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으로 발길을 향하게 되는 여름은 극장가의 최고 성수기다. 이 점을 이용해 국내 영화 제작사들은 여름 성수기를 겨냥한 텐트폴(tent-pole) 영화들을 내놓는다. 텐트폴 영화는 그해에 가장 많은 자본을 투입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관객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장르가 있다. 바로 재난영화다. 재난을 소재로 한 영화들과 여름이 만난다면 이는 흥행 보증수표를 받아둔 것! 여름에 개봉해 관객들을 극장가로 발걸음하게 만든 국내 재난영화들의 계보를 정리해봤다.
<괴물>│봉준호 감독 │2006년 7월 27일 개봉 │총 관객수 13,019,740명
아버지(변희봉)와 함께 한강 시민공원에서 매점 일을 하던 강두(송강호). 아내 없이 홀로 딸 현서(고아성)을 키우고 있는 강두는 학교에서 돌아온 현서와 함께 현서의 고모 남주(배두나)가 출전하는 양궁 경기를 보던 중 아버지의 호출을 받고 바깥으로 나온다. 손님에게 오징어 다리가 하나 모자란다는 항의가 들어왔다는 말에 다시 서빙을 하러 가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한 강두. 서강대교에 괴이한 생명체가 매달려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들은 하나둘씩 손에 쥔 물건을 던지기 시작하고, 생명체는 사람들을 향해 헤엄쳐오다 이내 물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충격적인 일을 목격한 강두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바깥으로 나와 있던 현서의 손을 잡고 뛰다 이내 손을 놓치고, 현서는 강두의 눈앞에서 괴물에게 끌려가 사라진다.
국내 재난영화, 그 가운데서도 괴물이 등장하는 크리처 장르의 조상 격인 <괴물>은 봉준호 감독에게 첫 천만 관객을 안겨준 작품이자 괴수 영화로 국내 최초 천만 관객을 돌파한 기념비적인 영화다. 각종 풍자가 녹아있는 대사들이 빚어내는 코믹함, 밀도 높은 긴장감이 어우러져 완성도 높였다. 2006년 7월 말 개봉해 35일간 박스오피스 1위 자리에 머물렀다. 개봉 33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당시 한국영화 사상 가장 빠른 흥행 속도를 기록했다.
<해운대>│윤제균 감독 │2009년 7월 22일 개봉 │총 관객수 11,324,791 명
쓰나미를 소재로 한 재난영화로 천만 관객 돌파에 성공한 작품 <해운대>. 평화롭게 휴가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부산에 일본 대마도가 내려앉으면서 발생한 초대형 쓰나미가 시속 800km로 밀려오고, 엄청난 크기의 해일이 밀려오는 것을 본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달아나기 시작한다. 세 커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재난이 닥친 상황에서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를 지키기 위한 사투를 그린 <해운대>는 누적 관객 수 1132만 명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개봉하고 바로 일주일 뒤, 여름 시장을 노린 또 다른 작품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가 개봉했지만 박스오피스 1위는 <해운대>의 것이었다. <해운대>는 총 22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면서 약 800만 관객을 동원했으며, 개봉 34일차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연가시>│박정우 감독 │2012년 7월 5일 개봉 │총 관객수 4,516,063 명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 <연가시>는 변종 연가시가 인간을 숙주로 삼아 벌어지는 재난을 다룬 영화로, 기존 재해나 좀비·괴수를 소재로 한 재난들과는 달리 기생충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꽤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치사율 100%인 변종 연가시가 몸에 들어가 과다한 식욕과 목마름 증상을 일으켜 감염자들이 물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떼죽음을 당하는 등 다소 충격적인 장면들이 입소문을 타고 관객들을 몰고 왔다.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활발한 논의 또한 영화를 홍보하는 데 한몫을 했다. 그해 타 여름 영화들보다 한 발 먼저 개봉한 <연가시>는 2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누적 관객 수 359만 명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도둑들>이 개봉하면서 상영관이 줄어들었고, 최종 451만 관객 수를 기록, ‘여름=재난 영화’ 공식에 따라 흥행에 성공했다.
<감기>│김성수 감독 │2013년 8월 14일 개봉 │총 관객수 3,117,859 명
개도 안 걸린다 하지만, 한 번 걸리면 진짜 독한 감기가 바로 여름 감기! 기침을 통해 전염되는 감기 증상을 소재로 한 영화 <감기>는 밀입국자에 의해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시작하며 분당신도시가 초토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엄청난 감염속도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사망자들에 의해 급기야 시체들과 함께 살아있는 사람까지 포크레인을 동원해 매립하는 장면은 충격으로 후유증을 앓는 관객들이 나왔을 정도. 장혁과 유해진, 수애, 마동석까지 연기 구멍 없이 탄탄한 연기들을 보여주었으나 스토리 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감기>는 개봉 당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지만, 그보다 2주 먼저 개봉했던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로 인해 바로 2위로 떨어졌다. 관객 수 역시 기세에 밀려 크게 흥행은 하지 못했으나, 여름 재난 영화답게 약 311만 명을 기록하면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보여줬다. 그러나 100억 원이 들어간 대작인지라 손익분기점을 넘기지는 못하면서 제작비를 회수하는데 실패했다.
<부산행>│연상호 감독 │2016년 7월 20일 개봉 │총 관객수 11,567,341
한국 최초의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은 <돼지의 왕>, <창> 등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애니메이션을 주로 제작해왔던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 영화다. 이혼 소송 중인 석우(공유)는 엄마가 보고 싶다는 딸 수안(김수안)을 위해 부산행 KTX 열차에 함께 오른다. 부산을 가기 위해 석우와 수안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탑승하고, 열차가 대전역을 향해 가고 있는 사이 열차 안팎으로 감염자들, 즉 좀비들이 빠르게 생겨나면서 국가재난상황이 발령된다. 공유, 정유미, 최우식 등 충무로에서 핫한 배우들이 모여 호연을 펼쳤지만, 그 가운데 최고는 마동석이었다. 맨주먹으로 좀비를 처리하는 모습에 ‘좀비에게 스릴러’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 해외에서는 꽤나 신선한 설정이었는지 마동석이 ‘좀비 슬래셔’로 알려지게 되며 인지도를 쌓았다.
<부산행>은 정식 개봉 5일 전부터 유료시사라는 명목으로 일부 상영관을 오픈했다. 이에 변칙 개봉 논란이 일었다. 이 논란은 호재로 작용했다. 5일간 <부산행>을 본 56만 명의 관객들을 통해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개봉 3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역대 최고 오프닝 기록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개봉 일주일 만에 620만 관객을 기록하며 흥행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이 개봉했지만 <부산행>의 기세를 꺾기엔 무리였다. 개봉 19일차에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누적 관람객 수 천만을 돌파하며 2016년 첫 천만영화로 등극했다. 대만, 홍콩 등 해외에서도 흥행에 성공해 한국 영화 해외 흥행 1위를 기록했다.
<터널>│김성훈 감독 │2016년 8월 10일 개봉 │총 관객수 7,120,780 명
<터널>은 <부산행>으로 포문을 열었던 2016년 여름 영화의 마지막 타자였다. <끝까지 간다>로 깊은 인상을 남긴 김성훈 감독의 신작인 이 영화는 집으로 가던 중 갑자기 무너져 내린 터널 안에 홀로 갇힌 정수(하정우)의 이야기를 담았다. <터널>은 <더 테러 라이브>에 이은 하정우의 1인 드라마이자 재난극이다. 터널 안에 갇힌 정수를 구조하려는 정부의 지지부진하고 부실한 대처가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날카로운 풍자 영화라고 볼 수도 있다. <터널>은 <부산행>이 달궈놓은 극장가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받아 개봉 후 무려 27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하정우의 호연과 감독의 연출력, 여름 재난영화 흥행공식이 빚어낸 시너지로 <터널>은 총 712만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의 약 2배에 달하는 매출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
<엑시트>│이상근 감독 │2019년 7월 31일 개봉 │(8월 12일 기준) 관객수 5,997,289 명
마지막으로 올 여름을 강타한 이 영화를 빼놓을 수 없겠다. <엑시트>는 전대미문의 유독가스로 뒤덮인 도시를 탈출하려는 두 청춘의 탈출기를 그린 재난영화다. 장기 취준생인 용남(조정석)은 어머니의 칠순 잔치에서 오래 전 짝사랑했던 동아리 후배 의주(윤아)를 마주하게 된다. 연회장 ‘구름 정원’의 부점장으로 일하고 있던 의주. 두 사람의 어색한 만남을 뒤로하고 칠순 잔치가 마무리될 즈음, 갑작스레 연회장 유리벽이 깨지며 의문의 가스가 퍼지기 시작하고 용남과 가족들은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구조 헬기가 도착하지만 용남과 의주는 탑승하지 못하고 건물에 남게 된다.
<엑시트>는 신파도, 발암도 없이 코미디와 재난을 결합해 ‘신선한 재난영화의 탄생’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헬조선’에서 겪고 있는 청춘들의 고난을 도심에 짙게 깔린 유독가스에 빗댄 점 또한 신선하다. 탈출을 위해 끝없이 오르고 달리는 두 주인공의 모습이 만들어낸 속도감과 긴장감이 영화의 후반부까지 힘 있게 이어지며 시간을 ‘순삭’하는 영화. 그들의 필사적임은 현재의 청춘들에게 뭉클함과 위안을 선사하기도 한다. <엑시트>는 입소문에 힙입어 개봉 15일차인 13일, 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2019 여름 영화 시장 1위로 자리매김했다.
여름 재난영화 흥행 성공의 예외
<7광구>│김지훈 감독 │2011년 8월 4일 개봉 │총 관객수 2,242,510 명
세상에 완벽한 법칙은 없다. <7광구> 역시 여름에 개봉했던 재난영화였기에 언급은 하고 가야겠다. <7광구>는 ‘<괴물>의 뒤를 이을 괴수 재난영화’로 이름을 알리며 개봉 전부터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영화였다. 특히 영화 <해운대>에 이어 드라마 <시크릿가든>으로 인기의 절정에 있었던 하지원의 차기작이라는 점, 100억 원 이상이 투자된 국내 최초 아이맥스 3D 영화라는 점에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갈수록 높아져만 갔다. 하지만 시사회 이후 쏟아진 반응은 전부 혹평뿐. 결국 재편집을 결정, 개봉일을 연기하며 다시 선보였지만 엉성한 CG로 구현된 괴수의 모습부터 개연성 없는 전개 등으로 ‘영화 자체가 재난’과 같은 혹평들과 함께 224만 관객에 그치며 막을 내려야 했다.
씨네플레이 문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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