써. 너에게 투자 좀 해!” 에요.
시우: 물욕이 없는 우희 씨의 가장 강한 욕구는…식욕?
오빠: 반박 불가네요. (일동 웃음)
우희: 그게 문제야. 먹는 거에 대한 집착해, 내가. 하하하.
시우: 최근 했던 가장 큰 지출이 뭔가요?
우희: 한동안 촬영으로 바빴어요. 그래서 요즘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친구들 만나서 맛있는 거 사주는 거? 아, 결국 또 먹는 거네요. (웃음) 그런데 저는 이게 참 좋아요. 얼마 전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는 게 가장 행복”이란 말이 있더라고요.
시우: 뭔가 자기 합리화를 하고 계신 느낌입니다. (웃음)
우희: 그런 셈이죠! 하하하.
시우: 우희 씨 요리 잘해요?
오빠: 잘해요. 어머니 영향인지 기본 손맛이 있어요.
공간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그의 취향, 그의 취미, 그의 이야기들이. 그리고 때론 그 이상이 보일 때가 있는데, 천우희의 공간이 그랬다. 그녀의 공간에서 발견한 건 그러니까 ‘가족’이었다. 그건 천우희를 단단히 받치고 있는 거대한 힘이기도 했다.
시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어요. 천우희의 공간은 결국 ‘가족’이지 않을까 하는. 이 가게를 지정한 것도 가족의 역사가 새겨진 곳이기 때문인 것 같고요.
우희: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죠. 이전에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게 무엇이냐’를 주제로 인터뷰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가족’이라고 했더니, 그건 인터뷰 화하기 힘들다고 양해를 구해 오더라고요. 가족이란 개념 자체가 너무 포괄적이다 보니 살짝 당황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배우가 될 수 있었던 힘은 정말이지 90%가 가족이거든요. 남들은 다 아니라고 해도, 내 사람만 나를 믿어주면 버틸 수 있잖아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런 점에서 ‘나는 참 복 받은 사람이구나’를 느끼죠.
인터뷰 도중, 천우희는 배우 김남길과 메신저 연락이 닿았다. <어느 날>에서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은 지금도 종종 만나며 우정을 도모하고 배우로서의 고민을 나누는 사이. 김남길은 [A-room]과도 인연이 있는 배우인지라, 그가 근방을 지나고 있다는 소식에 우린 짧게라도 만나서 차 한 잔을 마시기로 했다. 드라마 <열혈사제> 촬영으로 한창 분주한 김남길에게 긴 시간이 허락되지는 않았지만, 짧은 찰나의 만남에서도 천우희와 김남길의 서로를 향한 응원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 PM 05:00 커피숍
‘우아하하하하하하’ 들썩이는 웃음소리. 김남길이다. 그런 김남길의 웃음을 받는 천우희의 목소리도 한층 더 경쾌해진다. 천우희와 김남길은 만나자마자 농담을 섞고, 서로를 적당히 놀리기도 하며 수다를 이어나갔다. 천우희와 그녀의 친오빠가 ‘영화 속 연인’ 같은 느낌이었다면, 영화 속 인연이었던 천우희와 김남길은 오히려 ‘현실 남매’ 같은 느낌이 들어 흥미로웠달까. 두 배우의 대화 중 인상적이었던 건 ‘이미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러고 보니 김남길과 천우희 모두 그들이 지닌 본래의 밝은 기질과 반대로 대중에겐 짙고 어둡게 기억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배우의 운명일까. 배우는 다수의 대중에게 가장 깊게 읽힌 작품으로 규정되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두 사람은 자신들이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과 대중이 자신들에게 바라는 것의 경계를 의식하며, 다음 스텝을 조금 더 다채롭게 밟아나가고 싶어 했다. 천우희가 말했듯 김남길의 진짜 매력은 “외모를 거스르는 깨발랄”. 김남길이 말했듯 천우희의 장점은 “카메라 각도에 따라 CF 여신과 중성적인 느낌을 오가는 천의 얼굴”이다. 두 사람이 앞으로 그려나갈 수많은 ‘어느 날’들을 기대해 봐도 좋을 듯하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