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결말까지 다루고 있음을 명시한다.

“아, 일하기 싫다.” 무신경하게 습관적인 문장을 내뱉었다가, 가만히 앉아서 방금 말한 문장을 고쳐 써본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은 뭐였을까? 문장은 “아, 일을 지금처럼 하기는 싫다.”가 되었다가 다시 “아, 일을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더 잘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하기 싫다.”가 되고, 다시 “아, 일을 잘 하고 싶다.”가 된다. 분명 일하기 싫다고 말해 놓고는, 의미를 따라가보니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한다. 아, 대체 뭐라는 거야. 일하기 싫다니까! 도리질을 치며 생각을 떨쳐 내려 해도 내심 알고 있다. 내가 일하기 싫은 건 사실 일을 더 잘 하고 싶어서라고. 매번 내가 써 낸 글에 만족하지 못하고 혼자 자책하는 일 없이, 하루라도 개운하게 송고하고 잠들고 싶어서라고.

자기 일에 애정이 남은 사람들이 내뱉는 “일하기 싫다”는 대체로 그런 의미에 가깝다. 정말 노동하기 싫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더 좋은 컨디션으로 더 좋은 결과물을 내놓고 싶은 그런 마음,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흔쾌히 몰두하고 싶은 그런 마음. 그게 안 되어 화가 나고 서글픈 뭐 그런 마음. 우리 대부분이 그렇지 않나? 분명 처음 일을 시작할 때에는 누구보다 일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으로 출발했을 테니까. 그런 마음 때문에 우리는 입으로는 습관처럼 “일하기 싫다”고 중얼거리면서도 새 작업복을 사고, 새 공구를 들이고, 새 키보드를 산다. 나도 아직은 다행히 그렇다. 이 글에서도 보이듯, 새 키보드를 산다고 해서 글이 마법 같이 잘 쓰여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속 월터(벤 스틸러) 또한, 말은 안 해도 쳇바퀴 돌 듯 하는 일이 썩 즐겁지만은 않은 사람이다. 월터는 지난 16년 간 포토 저널리즘 잡지 <라이프>지의 네거티브 필름 현상부서에서 조용히 일해왔는데, 수많은 사진 작가들이 디지털로 넘어간 시대에 네거티브 필름을 만지고 현상한다는 일부터가 이미 조금은 시들한 업무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월터는 지루한 출근길에, 꼴 보기 싫은 상사 앞에, 남 몰래 좋아하는 다른 부서 직원 앞에 설 때면 자꾸 공상 속으로 도피한다. 그의 공상 속에서 월터는 과묵하고 소심한 소시민 직장인이 아니라 온갖 위험을 온몸으로 돌파해내는 멋진 영웅이다. 불길에 휩싸인 건물 속으로 용감하게 뛰어들어가 생명을 구해내고, 온갖 오지를 거침없이 탐험하는 그런 영웅.

상상이 현실이 된 건, 지겨워 할 일조차도 사라질 위기 때문이었다. 웬 닷컴 회사가 <라이프> 지를 인수했는데, 닷컴으로 벼락 부자가 된 듯한 새 CEO 테드(애덤 스콧)는 브랜드 밸류에만 관심이 있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잡지 출판에는 애정이 없다. 무례하고 얄팍한 새 CEO 테드 때문에 졸지에 폐간호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도 서글픈데, 설상가상 표지 사진이 될 컷은 보이지 않는다. 평소 월터와는 필름과 편지로만 교류를 나누던 전설적인 사진작가 숀 오코넬(숀 펜)이 ‘삶의 정수를 담은 한 컷’이니 폐간호 표지로 실어달라고 부탁한 25번 컷이 어디로 갔는지 사라진 것이다. 문제의 25번 컷을 찾지 못하면 해고당할 위기에 처한 월터는, 전 세계를 돌며 사진을 찍는 숀의 발자취를 쫓아다니며 사진을 찾는 모험을 시작한다.

희한한 일이지. 어차피 월터가 해고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25번 컷의 유무 문제는 아닐 것이다. 잡지가 사라지면 그 잡지에 실릴 사진을 현상하는 월터의 일자리도 안전하지 않을 테니까. 그럼에도 월터는 목숨을 걸고 모험에 나선다. 술에 취한 파일럿이 운전하는 헬리콥터에 오르고, 상어들이 우글거리는 바다로 뛰어든다. 폭발하는 화산도, 사방이 온통 하얀 설산도, 월터는 마다하지 않고 오른다. 왜 이렇게까지 열심일까? 늘 상상으로만 하고 있던 모험을 할 기회여서? 글쎄, 내 생각이지만, 아마 지겨워 할 일조차 사라지고 그 마무리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늘 공상으로 도피해야 했던 삶이지만, 그렇다고 애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월터가 산과 바다를 넘나들었던 건, 자신이 16년 동안 사랑했던 일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였으리라.

이쯤 되면 도대체 그 문제의 25번 컷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궁금해 질 법도 하다. 반군과 어울리고 빗발치는 총알을 피해봤으며 온갖 거친 환경 속을 헤쳐 온 숀 오코넬이 생각한 ‘삶의 정수’란 무엇일까? 천신만고 끝에 문제의 25번 컷을 찾은 월터는, 폐간호 발행을 이틀 남겨두고 사무실에 필름을 전달한다. 드디어 25번 컷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한 순간, 월터는 놀라움에 할 말을 잃는다. 자신과 달리 세상 수많은 것들을 보고 들어온 사진작가 숀 오코넬이 고른 ‘삶의 정수를 담은 한 컷’은, 다름 아닌 <라이프> 지 사옥 앞에 앉아 네거티브 필름 현상 롤을 들여다보고 있는 월터 자신의 사진이었다. 25번 컷을 찾는 여행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커녕 자신이 사는 동네조차 떠나본 적이 손에 꼽힐 만큼 드물었던 지루한 책상물림 사내. 하지만 그 지루한 일을 16년 동안 사랑하며 살아온 어느 성실한 직장인의 얼굴. 세상 모든 걸 보고 온 숀은, 그 지루하고 평범한 얼굴이야말로 삶의 정수를 담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절대 ‘일을 잘 하는’ 상태에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일을 잘 한다’는 건 이상향인데, 일을 하면서 일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질수록, 일을 생각하는 사고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그 이상향은 점점 더 거창해지기 마련이니까. ‘일을 잘 한다’의 기준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일 솜씨는 기껏해야 산술급수적으로 올라가는 게 고작일 테지. 그래서 우린 매일 일하기 싫고, 일하기 싫고, 또 일하기 싫어하면서도 어쨌거나 해내려고 발버둥칠 것이다. 그러니까 ‘일을 잘 하는’ 건 사실 상태가 아니라 과정인 게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매 순간. 조금 더 한 사람의 몫을 해내고 일을 일 같이 해내야 한다고 자신에게 중얼거리는 과정의 우리는 일을 잘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마치 월터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 이렇게 말하며 글을 마무리해보자. 오늘 하루도 ‘아, 일하기 싫다’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어떻게든 해내고야 만 당신, 정말 일 잘 하셨어요.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