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코>
싸이코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출연 안소니 퍼킨스, 베라 마일즈, 존 게빈

개봉 1960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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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고백한다. 영화 잘 모른다. 영화에 관한 글을 쓰고 월급을 받지만 솔직히 자신 없다. 물론 1년에 영화 한 두 편 보는 사람들보다는 많이 알겠지만 나 영화 좀 봤어라고 어디 가서 나설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특히 영화를 분석하고 글을 쓴다는 건 늘 어렵기만 하다.

문득 2010년 무렵이 떠올랐다. 만화잡지 기자를 하다가 영화잡지 편집기자가 됐을 때다. 씨네플레이의 에디터 칼럼과 비슷한 영화잡지의 오픈칼럼이란 걸 썼다. 제목을 직접 정했는지 아닌지 기억 나지 않지만 어쨌든 제목은 영화 잘 모르잖아?’였다. 당시 편집장이던 선배는 영화 잘 모르는 신입도 아닌 중고 편집기자가 영 성에 차지 않은 눈치였다. 어느날 마감을 끝내고 술을 마시는데 선배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얘기를 꺼냈다. “<싸이코>는 봤지?”

<싸이코>

지난주 그 선배와 술을 마셨다. 2010년 이후 몇 년 동안 매주 마감 후 술을 먹다 보니 꽤 친해졌다. 지금은 각자 다른 일을 하지만 여전히 술을 자주 마신다. 술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닌데맞다. 그날 우리는 또 히치콕 얘기를 했다. “<싸이코>에서 그 여자 주인공이 돈을 훔쳐서 차를 타고 가는데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장과 눈이 딱 마주치잖아요. 그때 그 사장의 표정,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 이런 디테일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술에 취해 서툰 히치콕 찬사를 쏟아냈다. 선배는 <78/52>라는 영화를 추천해줬다. <싸이코>의 전설적인 샤워 신 하나만을 분석하고 이야기하는 1시간 3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러고 보니 2010년 무렵에도 선배가 자신의 히치콕 컬렉션 DVD를 빌려주며 ‘영화 좀 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78/52> 포스터.
78/52

감독 알렉상드르 오 필립

출연

개봉 201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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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선생님 선배의 추천을 받아들여 <78/52>를 봤다. <78/52>2017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됐지만 극장 개봉은 하지 못했다. 넷플릭스에 이 영화가 올라와 있었다. 제목의 숫자 7852는 샤워 신의 카메라 셋업과 컷의 수다. 샤워 신은 78개의 각도에서 촬영됐고 52번의 장면전환으로 이뤄져 있다. 히치콕 감독은 샤워 신만 일주일 동안 촬영했다고 한다. 전체 촬영 일정은 한 달이었다.

<78/52>는 <싸이코>의 샤워 신을 숏 바이 숏에 가깝게 분석한다.

<78/52>에는 히치콕 감독의 인터뷰 자료 화면을 비롯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싸이코> 샤워 신의 주인공 자넷 리의 딸 배우 제이미 리 커티스, 자넷 리의 누드 대역 말리 렌프로, 노먼 베이츠를 연기한 안소니 퍼킨스의 아들 오즈 퍼킨스, <반지의 제왕> 프로도 역으로 유명한 배우 일라이저 우드, <잉글리시 페이션트><지옥의 묵시록>으로 3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받은 편집감독 월터 머치, 영화음악가 대니 엘프먼, 감독, 제작자, 배우로 활동했던 피터 보그다노비치, <아메리칸 싸이코> 원작 소설가 브렛 이스턴 엘리스, 히치콕 감독의 손녀 테레 카루바를 비롯한 여러 명의 영화인, 작가, 교수, 평론가들이 출연해 자신들이 본 <싸이코>를 분석해준다.

<78/52>의 도입부. <싸이코>와 유사한 느낌을 주게 만들었다.

영화 한 편에서 이렇게 다양한 분석이 가능할 줄 몰랐다. 키워드만 나열해도 숨이 찰 지경이다. 2차 세계대전, 1960년대 미국 사회, 관음증, 마더콤플렉스, 처벌, 서스펜스, 버나드 허먼의 영화음악, 편집, 사운드, 앵글과 초점, 검열, 맥거핀 등 히치콕의 세계는 방대하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의 분석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히치콕 감독의 위대함 때문에, 그들의 통찰력 때문에 감탄했다. 특히 샤워 신을 숏 바이 숏, 한 장면 한 장면을 나눠서 분석하는 걸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모든 숏과 컷에 의미가 있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78/52>를 보고 <싸이코>를 다시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78/52>에 출연한 누군가는 50번쯤 봤다고 하던가. 나도 50번쯤 숏 바이 숏으로 <싸이코>를 보고 분석하면 영화 잘 모른다는 자괴감이 사라질까평론가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영알못’이 속편한 것 같기도 하고. ‘영잘알’ 에디터가 되는 길은 힘들기만 하다. 그래도 월급은 주니까 다행이다. 적긴 하지만.

※혹시라도 이 글 보고 <78/52> 봐야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은 적어도 <싸이코>를 본 사람일 텐데, 아직 <싸이코>를 안 봤다면 꼭 보시길. <싸이코> 보고 <78/52>까지 봤다면 히치콕 감독과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대화를 담은 다큐멘터리 <히치콕 트뤼포>도 보길 추천한다. 단 <히치콕 트뤼포>는 히치콕 감독의 대표작 <이창> <현기증> <새>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정도는 먼저 보고 봐야 한다. 좀더 제대로 하려면 <의혹의 그림자> <오명> <열차 안의 낯선 자들> <다이얼 M을 돌려라> 정도 보면 좋겠다. 물론 히치콕 영화를 다 보면 더 좋겠다. 에디터가 왜 아직도 영알못인지 이제 감이 잡히는가. 세상에는 볼 영화가 너무 많다. 이걸 언제 다 보냐고! 그래도 <싸이코>는 꼭 보시길.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