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촬영장의 마틴 스콜세지 감독.

단 한 사람의 발언이 할리우드를 둘로 양분시켰다. 주인공은 바로 마틴 스콜세지. <좋은 친구들>, <택시 드라이버>, <성난 황소> 등을 연출한 거장의 발언은 동종 업계 동료들의 지지와 마블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영화인들의 실망으로 이어졌다. 이 사태의 단초를 마련한 그의 발언은 이것이다.

마블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다

이 발언은 한국에 건너오면서 여러 오해를 낳았다. 번역 때문이다. 마틴 스콜세지는 시네마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그게 영화로 번역되자 “마블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라는 극렬한 문장이 됐다. 진의가 모호해진 것이다. 이쯤에서 마틴 스콜세지를 ‘신(新)문화도 못 받아들이는 꼰대’라고 오해하는 이들을 줄이고자 그가 왜 시네마란 단어를 사용했는지, 그리고 그 문장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했다. 기자 역시 MCU 모든 작품을 섭렵한 마블의 팬이자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으로서 마블과 마틴 스콜세지, 모두 폄하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열어본다.


영화를 영어로 하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무비. 그 외에는 필름, 시네마가 있다. 씨네플레이는 세 단어의 차이에 대해 이미 다룬 바 있다(링크). 당시 요약을 옮기자면 무비는 산업적·오락적 의미의 영화를, 필름은 예술적·철학적 의미의 영화를, 시네마는 영화관을 가리키는 것 외에도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정말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명확한 단어들일까? 옥스퍼드 영어 사전으로 각 단어의 정의를 정리했다.

무비 =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소리가 녹음된 움직이는 사진의 묶음”

Movie = a series of moving pictures recorded with sound that tells a story, shown at the cinema/movie theater

필름 = 명사로는 의미가 동일, 동사로는 “실화나 이야기의 영상물을 만드는 것”

Flim = to make a film/movie of a story or a real event

시네마 = “영화가 보여지는 건물”,“산업이나 예술로서의 영화”

Cinema = a building in which films/movies are shown, films/movies as an art or an industry

그냥 봐도 애매모호, 알쏭달쏭하다. 이것은 이것, 저것은 저것, 정확히 명시돼있지 않다. 뜻이 명확한 단어도 시간이 지나면 의미가 변하는 게 언어이니, 이 세 단어도 당연히 시간이 흐르며 그 의미가 미묘하게 변했다.

특히 시네마는 원래 영화 전용 극장을 이르는 단어에서 영화를 이르는 단어로, 심지어 영화 산업까지 포괄하는 단어에 이르렀다. 그래서 세 단어 중 가장 모호한 단어가 시네마다. 무비는 영화에 대한 묘사가 돼있으니 보는 사람을 대표하고, 필름은 영화를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창작자를 대변한다면, 이 시네마는 무엇일까. 극장에서 산업까지 총괄하는 단어이니 영화의 고유한 속성을 의미한다는 의견과, 반대로 영화를 만드는 것과 파는 것 둘 다 이르는 말이니 가장 산업적인 단어라는 해석이 공존하는 단어가 시네마다.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휴고>는 영화에 대한 경애가 담긴 작품.


그럼 마틴 스콜세지가 사용한 시네마란 단어는 어떤 의미인가. 이 단어가 뜻하는 것은 그가 이어 말한 문장까지 들여다봐야 알 수 있다.

솔직히 마블 영화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를 보여준 배우들이 함께 한, 잘 만들어진 테마파크다. 한 인간이 감정적인, 정신적인 경험을 다른 인간에게 전달하려고 애쓰는 시네마가 아니다.

Honestly, the closest I can think of them, as well made as they are, with actors doing the best they can under the circumstances, is theme parks. It isn’t the cinema of human beings trying to convey emotional, psychological experiences to another human being.”

마틴 스콜세지는 사고파는 상업 영화가 아니라 작가적 의식이 깃든 영화를 지칭하기 위해 시네마란 단어를 사용했다. 즉 그는 마블 영화(를 포함한 슈퍼히어로 영화)를 졸작이라고 폄하한 게 아니다. 그는 웰메이드(wall made)란 단어, 배우들에 대한 찬사로 마블 영화가 쌓아올린 노고를 치하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영화라는 매체의 예술적 성취와는 거리가 멀다는 걸 지적했다.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는 <어벤져스: 엔드게임>까지 22편의 영화로 세계관을 주조해왔다.

‘아무리 그래도 영화를 시네마가 아니라고 하는 건 관객이나 제작진을 폄하하는 것 아니냐!’ 반문할 수 있다. 그 부분은 2016년의 마틴 스콜세지가 대답한다. “내가 성장하면서 봤던, 내가 만드는 시네마는 이제 없다”. 이미 3년 전, 그는 시네마가 사라졌다고 판단했다. 이제야 마블 영화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시리즈 기획과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것에 매몰돼 완결성을 갖는 한 편의 영화에 관심을 갖지 않는 할리우드의 세태를 진작에 지적한 것이다.

‘시네마의 죽음’을 목도한 스콜세지의 행적은 현재 공개를 앞둔 영화 <아이리시맨>으로 이어진다. 혹자는 “스트리밍용 영화를 만들면서 시네마 타령이냐”라며 마틴 스콜세지를 비난했다. 하나 스콜세지가 넷플릭스와 <아이리시맨>을 제작한 건 할리우드에선 시네마가 죽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제작비를 지원하되 감독의 비전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게 작품에 관여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즉 마틴 스콜세지는 (작가적 의식이 담고 관객과 교류하는) 시네마를 만들 수 있는 곳이 메이저 영화사가 아니라 넷플릭스임을 인정한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의 신작 <아이리시맨>


현 할리우드의 상황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포스터에 빗댄 팬이미지.

시네마가 죽었다고 생각한 마틴 스콜세지는 왜 갑자기 마블 영화를 걸고넘어졌을까. 그건 시네마가 ‘영화’만 뜻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시네마는 원래 극장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공간과 작품이 공존하는 단어. 마틴 스콜세지는 시네마의 죽음을 언급하면서 “극장은 앞으로도 공통된 경험을 공유하는 장소로 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공통된 경험이 “테마파크 영화들(여기서는 무비를 사용했다)”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2019년, 마블 발언에서도 “영화관은 놀이공원(amusement parks)가 되고 있다”면서 시네마의 일부분인 극장이 기능을 상실했음을 설명했다.

지금쯤 마틴 스콜세지의 발언을 너무 과대해석하는 것 아닌가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마틴 스콜세지는 한 인터뷰에서도 무비, 필름, 시네마를 혼용해서 사용한다. 적어도 스스로에겐 세 단어가 똑같은 ‘영화’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다른 맥락에서의 영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극장에서 영화(무비)를 보는 건 관객들에게 최고지만, 영화(시네마)의 진정한 개념은 정의되지 않은 무언가다”(see a movie in a theatre, it’s the best with an audience, but the actual concept of cinema has become something that is not definable)라는 발언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이제 마틴 스콜세지의 강경한 발언이 어떤 의미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마블 영화를 예로 들었을 뿐, 주류 할리우드 영화사와 극장을 향한 비판을 날린 셈이다. 생각해보자. 최근 작가적 의식이 명백하면서 짭짤한 수익까진 챙긴 영화가 무엇인가. <겟 아웃>이다.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은 제작비 예산을 적게 줘도 감독의 비전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 제작사다. 반대로 메이저 영화사들은 시리즈와 유니버스에 집착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마블 영화이기 때문에 스콜세지는 마블 영화를 콕 짚어 얘기한 것이다.

<겟 아웃>은 저예산 공포 영화였으나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에 노미네이트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혹시 주류 문화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진다면? 마틴 스콜세지는 이런 발언도 덧붙였다.

우리는 진화와 혁명의 순간에 있다. 마치 21세기가 시작되고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이 사라지듯 시네마 또한 사라지는 것이다.

더불어 가장 최근에 진행한 인터뷰에선 이렇게 설명했다.

그것(테마파크 영화)는 새로운 예술 형태다. 내가 걱정하는 건 거대한 테마파크 영화들에게 상영관을 잃는 것이다. 시네마는 바뀌고 있다. 테마파크 영화 같은 것을 봐도 좋다. 다만 그레타 거윅, 폴 토마스 앤더슨 같은 사람들을 극장에서 밀어내지는 말라.”

마틴 스콜세지의 “마블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다”는 발언은 보시다시피 요약하기 까다로운 면이 있다. 스콜세지의 단어 선택을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할리우드 주류 영화계의 흐름과 북미 극장들의 상영 성향을 통째로 봐야 그의 발언이 어떤 의미인지 와닿을 정도니까.

스콜세지의 용감한 발언은 그 의도와 상관없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다른 감독들도 마블 영화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했고 디즈니 회장 밥 아이거가 직접 스콜세지에게 반론을 제기했다. 그들의 의견을 전부 일일이 다루기엔 마틴 스콜세지의 최초 발언이 많은 걸 포괄하고 있으니 이걸로 마무리하겠다. 스콜세지의 발언에 담긴 통찰을 놓친 채 마틴 스콜세지를 ‘꼰대’로 오독하는 불상사가 없길 바란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