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고고학> 포스터.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만난 지 8시간 만에 사랑에 빠진 남녀가 있다. 인식(기윤)은 영실(옥자연)을 자유로운 영혼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해달라는 약속을 받아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식의 집착은 심해지고, 영실은 뒤틀려가는 관계 속에서도 약속을 지키고자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해달라는 그 약속을. 그렇게 8년이 흐르고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진다. 영실은 불온했던 과거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보낸 시간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을까?

4월 12일 개봉한 영화 <사랑의 고고학>(감독 이완민)은 8년 간의 연애와 4년 간의 이별, 그 지난한 과정을 통해 느리지만 꿋꿋하게 변화하는 영실의 서툴지만 단호한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한국 영화의 작가주의 계보를 이어간다는 평을 받는 이완민 감독이 데뷔작 <누에치던 방>(2016) 이후 5년 만에 들고 온 신작이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고, 예테보리국제영화제 잉마르베리만 경쟁 부문, 싱가포르국제영화제 아시아장편영화 경쟁 부문에 초청되는 등 이미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완민 감독은 <사랑의 고고학>을 “영화 제목이 ‘사랑의 고고학’인데 정작 이 영화 어디에도 사랑이 없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더불어 “과거의 연애와 관계, 그리고 현재의 상태 또 미래에 바라고 있는 관계 같은 것들이 층층이 놓였을 때 그것 자체로 고고학적”이라고 밝힌 이완민 감독을 만나 <사랑의 고고학>과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랑의 고고학> 이완민 감독.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누에치던 방> 이후 5년 만에 두 번째 영화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누에치던 방>을 2016년에 촬영했어요. 개봉을 2018년에 했고, 한 4년 정도 독립영화와 관련된 활동을 했어요. <사랑의 고고학> 시나리오 집필을 시작한 게 2019년 정도였습니다. 촬영은 2021년 7월에 했고요. 2022년 12월에 완성해 이제 개봉을 앞두고 있네요.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사랑의 고고학>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죠. 이번에 개봉하는 최종편집본이 이전 버전과 비교해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그때는 러닝타임이 168분이었고요, 지금은 163분으로 5분 정도 줄었어요. 분량을 줄이는 게 목적은 아니었는데요, 자의식 과잉이다 싶은 부분은 들어냈고, 부연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되는 건 추가했습니다(웃음). 영실이 장례식에 가는 장면에서 누구의 장례식인지 정도의 설명은 필요하다 싶어서 추가한 정도예요.

<사랑의 고고학> 스틸컷.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사랑의 고고학>은 어떤 영화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영실이라는 한 고고학자의 이야기입니다. 고고학자라는 직업의 특수성이 있어요. 독립연구자라는 특수성이죠. 그리고 영실과 인식(기윤) 사이의 러브스토리 안에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관객 여러분께서 직접 보시고 판단하면 좋을 것 같아요.

<누에치던 방>은 10대 소녀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였죠. <사랑의 고고학>에서는 40대를 앞둔 한 여인의 일상을 담았습니다. 혹시 감독님의 자전적인 부분이 녹아있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일단 자전적인 영화는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말씀드린 후 부연 설명을 할게요. 아무래도 <사랑의 고고학>은 인물의 내밀한 심리상태를 많이 드러내는 영화거든요. 그렇다고 해도 제가 경험할 수 있는 자아는 하나라는 한계에서 보면, 직간접적인 것들이 많이 들어가 있겠죠. 그럼에도 저와 제 주변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특수성을 희석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습니다. 다양한 참고자료를 넣으려고 했고요.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단일한 기승전결 구조로 진행되지 않거든요. 여러 개의 선택지를 놓고 어떤 걸 따라갈까를 작업 중에 많이 고민했습니다.

<사랑의 고고학> 스틸컷.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그러면 이야기의 영감은 어디서 받으신 건가요?

시나리오를 본격 집필하기 시작한 건 2019년 쯤이라고 말씀드렸지만, 자료 수집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했죠. 영감이라기보다는 보통 시나리오를 쓸 때 제가 문제적으로 느끼는 것들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당시 그런 부분에 문제를 많이 느꼈던 거 같아요. 저 스스로도 과거의 어떤 부분을 재해석하게 되는 부분들이 이 즈음에 한참 있었고요. 그러니까 2017년, 2018년은 소위 미투운동이라는 시대적 배경 하에 저는 물론 제 주변 사람들도 과거를 재해석하고 있다고 느낀 거죠. 이걸 ‘미시 폭력’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상 관계 속에서의 가시적이지 않는 폭력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고 그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사랑의 고고학>이라는 제목이 재미있어요. 어떻게 지으신 건가요?

사랑에 방점을 찍을 때랑 고고학에 방점을 찍을 때 느낌이 너무 다르더라고요. 양쪽으로 생각해보는 게 재밌게 느껴져서 그렇게 정했어요. 영실의 직업을 고고학자로 설정한 건 좀 더 나중이었고요. 제목에서 미셸 푸코의 책 ‘지식의 고고학’ 같은 다른 어떤 책들을 연상시키려는 요소도 있었죠. 그런 것들이 저에겐 재밌게 느껴졌습니다.

고고학은 오래된 유적을 찾아내는 학문이잖아요. 그런 고고학이랑 사랑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건가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데요. 유적지에서 어느 정도 발굴이 되면 비닐로 덮어서 현장을 보존하잖아요. 비 들어가지 말라고요. 이런 고고학 연구의 특징과 사랑의 특질이 어느 정도 연결이 되는 건가요?

그런 쪽으로는 저도 연관을 못 시켜봤는데 말씀하신 그런 단상이 재밌네요. 사실 현장을 비닐로 덮는 건 비가 스며들지 말라고 하는 건데요. 현장에서 보니 매일 반복적으로 하시는 일이더라고요.

<사랑의 고고학> 스틸컷.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예산은 얼마 정도 들었나요?

3억 정도 들었어요. 2021년 7~8월에 23회차로 크랭크업했고요.

저예산인데 영화 뒷부분에 유적지 현장을 웅장하게 보여주는 스펙터클한 부감샷이 있었어요. 앞에서는 유적지 현장의 일부만 보여주다가 전부가 드러나는 장면인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드론 촬영이어서 크게 돈이 들어가지는 않았어요(웃음). 그 장면은 처음부터 시나리오에도 굉장히 구체화되어 있었고요. 고고학자들, 인부들에 대해 가졌던 경외를 표현한 거 같아요. 이런 일을 하는 매일 반복적으로 하시는 분들에 대한, 뭔가 어떤 반복적인 일을 하면서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유적지 현장을 부감으로 찍은 장면이나 요가학원에서 사람들이 누워있는 장면이 다르지 않아요. 둘 모두 경외심을 표현한 겁니다.

영실이라는 캐릭터가 말이죠. 참 이렇게 말하면 좀 그런데 ‘고구마’ 캐릭터 같아요.

저도 ‘고구마’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웃음). 다만 제가 하고 싶었던 건 원칙주의자적인 캐릭터를 끝까지 밀어붙이고 싶었어요. 한 번 그렇게 가보자라고요. 일상적인 인물을 제시하는 데에는 제가 그닥 흥미가 없거든요. 부조리하거나 이 인물의 특성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갈 때 어떤 문제가 생기고, 또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이 재밌게 느껴졌어요.

또 한편으로는 제가 과거 인터뷰에서 한 번 했던 이야기 중 하나인데요. ‘그래, 내가 고구마라서 미안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나 고구마라서 어쩔 건데?’, ‘내가 이런 데 뭐가 어때?’, ‘고구마여도 괜찮아’처럼 어떤 포지셔닝이나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도 궁금했던 거 같아요. 고구마 같은 캐릭터가 변화해야만 하는 요소인 건지, 아니면 그냥 어떤 개인의 한 특수성 내지는 성향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지, 아니면 오히려 그런 성향에 대한 질책을 폭력으로 인지하고 맞설 수 있어야 하는 것인지 그런 부분도 탐구해보고 싶었어요.

<사랑의 고고학> 스틸컷.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인식(기윤)이 나쁜 남자, 아니 극단적으로 ‘지질한’ 남자라는 건 관객이 금방 알아차리겠더라고요. 요즘 말로 ‘가스라이팅’의 전형을 보여주는 거 같고요. 영화에서는 영실의 선배 교수가 인식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정확하게 말해주기까지 합니다. 그런데도 영실은 왜 못 떠나는 건가요?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측면이 있죠. 일단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건 오류의 순간들이었어요. 인식이 영실에게 말하잖아요. “너 때문에 내가 트라우마가 생겼다”라고요. 가스라이팅이 대체로 그런 식의 전가를 통해 많이 이뤄진다는 자료를 접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영실은 ‘내가 이렇게 연약한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줬으니, 끝까지 지켜줘야 해’라는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들이 재밌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약한 영실이 강한 인식을 지켜줘야 한다는 설정도 재밌었고요. 도발이라고까지 말하긴 그렇지만, 기존 멜로드라마의 화법을 전복시키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화에서 굉장히 통쾌하게 뭔가가 드러나지는 않아요. 그런데 오히려 그게 더 현실적인 거 같아요. 실제 상황에서 우리 역시 아리송한 상황에 놓이잖아요. 뭔가 명쾌하지 않은 것처럼. 특히 감정이입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상대의 감정에 이입해서 자기감정에 소홀하게 된다는 자료를 접하면서 이건 영실에게 해당한다는 생각도 들어서 그렇게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

사랑에 자꾸 실패하면서 영실은 잘못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실은 몸에 자꾸 관심을 돌려요. 40년간 관심 갖고 쓰지 않았던 발을 위해 걷기 교정 교육을 받고 신발을 사고요, 또 기후 위기를 비판하는 소녀의 유엔연설을 보고는 요가학원에 등록하기도 합니다. 뭔가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자기 몸 안으로 숨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이런 영실의 행동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까요?

방금 짚으신 몸과 관련된 자극도 흥미로운 단상이란 생각이 듭니다. 제가 굳이 발이나 요가 에피소드를 넣은 이유 역시 단일하게 설명하기는 어렵겠죠. 음, 아무래도 마흔 살 정도 되면 신체가 노화되면서 체력을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요(웃음). 그런 차원에서 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또 뭐라도 하려는, 그러니까 안간힘을 쓰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뭔가 문제는 분명 있는데 어떻게 벗어나야할지 방법을 모르니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후위기 연설의 핵심은 ‘How dare you’라는 말이었어요. ‘네가 어떻게 감히!’라는 부분에 제가 초점을 맞춘 건데요. 이 정도로 강한 말을 누군가에게 할 수 있으려면, 자기가 굉장히 가치 있는 존재라고 인식하거나, 자기 존중이 전제될 때에야 가능하죠. 그래서 저한테는 그 말이 굉장히 큰 충격으로 와 닿았어요. 왜냐면 영실은 한 번도 이런 방향으로 생각을 해보지 못했거든요. 늘 자기 안에서 원인을 찾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줬어’라는 자책의 굴레에 매어 있었는데, ‘네가 어떻게 감히’라는 발언을 하는 사람 앞에서 뭔가 각성, 전환 내지는 충격을 받은 거거예요. 강한 무언가 될 수 있겠다는 자극을 받은 거죠.

<사랑의 고고학> 스틸컷.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제대로 잘못 읽었네요(웃음).

잘못 읽는 건 없다고 봐요. 두루두루 이야기될 수 있도록 배치를 한 거죠. 저는 오히려 말씀하신 부분으로 더 생각해보고 싶단 생각도 듭니다(웃음).

영실은 일 년 동안 잠적합니다. 일도 안 하고요. 오랜만에 만난 절친에게 말하죠. “누군가의 마음에 들려는 거 안 하려고 한다, 추접스럽기도 한 거 같다”라고요. 새로운 시도도 해요. 늘 꿈꿨던 잡지를 만들기 위해 네 명을 모아 ‘어벤져스’도 결성하고요. 그런데 마지막에 또 짝사랑남을 찾아가서 고백을 못하고 돌아옵니다. 빈집으로요. 이것이야말로 영원한 되돌이표 아닌가요?

그렇게 되돌이표를 만들 수도 있을 거 같네요(웃음). 그런데 저는 그렇게 관계를 새롭게 만드려고 하는 게 되돌이표라고 느껴져요. 영실은 계속 구원자를 찾고자 한다는 느낌이 강해서요. 사실 영실은 그 남자의 실체나 그 남자가 보낸 문자조차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자기 안의 환상에 갇혀서 이 사람을 자기와 연관시키려 하고 있는 거죠. 그런 차원에서 인식이 처음에 영실에게 했던 말이 돌아옵니다. “니가 나의 구원자야”라는 말요. 저는 그것을 영실도 반복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영실이 혼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한다는 것, 그렇게 자신을 알게 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좀 더 자기에게 폭력적이지 않게 되겠죠. 또 자신이 폭력적인 상황에 있다는 걸 인지할 수 있고, 자기 스스로 더 안정되는 것이 보이겠죠. 환상 없는 상태가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사랑의 고고학> 스틸컷.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안정적인 카메라가 인상적입니다. 풀샷, 롱샷이 많더라고요. 인물의 감정에 너무 깊게 들어가지도 않는 거 같기도 하고요. 촬영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김지연 촬영감독이랑 첫 미팅 때부터 했던 이야기가 거리두기가 중요하단 거였어요. 방금 말씀하신 부분이죠. 클로즈업은 최대한 자제하고 풀샷 위주로 가게 됐던 이유도 거기에서 오는 거 같아요.

매미 소리 같은 것 말고는 현장음도 철저히 배제하신 것 같아요. 배경 음악도 거의 없고요. 어떤 의도가 있었을까요?

두 개를 나눠서 이야기해볼게요. 제가 <사랑의 고고학>에서 다루고자 했던 상당 부분이 고독과 관련된 거다 보니 그렇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영실이 실제로 집 안에서 혼자서 뭔가를 하는 장면이 많다 보니까, 그것의 현장감이 고요하게 느껴졌을 거 같아요. 그래도 발굴현장에서 나는 호미질, 땅 긁는 소리는 들어가 있어요. 아무래도 혼자 있는 일상 장면이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데서 오는 거 같네요.

배경음악과 관련해서는, 저는 음악을 최대한 배제하고자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었어요. 그래도 이번에는 음악감독과 작업을 한번 해보자고 시도했죠. 그래도 서사와 관련된 음악만 나옵니다. 이어폰을 낀다든지 하는 장면이요. 그러니까 서사 밖에서의 음악은 거의 등장하지 않아요. 그런 원칙을 세우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음악이 만드는 고요한 정서가 있기 때문인 거 같아요. 음, 뭔가 사기를 치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웃음). 그래서 단편작업 할 때부터 음악을 사용하지 않은 원칙이 있었던 건데, <사랑의 고고학>에서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 나오니까 그런 정서 작용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넣은 거죠.

영화 말미에 영실이 언니 마중 나가기 전에 자기가 만든 노래를 들어보는 장면이 있거든요. 언니 온다는 연락을 받고 쿵쾅거리면서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에서 배경음악이 깔리는데, 적어도 그 장면은 영실이 순정만화의 한 장면처럼 나와도 좋겠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음악이 유치하다는 것이 아니라요. 누군가 자기의 노래를 훔쳐간 이후에, 영실이 스스로 노래를 만드는 것이 좀 고무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서 음악이 들어가도, 좀 이질적으로 가도 괜찮다고 생각한 거죠.

<사랑의 고고학> 스틸컷.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영화의 ‘고요함’을 말씀하셔서 질문드리고 싶은데요. 주인공뿐 아니라 거의 모든 배우의 대사 톤이 매우 낮습니다. 왜일까요(웃음)?

제 어투를 닮았다고 배우도 말하던데요(웃음). 아무래도 시나리오 쓸 때, 제 안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을 쓰다 보니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대사마저 고요하다는 건, 특유의 어떤 것을 의도했다기보다는 성향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러닝타임 이야길 안 할 수 없어요. 거의 3시간에 육박합니다. 영화 흐름에 따라 덜어내셨겠지만, 때론 길게 느껴지는 장면들도 있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이것 역시 여러 측면에서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영화에서 영실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려고 하는 게 지루해졌어”라는 대사도 있듯이, 저 역시 <사랑의 고고학>은 누군가의 마음에 들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예요. 관객을 무시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관객을 생각하는 순간 제가 생각하는 무언가 중요한 것들이 변질될 거 같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떤 자아라든가 자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아를 드러냄에 있어서 앞서 거리두기를 말씀드렸지만요. 자아를 드러내되 뭔가 저와 제 주변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거리두기도 하는 거죠. 이게 약간 모순되게 느껴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영화 작업 내내 화이트보드에 ‘능청’이라는 단어를 크게 써두고 줄곧 가져가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같이 가기 어려운 걸 조율하는 방식이었던 거 같아요.

<사랑의 고고학> 스틸컷.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혹시 감독판으로 만든다면 더 길어질까요?

제가 갈등 상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요. 사실 편집본이 여러 버전으로 존재했어요. 편집감독님 버전, 제가 편집한 버전도 있었고, 공동으로 한 것도 있었고요. 300분 넘는 버전도 있고 두루두루 했는데, 관계자들 모두 이 버전으로 가도 좋겠다는 의견에 도달한 거죠. 물론 저 역시 마음에 들었고요.

이제 감독님 이야기를 좀 여쭤볼게요. 언제부터 영화감독을 꿈꾸신 건가요?

중학교 2년 때였던 거 같아요. 비디오가게를 자주 갔어요. 유일한 낙이 시험 마치고 비디오를 왕창 빌려서 밤새서 보던 거였죠. 그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노스탤지아>(1983)을 보고, 아, 이런 걸 만드는 직업이 있다면 그걸 직업으로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영향을 받은 감독이 더 있을까요?

지금도 영화는 두루두루 좋아해요. 레오 카락스 감독, 벨라 타르 감독의 영화도 좋아하죠.

아, 레오 카락스 감독 영화 너무 좋죠.

<아네트>(2021) 때 부산국제영화제에 오셔서 보러 간 적이 있죠(웃음). 그래도 제 영화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지금까지 미치고 있는 분은 박찬옥 감독님이에요. <질투는 나의 힘>(2002)의 박찬옥 감독이요. 박찬욱 감독 말고요(웃음).

<사랑의 고고학> 스틸컷.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박찬옥 감독님과 인연은 언제로 거슬러 올라가나요?

아무래도 제가 처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가르침을 주신 분이라 그런 거 같은데요. 학생 때 ‘진로희망’란에는 늘 영화감독을 적었지만, 부모님 반대로 학부도 다른 선택을 했었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을 때 미디액트에서 박찬옥 감독님을 만난 겁니다. 그때 박 감독님이 “그 시기에 만들 수 있는 영화가 있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말에 더 늦출 수 없다고 각성했고 그렇게 프랑스로 떠났죠. 파리3대학에서 영화 이론을 공부했고, 실기학교도 다녔어요. 2007년부터 2014년까지요.

와, 저도 몽펠리에에서 영화를 공부했습니다. 너무 반갑네요.

아시겠지만 프랑스에는 작은 극장이 워낙 많잖아요. 소극장이나 시네마테크에서 느꼈던 관객 분위기들이 저에게 크게 작용했던 거 같아요. 심지어 어느 날은 극장에 갔는데요, 관객이 저랑 한 명, 그러니까 두 사람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아녜스 바르다 감독님이 극장에 오신 거예요.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를 하겠다고 저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셨죠. 저한테는 그런 순간이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게다가 프랑스에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무제한 영화 관람 카드까지 있었으니 저한테는 정말 좋은 시기였죠.

감히 말하자면 <사랑의 고고학>은 상업영화로 가기 직전 단계의 성숙에 도달했다고 느꼈어요. 영화의 전체적인 호흡, 미장센 등이 더없는 조화를 이루고 있거든요. 차기작으로 상업영화를 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정의에 있어서, 상업영화가 외부 자본이 들어오고 그로 인해서 편집권이나 연출권에 제약을 받는 경우를 의미한다면, 그런 작업은 안 하게 될 거 같아요. 다만 투자는 있되 연출, 편집권을 보장해준다면. 그런 작업은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감독으로서 좀 더 많은 관객이 자신의 영화를 보면 좋겠다는 욕망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외부 개입이 들어온다면 큰 의미가 없을 거 같다는 이야기죠.

<사랑의 고고학> 이완민 감독.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명제에 충실하신 것 같아 보입니다(웃음).

물론 공동작업이란 면에서는 다르게 생각하죠. 하지만 뭔가 돈을 버는 목적으로 방향성이 변하거나, 제약이 있다면 그건 저랑 좀 안 맞을 거 같아요. 어차피 각종 알바로 부업을 하면서 사는 걸로 제 인생의 세팅을 마쳤거든요. 본업은 제가 하고 싶은 걸 원하는 방향으로 하고, 생계를 위한 부업으로 철저한 분리를 한 거죠. 그래야 뭔가 함정에 빠지지 않을 거 같아서요.

다만, 한 가지만 명확하게 부연하고 싶어요. 앞서 제작비도 말씀드렸듯이, <사랑의 고고학>은 공공지원을 받은 영화입니다. 그래서 마냥 아무 것도 없이도 영화작업을 하겠다는 건 저 자신에게도 맞지 않는 말이죠. 영화는 공동작업이고 스태프들을 꾸려야 합니다. 노등 측면에서 보면 노동 시간이 발생하고 임금을 지급해야죠. 그런 것들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있어요. 그래서 꾸준히 영화 제작 지원사업에 시나리오를 내고 있고요. 다만, 제 이야기가 ‘예술 하자! 다 상관없다’는 식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최소한의 기준을 갖춘 상황에서 제가 원하는 방향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펼쳐야겠죠.

노파심에서 말씀하셨겠지만, 무슨 이야기인지 잘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의 고고학>을 볼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랑의 고고학>이 참고자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가해행위를 하지 않았을까, 혹시 폭력 상황에 놓인 적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들을 스스로 들여다보거나 혹은 주변 사람들과 함께 들여다보는 자료 내지는 재료가 되면 좋겠습니다.


윤상민 씨네플레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