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쏟아지는 비를 피해 길가 상점의 차양 아래로 들어간 두 사람,
부쩍 가까워진 사이를 틈타 동하(정우성)가 메이(고원원)에게 묻는다.
“내가 처음부터 널 사랑했단 걸 지금이라도 증명한다면 달라지는 게 있을까?”
메이는 답을 하는 대신 동하에게 되묻는다.
“동하, 꽃이 펴서 봄이 오는 걸까, 아니면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걸까?”
동하는 메이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다. 메이는 그저 웃는다.
사랑이 시작되는 풍경부터 끝나는 광경까지를 지긋이 지켜봐왔던 전작들과 달리, 허진호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 〈호우시절〉(2009)은 이미 한차례 끊어졌던 사랑이 다시 싹트는 광경을 다룬다. 건설중장비 회사에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는 동하는 2박 3일 일정으로 청두(成都)에 출장을 왔다가 우연히 두보초당에서 관광 가이드를 하고 있는 메이와 재회한다. 미국 유학 시절 만나 한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 그러나 각자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어느 순간 끊어진 인연.
동하는 자신이 메이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줬고, 두 사람이 사귄 적이 있었으며 입 맞춘 적도 있었노라 말한다. 메이는 모든 게 금시초문이라는 듯 웃는다. 우리가 언제? 난 자전거 못 타는데? 너는 내가 아니라 사토코 뒤꽁무니나 쫓아다녔잖아? 두 사람이 서로 사랑했노라 말하는 동하와 그런 적 없었다고 부정하는 메이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네가 자전거를 탔다는 걸 내가 증명해내면 어떻게 할래?” “글쎄, 네 말대로 내가 자전거를 탔다면 너랑 사귀기도 했고 키스도 했다는 이야기일 테니까, 같이 잘까?”
진한 농담을 주고받던 두 친구는 동하의 바쁜 출장 일정과 메이의 두보초당 근무시간을 잘게 쪼개어 가며 데이트를 즐긴다. 그러던 두 번째 저녁, 비를 피하러 차양 밑에 숨은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선문답이 위의 질문이었던 것이다. 꽃이 펴서 봄이 오는 걸까, 아니면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걸까. 메이의 질문은 여러 방향으로 곱씹어 볼 수 있겠으나, 처음에 나는 그 질문을 이렇게 읽었다. “우린 서로 사랑했기에 여기 청두에서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 된 걸까, 아니면 청두에서 재회했기에 새삼 사랑을 이야기하는 걸까?”
두 사람의 인연이 끊어진 동안 동하가 어떻게 살았는지, 영화는 많은 걸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그저 “왜 내 엽서에 답장하지 않았느냐”는 메이의 질문에 대한 동하의 대답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뿐. “쓰기는 참 많이 썼는데 보낼 수가 없었어. 처음엔 사느라 바빠서 시간이 없었고, 시간이 생겼을 땐 여자친구가 있었지.” 동하만 그러진 않았을 테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시간을 사느라 서로를 잊어갔을 것이다. 그 긴 세월 서로를 그리워만 하며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메이도 궁금하지 않았을까? 넌 정말 날 처음부터 사랑했던 걸까, 아니면 여기서 다시 만났기에 새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물론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질문은 이렇게도 읽힌다. “네가 찾아와서 내 삶의 어두운 시간이 끝난 걸까, 아니면 내 삶의 어두운 시간이 끝나서 네가 찾아온 걸까?” 두 사람의 인연이 끊어진 동안 메이의 삶에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고, 메이는 여전히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던 차에 찾아온 동하를 보며 메이 또한 설렜으리라. 잠시나마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로워졌을 테니까. 하지만 메이는 그 사건들을, 제 삶의 어두운 시간들을 굳이 동하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으니. 떨어져서 각자 보냈던 시간 동안 있었던 그 수많은 일들을, 어떻게 다 일일이 설명할 수 있으랴.
꽃이 펴서 봄이 오는 걸까,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걸까. 한때 서로 사랑했던 이들이 세월이 흘러 청두에서 만나게 된 것도, 하필이면 그 무렵이 메이가 제 삶의 어두운 순간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하던 때인 것도, 우연이라면 우연이고 운명이라면 운명일 테다. 인간의 생애는 수많은 우연으로 중첩되어 있는데, 의미를 부여하기 좋아하는 인간들은 그 우연의 중첩을 운명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둘 다 옳은 이야기인 게 아닐까? 그 모든 것이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好雨時節)처럼 공교로운 우연일 수도 있지만, 그 공교로운 우연을 운명이라 부른다 해서 크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리라.
허진호의 영화들이 대체로 그렇듯, 등장인물들 사이의 감정은 대사 위를 흐르는 게 아니라 대사와 대사 사이의 행간을 타고 흐른다. 메이는 자신이 경험했던 단절과 상실을 차마 말하지 못해 계속 머뭇거리고, 모처럼 동하와 함께 미국 유학 시절의 청량했던 추억을 다시 살다가도 자꾸만 멈칫한다. 행복과 망설임 사이를 오가는 메이와, 그런 메이의 반응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몰라 조심스러운 동하의 마음은 영화 내내 끊임없이 진동한다. 이 우연을 운명이라고 읽어도 좋은 걸까? 우리는 다시 시작해도 괜찮은 걸까? 불안은 끝없이 두 사람을 엄습하는데, 희망은 그 속에서 아주 조심스레 피어난다.
영화가 처음 공개되었을 무렵, 사람들은 동하와 메이를 ‘허진호 영화의 주인공들 중 가장 젊은 연인들’이라 평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전작들은 사랑에도 엄연히 끝이 있음을 믿는 정조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도, 〈봄날은 간다〉(2001)도, 〈외출〉(2005)과 〈행복〉(2007)도, 모두 끝내 헤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별로, 이별로, 더는 어찌할 수 없는 관계의 종말로, 한때 사랑했던 사람들은 헤어지고 만다. 그런데 갑자기 〈호우시절〉에선 한번 끝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인연을 이야기했으니, 일견 동하와 메이가 가장 젊고 희망차 보이기도 했으리라.
하지만 난 오히려 〈호우시절〉이 허진호의 가장 성숙한 멜로 영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별이 가져다주는 상처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던 전작들과는 달리, 〈호우시절〉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해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까. 물론 영화를 다 본 이후에도 우리는 동하와 메이의 앞날이 어떻게 풀릴지 확신할 순 없다. 사람 일은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두 사람이 청두의 두보초당에서 재회할 거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그런 것은 아마 큰 상관이 없을 것이다. 인연이 끝났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은 모든 것이 끝난 듯한 자리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렇게 다시 일어서게 되는 날, 우리는 다시 웃으며 말하게 되겠지.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고(好雨時節).
이승한 TV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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