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영화에는 온몸을 내던지는 영웅도 등장하지만, 자기 혼자 살겠다고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밉상들도 등장하지요. 명치를 세게 때리고 싶은 영화 속 밉상들을 소개합니다.
<감기>의 부역자 최동치 의원
호흡기로 감염되는 치사율 100%의 강력한 질병이 분당을 휩씁니다. 분당이 지역구인 최동치(최병모) 의원은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분당을 폐쇄하자는 전문가의 의견에 코웃음을 칩니다. 준비해놓은 국제행사가 많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막상 폐쇄하고 난 후에는 감염자와 감염 의심자를 같이 수용하거나 시민들의 SNS 확산을 막는 등 비인격적인 행정에 앞장섭니다. 역시 밉상 캐릭터인 스나이더(버리스 스타웃)는 분당에 폭격을 퍼부어서라도 다른 나라로 감염이 확산되지 않게 하겠다는 비뚫어진 ‘대의’라도 가지고 있지만, 최동치 의원은 그저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리저리 말을 바꾸기 바쁩니다. (사실, 극 초반 자신을 구해준 지구(장혁)에게 이유 없이 쌀쌀맞은 인해(수애)가 더 밉상이라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부산행>의 국민 밉상 김의성
역시 밉상 하면 김의성, ‘국민 밉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습니다. <부산행>에서 용석(김의석)은 사람들이 인간애와 이기심 사이에서 고민하는 장면마다 이기심을 택하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석우(공유)를 감염자로 몰아세우기도 하고, 자기를 구해준 기장(정석용)이 좀비떼에 희생되는 사이 살아남기도 하지요. 우리들의 마요미, 마동석이 매우 안타까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도 용석 때문이지요. 김의성은 <부산행>의 관객이 1200만 명을 돌파하면, 마동석에게 ‘명존쎄’(명치를 아주 세게 때린다는 뜻의 인터넷 용어)를 당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SNS에서 센스 있게 소통할 줄 아는 멋진 아재이기도 합니다. 국민 밉상이라 불리면서도 어찌 된 일인지 인기가 급상승하는 기현상이 벌어졌지요.
<판도라>의 꼰대 국무총리
한국영화에는 ‘이경영 어워즈’가 따로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다작을 이어가고 있는 이경영입니다. <내부자들>의 장필우 의원이나 <암살>의 강인국처럼 비열한 꼰대 연기를 자주 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개봉한 <판도라>에서도 원전 사고를 은폐하고 축소하기 급급한 국무총리로 등장합니다. 그는 국민이 동요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를 들어 언론을 통제하고 대통령(김명민)에게 가야 할 정보를 모두 차단해버립니다. 그러는 사이 정부는 효율적인 콘트롤타워 구실을 못하게 되지요.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대통령이 재난 대책본부를 장악하기 전까지 총리의 악행은 계속됩니다. 박정우 감독의 의도대로 우리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 많아 보고 나면 입맛이 쓴 재난영화입니다.
<터널>의 ‘기레기’ 조 기자
평범한 자동차 딜러 정수(하정우)가 붕괴 사고로 터널에 갇히게 됩니다. 김대경(오달수)을 비롯한 구조대원들이 정수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가운데, 다양한 이권이 개입되고 사고 현장에선 대한민국의 축소판 같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각계각층의 밉상들이 두루 등장하는데요. 그중에서 보는 사람들을 가장 속 터지게 했던 인물은 조 기자(유승목)였지요. 사람이 죽거나 말거나 온통 특종 생각밖에 없는 그는 터널 안에 홀로 갇혀 있는 정수에게 전화를 걸어 단독 생방송을 하기 바쁩니다. 겨우겨우 연결된 핸드폰의 배터리를 낭비하지 말라는 구조대장 김대경의 요청에 방송을 방해한다며 되려 난리를 피우는 진상 중의 진상이었습니다.
<연가시>의 기생충보다 못한 제임스 김
대부분 밉상의 악행은 우연히 벌어진 재난 속에서 자긴 혼자 살아남으려 했던 생존 본능에 가까웠지만, <연가시>의 제임스 김(이형철)은 재난을 철저하게 설계한 악당입니다. 그는 싸게 인수한 제약회사의 주가를 올리고 구충제를 비싸게 팔기 위해 ‘변종 연가시’를 풀어놓는 범죄를 저지릅니다. 온 국민들이 죽어가는 위급한 상황, 정부가 합성법을 포함한 모든 제조법을 공개하라고 압박하자, ‘특허권’을 근거로 공개를 거부하지요. 한편으로 회사를 5조에 인수해가면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고 그 상황에서도 정부와 딜을 치는 파렴치한입니다. 제임스 김의 의도대로 정부가 문서에 사인을 하기 직전, 모든 비밀을 알게 된 총리(전국환)가 그에게 일갈합니다. “이런 기생충만도 못한 놈의 새끼!”
재난영화 속 밉상 캐릭터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기심의 부스러기를 꼭꼭 뭉쳐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빚어놓은 캐릭터를 손가락질하며 영화를 보다가 문득, 같은 상황이라면 내가 밉상이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곤 하더라고요.
씨네플레이 객원 에디터 오욕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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