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를 재미있게 본 관객이라면
영화 시작 전에 다음과 같은 화면이 등장하는 걸 기억하실 겁니다.

뭔가 익숙한 화면이다?

뭔가 옛날 영화스러우면서도
시야가 옆으로 탁 트이는 것이 시원시원하고
흥미롭고 궁금했던 분들이라면 주목!
<라라랜드>의 많은 장면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저 '시네마스코프 55' 덕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 단어가 뜻하는 게 뭔지 알아봐야겠죠? 

<라라랜드>는 시네마스코프 영화

지금부터 <라라랜드>의 예고편에 등장하는 몇 장면을 캡처해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영화에서 미아(엠마 스톤)가 매력적인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끌려가듯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이 일하는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장면이죠. 레스토랑에 들어서기 전에 터벅터벅 걷던 벽면에는 그녀가 꿈꾸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그려져 있고, 꿈많던 그녀가 인생 최악의 오디션에 낙방해서 풀이 죽은 채로 그 길 위를 걸어갑니다.

화면에서 저 레스토랑 문으로 들어서는 미아와 건물 벽화 그림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었던 건 저렇게 옆으로 화면이 길어서입니다. 우리가 보통 영화의 화면 비율이라고 부르는 것, 그러니까 영화의 화면 사이즈는 감독의 의도에 따라서 다양하게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인데요.

<라라랜드>의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저렇게 위 아래는 얇고 양 옆으로 길게 늘어진 화면 비율을 선택해서 영화를 만든 것이지요. 그리고 그 화면 비율을 뜻하는 용어가 바로 '시네마스코프 55'입니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모습이죠?

그렇다면 왜 '시네마스코프 55'라는 로고가 영화 시작 전에 뜬 것이냐. 대체 영화의 화면 비율이 뭐가 중해서? 라는 궁금증이 생기겠죠?

여기엔 다미엔 차젤레 감독이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 찬사를 바치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라라랜드>라는 영화 자체가 감독이 좋아했던 고전 영화들의 요소를 갖고 있는 영화거든요. 여기서 바로 감독은 과거 고전 영화들에서만 쓰였던 특정한 화면 비율까지도 그대로 따라서 당시 영화를 재현하듯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요즘 흔히 '와이드 스크린'이라고 부르는 옆으로 긴 화면 비율의 영화가 과거 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들의 화면 비율이었거든요.

아니, 지금도 '와이드 스크린' 영화가 있지 않느냐, 라는 의문이 또 생기겠죠? 그때는 지금이랑 뭐가 달랐기에 감독이 굳이 구분까지 해가면서 영화 시작 전에 로고를 띄웠을까.

지금부터 간단하게 감독이 찬사를 바쳤던 과거의 영화들의 화면 비율에 대해서, 그 탄생 배경을 간단하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시네마스코프는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해서, 시네마스코프는 1953년부터 1967년 까지 아나모픽 렌즈로 촬영한 와이드 스크린 영화를 말합니다. 위의 흑백사진 보이시죠? 당시 시네마스코프를 알리던 광고 모습입니다.
극장에서 관객들이 옆으로 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홍보를 하는 것인데요. 흔히 우리가 보는 영화는 여러가지 화면 사이즈를 갖고 있습니다. 즉, 영화마다 화면 사이즈가 전부 다르다는 것이죠.

녹색 선의 사이즈가 옛날 영화들, 혹은 TV 브라운관 시절의 영상 사이즈입니다. 파란 선의 2.35:1은 그에 비해 옆으로 훨씬 길죠. 이를 와이드 스크린 사이즈라고 합니다.

TV와 경쟁하기 위해
만들었다

20세기 초반 영화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지금처럼 옆으로 긴 와이드 스크린 화면의 영화는 없었습니다. 대부분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 사이즈를 가진 영화로 만들어졌지요. 그건 영상을 촬영해서 기록하는 필름의 크기와도 관계가 있는데요. 1.33:1의 비율이라는 것은 필름의 크기에 해당하는 만큼을 영상으로 찍어 영사했던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옆으로 영화가 점점 길어졌을까요?

그건 영화가 TV와 경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영화 스튜디오는 지금처럼 열심히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서 영화 한 편을 만들곤 했는데 TV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극장에 오질 않게 된 겁니다. 집에서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데 누가 극장까지 가서 굳이 비싼 돈 들여서 보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극장들은 사람들이 극장을 찾게 할 여러가지 방안을 구상하기 시작하죠.

영화를 놀이기구처럼 만들자!

영화를 본다는 행위 자체를 마치 하나의 놀이기구 체험처럼 만들어버리면 안방 TV와 확실한 차이가 있겠다 판단한 극장은 작은 TV 화면으로는 볼 수 없는 옆으로 엄청 긴 화면의 영상을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일반 영화 사이즈의 거의 3배에 가까운 형태였던 '시네라마'를 비롯해서 3D 영화까지 등장했지요. 1950년대에 이미 할리우드 관객들은 3D 영화를 체험하고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험, 한 번 해보고 나면 별 거 아니구나, 또 시들시들해지기 마련이죠. 지금과 똑같이 당시에도 3D 안경이 귀찮기도 했고요. 사람들은 점점 피로도를 호소하며 극장을 찾는 발길이 뜸해집니다. 그래서 극장은 뭔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죠.

눈 호강을 위한 트릭

네. 이거는 어려운 설명이니까 짧게 끝내겠습니다. 시네마스코프는 일종의 광학 트릭을 사용해서 원래는 필름의 크기만큼만 찍을 수 있는 장면을 양 옆으로 펼쳐서 더 많은 영상 이미지를 화면에 담을 수 있게 만든 렌즈 기술입니다. 아무튼 이 시네마스코프라는 게 처음 개발되면서 관객들은 그 동안 봤던 일반적인 정사각에 가까운 영화 화면 사이즈를 답답하게 여기게 됐죠. 그리고 TV로는 볼 수 없는 (당연히 당시에는 와이드 TV가 없었으니까요) 시네마스코프를 통해서 오로지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진 하나 보고 넘어갈까요? 시네마스코프를 처음 도입, 개발했던 20세기폭스사에서 처음으로 그 기술을 도입해 만든 영화가 바로 <The Robe>라는 영화입니다. 폭스사를 시작으로 콜롬비아, 워너브러더스, 유니버설, MGM, 디즈니 스튜디오 등 많은 영화사들이 시네마스코프를 도입해서 영화를 찍기 시작했죠.

그리고 이게 바로 업계의 대세가 되기 시작합니다. 극장에는 다시 관객이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당시 각광받던 3D 영화는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시네마스코프 때문에 3D 영화가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 극장들은 시네마스코프 영화를 이렇게 홍보했다고 합니다.

"시네마스코프는 안경 없이 볼 수 없는 기적이다."

시네마스코프로 쓴
LA에 대한 사랑 고백

<라라랜드>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시네마스코프 55'라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시네마스코프'와는 조금, 아주 약간 화면 비율이 다릅니다. 필름에는 영상 이미지만 영사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사운드도 함께 필름에 심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는데요. 그래서 사운드 부분만큼 필름 면적이 줄어들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담을 수 있는 이미지 크기가 줄어들게 되지요. 그래서 폭스사에서는 필름 크기 자체를 크게 만들어서 일반적인 필름 크기인 35mm보다 큰 55.625mm의 필름을 만들어 거기에 영화를 찍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시네마스코프 55'입니다. 설명이 어렵지요?

아무튼 '시네마스코프 55'는 영화 역사에서 아주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에 더 좋은 렌즈, 촬영 기법 등이 개발되었기 때문이죠.

<라라랜드>가 굳이 수많은 촬영 기법과 화면 비율 중에서 '시네마스코프 55'의 비율을 표방하며 영화를 만든 것은 영화 역사에서 특히 시네마스코프 영화 중 아주 짧게 존재했다가 사라진 '시네마스코프 55'를 만들어서 영화를 찍으려 했던 당시 영화인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함일 것입니다. 실제로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라라랜드>를 "시네마스코프에 담아 보낸 LA를 향한 연애편지"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화면 비율을 아름답게 보여주려는
장면들

양 옆으로 길게 늘어진 화면 비율은 사람의 시야를 탁 트이게 하는 효과도 있는 반면에 위 아래가 좁기 때문에 다소 갑갑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요, 이런 상충된 효과가 어우러져 묘한 느낌을 주기도 해요. <라라랜드>에서 두 사람이 공원에서 춤을 출 때는 옆으로 촥촥 펼쳐지는 와이드 스크린의 매력을 특히 잘 보여주고 있죠. 

예고편에 등장하지 않아서 미처 캡처하지 못한 장면들이 많은데요. 이렇게 화면 사이즈가 중요한 영화이다 보니까 관객들이 어떤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느냐도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와이드 스크린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화면 사이즈를 제공하는 극장 상영관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같은 영화라고 모두 같은 영화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안타까운 현실.

혹시 <라라랜드>를 두 번 세 번 보고 싶다면 꼭 한 번은 와이드 스크린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상영관에서 보시길 권합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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