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수많은 영화가 있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 이들을 위해 쓴다. ‘씨네플레이’는 ‘씨플 재개봉관’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봉하면 당장 보러 갈 영화, 실제로 재개봉하는 영화들을 소개해왔다. 이번에 만나볼 영화는 2008년 개봉한 <다크 나이트>다.

벌써 10년이다. 그동안 이 영화를 향한 평가, 분석, 비평은 쌓일 만큼 쌓였다. 덧붙인다는 것 자체가 사족처럼 느껴질 따름이다. 그런데도 <다크 나이트>를 왜 다시 소개하느냐고 물으면…. 10주년을 맞이한 명작에 대한 당연한 예우라는 말을 할 수밖에.


모든 이들의 반대를 찬사로 바꾼 남자
히스 레저는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당시에도 크리스토퍼 놀란은 주목받는 감독이었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에서만큼은 그보다 더 주목받는 이가 있었으니, 조커 역을 맡은 히스 레저였다. 그는 1989년 <배트맨>의 잭 니콜슨 이후 약 20년 만에 조커를 연기할 배우였다. 1990년대 <배트맨 디 애니메이티드 시리즈>에서 마크 해밀이 감칠맛 나는 목소리 연기로 조커의 매력을 더했기 때문에 히스 레저가 만족시켜할 기준은 더 높아져있었다.

1989년 <배트맨>의 조커는 잭 니콜슨이 연기했다

모든 사람들이 히스 레저의 조커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다크 나이트>의 각본을 맡은 조나단 놀란이 최근 인터뷰에서 회상하듯, 당시엔 오히려 반대파가 많았다. 잭 니콜슨은 조커 역을 맡을 무렵 <차이나타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샤이닝> 등에서 명연을 펼친 검증된 배우였고, 그에 비하면 히스 레저는 자신의 연기력과 존재감을 이제 막 입증하던 20대 후반의 배우였다. 일부 원작 팬들은 현실성을 추구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식 배트맨에 화학약품으로 새하얀 피부를 가진 조커가 어울리지 않는다며 조커 출연 자체에 불만을 가졌었다.

히스 레저의 조커 최초 공개 이미지

하지만 영화 홍보 과정에서 공개된 조커의 비주얼은 반대파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개봉 이후엔 상황이 아예 역전됐다. <다크 나이트>를 봤다면, ‘조커’란 단어에서 히스 레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분장이 떨어질까 혓바닥을 날름거린 히스 레저의 버릇은 조커에게 능글맞은 뱀의 이미지를 더했고, 자신의 허스키한 목소리 대신 높은 톤으로 조잘거린 목소리는 소름 끼치는 악의 전조 자체였다. 그의 명연기는 자신만의 새로운 조커를 세계 모든 이들의 조커로 만들었다. 그해 영국 아카데미, 미국 아카데미, 골든 글러브 등 유수 영화제 남우조연상은 히스 레저에게 돌아갔는데, 그는 명배우라는 영예를 누리기도 전에 우리 곁을 떠나고 만다.


한스 짐머, 새로운 영화 음악을 예고하다
한스 짐머

구석구석 뜯어봐도 모자란 것 하나 없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건 단연 한스 짐머의 음악이다. 제임스 뉴튼 하워드와 한스 짐머의 협업으로 탄생한 <다크 나이트> 사운드트랙엔 사람 속을 파먹는 불안감과 인간 본연의 선의를 믿는 숭고함이 혼재돼있다. 한스 짐머가 작곡한 조커의 테마 ‘와이 쏘 시리어스?(Why so serious?)’는 바이올린 현을 칼로 긋는 기상천외한 사운드가 담겼는데, 이 작품 이후 한스 짐머가 선사할 새로운 형식의 영화음악들의 전조와도 같았다.

<다크 나이트>는 조커라는 존재가 시작을 알리지만, 그 끝은 인간의 선의, 그리고 그것을 믿는 자의 숭고함으로 채워진다. O.S.T 역시 ‘와이 쏘 시리어스?’로 시작하지만 그 끝은 ‘어 다크 나이트(A Dark Knight)’로 맺어진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두 작곡가가 공동작업한 ‘몰로소스(Molossus)’의 박진감 넘치는 멜로디가 반복되다 서서히 잦아들고, 섬세하고 감성적인 선율이 깔리면, 배트맨의 또 다른 별명 ‘다크 나이트’를되새기게 한다. 가장 어두운 시기에 빛이 오리라는 걸 신뢰하는 진정한 영웅의 면모를 음악으로도 느낄 수 있다.


<다크 나이트>가 말하는 진짜 ‘영웅’
배트맨/브루스 웨인 (크리스찬 베일)

이 영화가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건 크리스토퍼 놀란과 조나단 놀란의 탁월한 구성 덕분이다. 놀란 형제는 <다크 나이트>를 배트맨/브루스 웨인(크리스찬 베일)과 조커(히스 레저), 선악이란 두 축으로 설계하지 않고, 투 페이스/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를 등장시켜 삼각 구도를 형성했다. 원작에서도 조커 못지않게 배트맨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캐릭터 중 하나인 하비 덴트는 고담시를 지키는 검사이자 악당 투 페이스로, 놀란 형제는 영화의 한 축으로 하비 덴트를 선택하며 ‘무엇이 훌륭한 선善인가’를 세심하게 그려낸다.

만화적인 요소(닌자 집단)와 고담시 외의 공간(설산·감옥)을 활용한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비해 <다크 나이트>는 도시(고담/홍콩)를 벗어나지 않은 채 현실의 문제를 제시한다. 사회적 규범(하비 덴트), 욕망에의 행동(조커), 선에 대한 갈망(배트맨) 등 <다크 나이트>의 캐릭터들이 상징하는 가치관 간의 충돌은 관객들에게 어떤 것이 정당한가, 어떤 것이 올바른가를 묻는다.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

사회적 규범을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정해진 규칙’으로 본다면, 그것의 의도는 선하지만 결과까지 늘 선하지는 않다. 때로는 그 규범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원하는 선한 결과를 가로막기도 한다. 그렇다면 선한 것을 성취하겠다는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 의도가 선하다고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조커가 언급하는 ‘혼돈’을 불러오게 되지 않을까?

배트맨은 <다크 나이트>에서 이 물음과 맞닥뜨린다. 선을 성취하기 위해 규범을 넘었던 그의 자경단원 활동은 조커란 결과를 가져왔고, 그 조커는 배트맨이란 자경단 활동을 멈추기로 결심케 한 하비 덴트, 사회적 규범를 파괴하고 말았으니까. 자신이 행동이 낳은 결과와 거기서 파생된 규범의 붕괴를 목격한 배트맨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 하비 덴트의 죄를 자신이 한 것으로 ‘누명’을 쓰는 것.

조커(히스 레저)

이 선택은 배트맨의 죽음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브루스 웨인은 이런 결정을 내린다. 선한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던 ‘다른 이름’과의 결별을 선언한다. 왜? “아직도 선을 믿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내가 아니어도 선함을 품은 사람들이 있으니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는 것. 그리고 의도 자체는 선한 사회적 규범의 붕괴를 감추는 것. 그래야 사람들이 규범의 선의를 믿고 세상을 더 선하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놓지 않을 테니까. 이 두 가지 이유로, 브루스 웨인은 자신의 의지를 대변하는 이름을 죽이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길 택한다.

과연 서로를 수단이 아닌 오직 목적으로만 대할 수 있는,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사회가 이룩될 수 있는가. 그 의문에 <다크 나이트>는 답한다. 우리 시대의 ‘선’을 믿는 자들이, 설령 그가 규범 외에 있는 듯 보이더라도, 그가 진정으로 선함을 믿는다면 언젠가 이상에 다다를 수 있을 거라고. 비록 그 길이 어둡고 길더라도.

선한 자가 악에 맞서고, 결국 승리하는 것. 골수팬이든 이제 입문한 관객이든 그걸 보고 즐기는 게 현재 유행하는 히어로 무비의 본질일 것이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는 그 ‘히어로’의 한계를 벗어났다. 단순히 코믹북에서 만들어진 ‘히어로 캐릭터’가 아닌 진정한 ‘영웅’의 의미를 고찰한 것. 그게 10년 전 <다크 나이트>가 제시한 진정한 히어로, 히어로 무비의 이정표다.

다크 나이트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크리스찬 베일, 히스 레저, 아론 에크하트

개봉 200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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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크리스찬 베일, 마이클 케인, 리암 니슨, 케이티 홈즈, 게리 올드만, 킬리언 머피, 톰 윌킨슨, 룻거 하우어, 와타나베 켄, 마크 분 주니어, 라이너스 로체, 모건 프리먼

개봉 2005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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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