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반쯤 장난으로 만든 캐릭터가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 주류의 반열에 오르는 경우가 있다. DC 코믹스의 데스스트록을 대놓고 모방해서 만든 마블 코믹스의 데드풀이나, 비틀스 노래 '록키 래쿤'을 모티프로 해서 만든 마블 코믹스의 로켓 래쿤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우주에서 가장 흉포한 남자, 로보' 역시 이런 경우다.
DC의 가장 잘 알려진 악당 캐릭터 중 하나인 로보는 미국 폭주족들과 연관지을 수 있는 바이커 갱단 복장과 록 그룹 키스의 멤버들을 연상시키는 흰 분을 바른 듯한 얼굴과 눈 아래의 검은 화장, 그리고 긴 턱수염으로 정형화되었다. 하지만 현재 팬들에게 익숙한 이러한 로보의 모습이 규정지어진 것은 1990년대 초. 그 전에도 로보는 존재하기는 했으나 이미 잊혀진 캐릭터였다.
로보의 첫 등장은 건강 보조식품이 연상되는 <오메가 멘> 3호에서였다. <리전 오브 슈퍼 히어로스>에서 등장하는 오메가 멘의 적수로 설정되어 첫 등장하는데, 처음 등장했을 때는 머리도 보라색이고 쫄쫄이를 입고 있어 지금의 모습과 사뭇 다른, 서커스 단원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다행히 단역으로 끝나지는 않고 오메가 멘의 적수로 몇 년간 등장하기는 했지만 1980년대 말 경에는 이미 아무도 기억 못하는 버리는 캐릭터가 되어 있었다.
그를 화려하게 부활시킨 것은 영국계 작가 키스 기펜. 그런데 이 작가는 로보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있어서 그를 부활시킨 것이 아니었다. <2000 A.D.> 등의 영국식 하드 SF와 유머를 장착한 기펜은 자신이 창작했던 로보의 기원 이야기를 장난으로 비꼬아서 새롭게 만든다. 예를 들자면, 로보는 차르니아라는 행성에서 태어났는데 그 행성의 주민들을 모두 죽여서 차르니아의 유일한 후손이 되었다는 설정이다. 날씬하고 유연했던 몸매는 스테로이드 중독자처럼 심하게 과장되어 그려지고, 항상 술과 거친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흉포한 인물이 되었다. 초인적 힘과 온갖 총기와 폭약물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산산조각이 나도 순식간에 회복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는 1990년대 유행하던 울버린, 케이블 등 근육 과잉의 거친 히어로들에 대한 패러디였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히어로들을 추종하던 팬들에게 로보는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렇게 해서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로보는 1990년대 초 DC 코믹스의 인기 캐릭터로 급부상하고 수많은 미니시리즈와 단편들, 애니메이션에 등장했을 뿐더러 급기야 본인의 이름을 건 타이틀이 출간되기에 이른다.
히어로인지 빌런인지 정체성이 애매한 캐릭터들이 있다. 앞서 언급한 데드풀처럼 커리어를 빌런으로 시작하였다가 히어로로 전향하였거나 퍼니셔처럼 폭력적인 안티히어로 성향을 띄는 인물들인데, DC의 로보는 확실히 악당에 가깝다. 하지만 로보가 등장하는 설정은 항상 반쯤 유머러스한 것이 정석처럼 굳어졌다. 지금까지 그가 상대한 적수로는 산타 클로스, 영화 <로보캅>의 악당들을 패러디한 악당들, 코믹콘 참석자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워너 브라더스의 만화영화 <루니 튠즈>에 등장하는 로드 러너가 있다(올해 출간된 이 단편만화에서 로보는 와일 E. 코요테와 팀을 이루어 로드 러너를 사냥하는 역할로 등장한다).
DC의 크로스오버 이벤트에도 단골 손님으로 등장하는데 슈퍼맨, 배트맨, 저스티스 리그 등과 함께 등장한 적도 많고 심지어는 경쟁 업체인 마블 코믹스의 만화에도 게스트 스타로 여러번 등장하였다. 필자의 기억에 가장 남는 것은 DC/마블이 합작해 만든 '아말가메이티드 코믹스' 브랜드에서 마블의 '하워드 더 덕'과 합체한 캐릭터인 '로보 더 덕'으로 등장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DC 코믹스 유니버스 내에서 마블 코믹스의 데드풀과 어느 정도 유사한 역할인 로보는 아직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성장 가능성이 있다. 로보 영화화는 1990년대 중반부터 얘기가 있었는데 한때는 밴드 댄지그와 미스피츠의 리더 글렌 댄지그가 로보 역으로 내정되었다. 워너/DC가 DC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계속 확장시키고 있는 현재의 추세를 봐서는 근미래에 영화 또는 TV 화면에서 로보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최원서 그래픽노블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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