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은' 멕시코 (갱단 출신) 사회운동가의 비밀 〈에밀리아 페레즈〉 리뷰

*이하 <에밀리아 페레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밀리아 페레즈〉
〈에밀리아 페레즈〉 중 에밀리아 페레즈(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한 번쯤 이런 생각 해본 적 있지 않은가.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떠나 완벽히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고 싶다는. 출근길에나 할 법한 이런 허무맹랑한 생각을 실제로 벌인 이가 있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의 이야기이다.

 

멕시코 마약 갱단의 보스 마니타스(카를라 소피아 가스콘)는 가난하지만 유능한 변호사 리타(조 샐다나)의 도움으로 아무도 모르게 성전환 수술을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제 그는 '에밀리아 페레즈'다. 한편, 안전상의 이유로 그의 아내 제시(셀레나 고메즈)와 두 아들은 이유도 모른 채 스위스로 보내지고, 뉴스를 통해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한순간에 엄청난 돈을 손에 쥔 리타의 삶도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4년 뒤, 런던의 사교 모임에서 다시 그(녀)를 마주한다.

 

〈에밀리아 페레즈〉
〈에밀리아 페레즈〉 중 리타(조 샐다나)

 

우연일까, 필연일까. 뜻밖의 재회에서 에밀리아 페레즈는 리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아이들이 보고 싶으니 멕시코로 데려와 달라는 것이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마니타스의 '사촌누나'로 위장한 채 제시와 아이들을 집으로 들인다.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그는 다시금 깊은 사랑을 느낀다. 동시에 마약 범죄로 실종된 피해자들을 찾아내는 비영리 단체를 꾸려 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치려 한다. 그 곁에는 늘 리타가 함께한다.

 

영화의 전반부만 보면, 환경에 순응하던 한 인간이 선택을 통해 자아를 찾고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다소 뜬금없이 등장하는 노래가 당황스럽긴 하지만, 마약 갱단 보스가 성을 바꾼 후 인권 운동가가 된다는 이야기보다는 덜 놀라운 법이다. 흥미롭게 흘러가는 서사 속에서 관객은 자연스레 질문하게 된다. 이 이야기에는 어떤 갈등이 기다리고 있나.

 

〈에밀리아 페레즈〉
〈에밀리아 페레즈〉 중 제시(셀레나 고메즈)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후반부에 들어서며 에밀리아 페레즈의 내면은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제시는 연인 구스타보(에드가 라미레즈)와 결혼을 약속한다. 이에 에밀리아 페레즈는 아이들에 대한 집착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제시가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자 상황은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새 삶을 시작하려 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신체를 바꾸고, 마약을 팔고 살인을 저지르던 과거에서 마약 피해자를 구제하는 선행을 했다. 이를 통해 지난날을 청산한 듯 보였지만, 결국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것은 '사랑'이었고, 그 사랑의 시작이 바로 그 과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신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고모가 아닌 '아빠'로서 두려워한 것이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아이러니 그 자체다. 프랑스 감독 자크 오디아르는 스페인을 배경으로, 스페인어로 영화를 완성했다. 트랜스 여성 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분장을 통해 남성 캐릭터를 연기하다가 극 중 성전환을 한 후, AI 기술을 활용해 여성의 고음역 노래를 소화한다. 이 영화는 '이해'보다는 '수용'이 필요한 작품이다. '왜?'라는 의심 섞인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질문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에밀리아 페레즈〉
〈에밀리아 페레즈〉 포스터

 

영화는 제77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과 여우주연상(주연 4인 공동수상) 2관왕을 차지하며 주목받기 시작해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 여우조연상, 비영어권작품상, 주제가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총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비영어 영화 역사상 최다 후보 기록을 세우는 기염을 토했다.

 

한편,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영화의 시작에 대해 보리스 라종의 소설 「Écoute」('듣다', '수용하다'라는 뜻의 프랑스 단어)을 언급했다. 그는 '소설을 바탕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면서 '그 구조가 영화보다는 오페라 대본에 더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뮤지컬 장르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트랜스젠더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운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에밀리아 페레즈에 대해 '마치 미녀와 야수가 한 몸에 갇혀 있는 것 같은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영화가 시작될 때 그녀는 자신이 속하지 않은 삶에 갇혀 있지만,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삶을 뒤로하고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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