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터입니다. 볼 때마다 박진영씨의 ‘선’이란 단어가 생각나요 ^^

사람이든, 예술이든, 어떤 것이든 간에 어떤 면은 100%고 어떤 면은 20%이긴 쉽지만, 모든 면에 있어서 80%를 채우는 것은 의외로 매우 힘든 일이다. 가끔 후배들이 결혼 상대자에 대한 조언을 구할 때면 당연히 후자가 나을 거라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어디 사람이 그런가? 100%인 면에 마음을 뺏기고 난 후 나중에 30%인 면을 겪으며 힘들어하곤 한다. 그래서 균형이라는 게 중요하다.
 
영화라는 예술의 한 장르도 마찬가지일 텐데, 어느 한 쪽이 조금 아쉬운 게 계속 느껴져도 어느 한 쪽이 너무 훌륭해서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고, 반대로 나중에 곱씹어 생각해보면야 아쉬울지언정 당장 좋은 여러 면들이 기가 막히게 상호 보완을 이뤄서 보는 내내 어색함 없이 빠져드는 영화가 있다. 나에겐 <라라랜드>가 딱 그런 영화였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하게 말하긴 그렇지만 영화 스토리는 좀 심하게 축약하자면 그냥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다. 꿈은 크지만 현실은 시궁창인, 게다가 제멋대로인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사람을 찾겠다고 영화 상영 중간에 남들에게 방해가 되거나 말거나 영화관 스크린 바로 앞에 서는 모습을 보고 기겁했다-여자가 무조건적으로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을 만나 도움을 받고 누군가와 결혼해서 행복해진 후 옛 추억을 회상하며 끝. 할리퀸 로맨스나 무협지, 주말드라마하고 스토리만 뚝 잘라 축약해보면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명품과 짝퉁이 결국 디테일에서 갈리듯 <라라랜드>는 스토리 하나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영화다. 작고 작은 디테일들과 그 디테일에 자석처럼 달라붙는 음악과 배우들의 연기와 춤이 이 영화를 예술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것을 나는 느꼈다.    

첫 장면부터 귀에 쏙 들어오는 음악, 그리고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의 멋진 노래와 춤, LA의 멋진 야경들, 누구나 어디서 한 번쯤 봤음직한 옛날 영화의 조각조각들, 뭣보다 영화 전체에 걸쳐 흐르는 씁쓸하지만 또 달콤한 초콜릿 같은 감정의 연결들, 그런 모든 것들이 이 영화를 아름답게 만든다.

주인공들의 아름답고 예쁜 데이트 장면.

이 영화에서 음악을 빼면 영화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거라는 점, 아마 모두 공감할 거라 생각하는데 영화 전반에 걸쳐 연주되는 주옥같은 여러 음악들 중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이 연주하고 사랑하는 재즈는 특히나 술과 잘 어울리는 음악 장르라고 생각한다. (라이언 고슬링 본인의 연주는 상대적으로 감정이입이 좀 힘들긴 했다.) 개인적으로는 재즈와 버번, 혹은 맥주를 같이 하는 걸 좋아하는데 라이언 고슬링도 엠마 스톤과 데이트하는 장면에서 스텔라 아르투아를 마신다.

스텔라 아르투아는 벨기에를 대표하는 필스너 맥주다. 원래 크리스마스용 특별판으로 처음 만든 맥주라서 스텔라(라틴어로 별이라는 뜻)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이후 사츠(Saaz)라는 이름의 고급 호프를 사용한 것이 알려지며 유명해졌다. 첫 한 모금을 입에 머금는 순간 바로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균형감으로 유명하며 칸 영화제와 윔블던의 공식 맥주이기도 하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첫인상에 남는 건 강렬한 어떤 한 느낌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꾸준하게 기억나는 건 바로 균형미이다. 스텔라 아르투아는 바로 맥주의 모든 미각적인 측면에 있어서 고급스러운 균형미를 갖고 있다. 라이언 고슬링의 이미지와 딱 어울리는, 그리고 이 영화와 딱 어울리는 그런 맥주다. 수년 전에 처음 마셨을 때에 비하면 약간 맛이나 바디감이 가벼워진 느낌도 들지만 여전히 맛있는 맥주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라라랜드>의 스토리는 결과를 약간 비틀었다는 걸 제외하면 전형적인 할리퀸 로맨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평범하지만 인기 있는 무협지나 할리퀸 로맨스 같은 스토리를 잘생기고 예쁜 배우가 끝내주는 음악과 함께 연기한 훌륭하게 균형 잡힌 상업적 결과물. 그게 바로 <라라랜드>라고 생각했다. 그런 균형 잡힌 영화에 균형 잡힌 술, 기가 막힌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영화를 보고 기분 좋게 극장을 나오며 이제는 거의 멸종되어가고 있는 음반가게에 들러 <라라랜드> OST CD를 샀다. 집에 가서 음악을 들을 생각에 신이 났다. 집에 가자마자 CDPCD를 걸고 소파에 눕고 나니 갑자기 변덕스러움이 고개를 슬그머니 들었다. 맥주로서의 균형감은 어디 지나가는 견공에게나 던져버린, 호프 어마어마하게 들어간 쓰디쓴 IPA가 갑자기 마시고 싶어졌다. 이럴 때 제격인 체이서(위스키 같은 독한 술을 마실 때 사이사이 마시는 도수 낮은 술이나 청량음료)? 당연히 60도 넘어가는 버번이지. :D


데렉 / 술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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