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5일,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에 의해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질식사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2020년에도 여전한 미국 사회의 흑인에 대한 태도를 여지없이 드러낸 이 사건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백인 경찰의 강제진압에 흑인 남성이 목 졸려 사망한 이 사건은 1989년 스파이크 리 감독이 발표한 영화 <똑바로 살아라> 속 라디오 라힘의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똑바로 살아라>를 음악을 중심으로 돌이켜본다.


Don't Shoot Me

Take 6

<똑바로 살아라>의 배경은 흑인들이 주로 모여 사는 뉴욕 브루클린의 마을 베드 스터이(Bed-Stuy)다. 영화는 8시 정각에 자명종 시계를 울리며 마을의 DJ 미스터 세뇨르 러브 대디(새뮤얼 L. 잭슨)가 아침 방송을 시작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테이크 6(Take 6)의 'Don't Shoot Me' 위로, (촬영 당시 마흔 살이었던 새뮤얼 L. 잭슨의) 시원시원하고 또박또박한 멘트가 쏟아진다. <똑바로 살아라>가 공개되기 한 해 전인 1988년 데뷔한 아카펠라 그룹 테이크 6의 여섯 멤버가 알알이 새긴 보컬 하모니는 아침을 여는 라디오 프로그램 시그널송으로 아주 그만이다. 상쾌한 화음 위 러브 대디의 능글맞은 코멘트를 듣고 있자면 <똑바로 살아라>는 그저 기분 좋은 영화일 것만 같다. 허나, DJ가 전하는 오늘의 일기 예보는 "더워요!!!!!!"다. 38도까지 치솟는 지독한 더위의 어느 여름날을 통과하는 베드 스터이에선 과연 어떤 일이 펼쳐지게 될까?


Can't Stand It

Steel Pulse

"갈수록 덥고 후덥지근해지니 여러분은 미쳐갑니다" "지옥 같은 무더위" "익어버린 뉴욕" "엄청난 열기!" "38도를 향해 가는 흐리고 무덥고 습한 날씨". 거리가 깔린 신문들은 하나같이 찌는 듯한 더위에 대해 대서특필하고 있다. 베드 스터이 사람들은 그럭저럭 괜찮아 보인다. 대낮에도 샤워를 하고, 얼음물에 얼굴을 담그거나, 바깥에 나와 계단에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고, 소화전을 풀어 신나라 물놀이를 한다. 영국의 레게 밴드 스틸 펄스(Steel Pulse)의 'Can't Stand It'은 각자의 방식으로 (노래 제목과 달리) 무더위를 견뎌내는 베드 스터이 사람들의 한때를 그저 평화롭게 수식한다. <똑바로 살아라> 통틀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이때가 유일하다. 언제나 커다란 붐박스로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Fight the Power'를 틀고 다니는 라디오 라힘(빌 넌)이 등장하면서 'Can't Stand It'는 서서히 사라지지만 즐거운 분위기는 여전하다. 고급차를 모는 어느 백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Tu y Yo

Rubén Blades

주인공 무키(스파이크 리)는 이탈리아계인 살(대니 아이엘로)과 두 아들이 운영하는 피자 가게에서 배달 일을 한다. 흑인들이 사는 마을에서 장사하는 게 늘 못마땅한 피노(존 터투로)와 달리 동생 비토(리차드 에드슨)는 매사에 별 의지가 없어 보이는 무키와 가깝게 지낸다. 무키와 비토는 각자 누이와 형제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러브 대디의 스튜디오에 피자 배달을 간다. 피자를 받아들고 기분이 한껏 더 좋아진 러브 대디는 무키에게 직접 멘트를 맡기고, 무키는 "제 마음과 영혼을 담아 이 노래를 (연인) 티나에게 바칩니다"라고 말한다. 이 노래와 함께 흐르는 건 파나마 출신의 루벤 블라데스(Ruben Blades)의 살사 곡 ' Tu y yo'다. 장르가 장르인지라, 무리 지어 있던 히스패닉들이 "역시 살사가 최고지~" 하며 이 노래를 즐기고 있는데, 라디오 라힘이 나타나 퍼블릭 에너미의 'Fight the Power'의 볼륨을 한껏 올리면서 그 흥을 깬다. 하지만 노래는 끝나지 않는다. 버긴 아웃(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는 어느 백인이 자기와 부딪히고도 사과도 없이 지나가자 그를 다짜고짜 불러세워선 구름같이 몰려든 친구들과 함께 그를 몰아세운다. "우리는 사랑해요"라는 제목을 단 루벤 블라데스의 노래는 흔들흔들 흥겹기만 한데, 그 노래가 방송을 타는 사이 흑인과 히스패닉, 흑인과 백인 사이의 신경전이 확연히 드러난다. 베드 스터이를 둘러싼 인종간의 갈등이 서서히 곪아가고 있다.


Da Mayor Buys Roses

Da Mayor Loves Mother Sister

The Natural Spiritual Orchestra

<똑바로 살아라>는 캐릭터의 영화다. 저마다 확연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그저 시간을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는 걸 비추는 것만으로 2시간 짜리 영화가 가능해진다. 특히 관객들의 마음이 쏠리는 이는 마을의 원로인 다 메이어(오씨 데이비스)다. 언제나 허름한 차림새에 미미하게 취해 있는 듯한 다 메이어는 유독 외로워 보인다.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마주치지만 그를 존중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늘 창문가에 걸터앉아 거리를 바라보는 마더 시스터(루비 디)는 다 메이어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다. 얼빠진 것처럼 어슬렁대는 다 메이어를 향해 쏘아붙이지만,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엔 은근히 서로에 대한 존중이 배어 있다.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슈퍼마켓에 맥주만 사러오던 다 메이어는 어느 날 가게 바깥에 놓인 장미꽃을 사서 마더 시스터에게 선사한다. 그리고 며칠 뒤, 다 메이어가 차에 치일 뻔한 어린 아이를 구하고도 묘하게 냉대를 받는 걸 지켜본 마더 시스터는 (영화 속에서 몇 안 되는) 한밤 중에 그를 불러세운다. "아까 다 봤는데 멍청한 짓을 했더군. 그래도 용감했지. 당신이 애 목숨을 구했어. (...) 히죽일 것 없어. 우리 사이는 변함없거든. 그쪽은 좋은 일은 한 거고, 마더 시스터는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이 두 개의 신을 스파이크 리 감독의 아버지인 빌 리(Bill Lee)가 만든 오리지널 스코어가 꾸민다. 각각 제목은 "다 메이어 장미를 사다", "다 메이어는 마더 시스터를 사랑한다"다. 점점 고조되어 가는 갈등의 분위기에 얼마간 숨통을 트이게 하는 사랑스런 트랙들이다.


Feel So Good

Perri

Why Don't We Try

Keith John

무키에겐 여자친구 티나(로지 페레즈)와 아들 헥터가 있다. 하지만 영화는 무키가 그들과 시간을 보내는 데에 좀처럼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무키가 찾아오자 티나가 "다음엔 또 언제 돌아오려고?" 말하는 것 보면, 무키가 그들을 방치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도 티나와 무키가 보내는 시간은 꽤나 행복해 보이기만 하다. 컴필레이션 버전의 OST에 실린 노래 페리(Perri)의 'Feel So Good'과 키스 존(Keith John)의 'Why Don't We Try' 두 개가 무키/티나 커플의 세레나데처럼 작용한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방 안에서 "재미를 보자"고 안달하는 남자와 싫은 듯 아닌 듯 튕기는 여자의 모습엔 'Feel So Good'이, 무키가 티나의 몸 구석구석을 얼음으로 훑으면서 신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에로틱한 순간은 'Why Don't We Try'가 꾸민다. 그렇게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여준 후, 베드 스터이는 갈등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간다.


Fight the Power

Public Enemy

힙합 그룹 퍼블릭 에너미의 'Fight the Power'는 <똑바로 살아라>의 주제가와도 같은 트랙이다. "우리를 막으려면 수백만 명이 필요하다(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는 정치적인 메시지로 똘똘 뭉친 앨범을 발표했던 퍼블릭 에너미에게 스파이크 리가 직접 <똑바로 살아라>를 아우를 만한 노래를 직접 의뢰해 탄생한 곡이다. 티나 역의 로지 페레즈가 열정적으로 몸을 흔드는 몽타주로 이뤄진 오프닝 크레딧에 야성미를 한껏 더한 'Fight the Power'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라디오 라힘이 장기처럼 들고 다니는 붐박스를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똑바로 살아라>의 클라이맥스인 피자 가게 격투 시퀀스에서도 'Fight the Power'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살의 피자 가게 벽을 채운 사진들에 흑인이 한 명도 없다는 데에 불만을 가진 버긴 아웃과 여느 때처럼 스피커를 빵빵 틀어놓고 피자 가게에 들어온 라디오 라힘은 살과 신경전을 벌이다가 그가 붐박스를 부숴버리자 살 삼부자와 동네 흑인 청년들의 싸움이 시작된다. 격렬한 몸싸움에 나타난 백인 경찰들에게 목이 졸려서 라디오 라힘이 질식사하고, 베드 스터이의 흑인들은 살의 피자 가게를 불태워버린다. 라디오 라힘의 박살 난 붐박스도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Fight the Power'는 계속 불타는 피자 가게 안에 울려퍼지고 있다.


Never Explain Love

Al Jarreau

<똑바로 살아라>는 지난 밤 비극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베드 스터이의 새로운 아침에 이어,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두 인물 마틴 루더 킹 Jr.과 맬컴 X가 남긴 명언과 함께 끝난다. 엔딩 크레딧을 채우는 노래는 알 자로(Al Jarreau)가 부르는 'Never Explain Love'다. 앞서 소개한 영화 <똑바로 살아라>를 위해 만들어진 신곡들이 대개 80년대 말 당시 신인이었던 뮤지션들의 것이었다면, 'Never Explain Love'는 70년대 중반 데뷔해 화려한 커리어를 보여준 명장 알 자로의 노래다. <똑바로 살아라> OST에 모인 12개의 노래 가운데 다섯 곡에 이름을 올린 레이몬드 존스(Raymond Jones)의 노래는, 한 마을의 가벼운 일상에서 시작해 인종간의 갈등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마주한 관객들에게 전하는 가벼운 작별인사처럼 들린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