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 포트만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블랙 스완>(2010)이 8년 만에 한국 극장가에 다시 걸렸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16mm 필름으로 포착해낸 처절한 성장담을 다시 한번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기해 <블랙 스완>의 숨은 사실들을 정리했다.


나탈리 포트만은 영화가 꼭 만들어질 거라 믿고 공식 시나리오를 받기도 전에 발레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1년에 걸쳐 발레를 연마했을 뿐만 아니라, 투자금을 구할 때까지 트레이닝 비용을 사비로 지불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포트만의 헌신과 열정으로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트레이닝이나 안무만큼이나 나탈리 포트만을 힘들게 한 건 목소리를 바꾸는 일이었다. <블랙 스완> 이전에 다른 감독들은 줄기차게 포트만의 아이 같은 목소리에 대해서 불만을 표했고, 보컬 코치와 함께 낮고 어른 같은 소리를 만들어내기를 부추겼다. 하지만 <블랙 스완>의 니나 역은 포트만에게 다시금 아이 같은 목소리를 갖기를 요구했다.


나탈리 포트만의 대역을 맡았던 무용수 사라 레인은 DVD/블루레이가 발매되기 직전, <블랙 스완>의 프로듀서들이 자신에게 포트만의 안무에 대한 신뢰를 쌓기 위해 시상식 시즌까지는 인터뷰를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고, 특수효과에 관한 자료화면에서 레인이 까다로운 동작을 선보였을 때 얼굴이 포트만의 것으로 교체됐다고 폭로했다. <블랙 스완>의 안무감독이자 니나의 공연 상대 데이비드를 연기한 벤자민 밀피에는 사라 레인의 폭로에 대한 기사들이 그녀가 굉장히 많은 작업을 한 것처럼 써놓았지만, 실상 레인은 발놀림이나 발끝으로 돌기 정도만 했을 뿐, 85%는 포트만의 연기였다고 반박했다. 아로노프스키 역시 영화 속에서 안무 쇼트는 총 139개인데, 그 중 111개가 포트만의 것이고 28개만 레인의 대역이어서, 산술적으로 따지면 80%가 포트만의 퍼포먼스라고 반박했다.

흑조 분장을 한 사라 레인 / <호두까끼 인형> 공연 중의 사라 레인


사라 레인의 대역은 오프닝의 댄스신에서 23초, 마지막 신에서 85초 등장한다. 오프닝에서 그의 대역 신은 전부 발끝으로 선 것. 로스바트와의 춤에서 발끝은 포트만이 직접 했다.


평소에도 마른 체형인 나탈리 포트만은 발레리나처럼 보이기 위해 9kg를 더 감량했다.


니나는 아침식사로 반쪽 자리 자몽에 살짝 삶은 달걀을 먹는다. 이는 <레퀴엠> 속 젊었을 적 드레스를 입기 위해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사라(엘렌 버스틴)가 먹던 식단이다.

<블랙 스완>

<레퀴엠>


밀라 쿠니스가 발레를 배웠다는 걸 알고 나탈리 포트만은 <블랙 스완> 측에 릴리 역으로 추천했고, 쿠니스는 공식 오디션 없이 아로노프스키와 스카이프로 화상 채팅하고 바로 릴리 역에 낙점됐다. 한편 블레이크 라이블리와 에바 그린은 릴리 역의 오디션을 본 걸로 알려져 있다. 쿠니스는 발레 강사와 함께 3개월 동안 한날도 빼놓지 않고 하루 5시간씩 연습한 후에야 발끝으로 서서 춤추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영화 초반 토마스가 무용수들의 어깨를 톡톡 건드리는 연습신, 니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블랙이 섞인 착장을 하고 있다.



나탈리 포트만과 벤자민 밀피에는 <블랙 스완>을 작업하면서 만나 아들과 딸을 둔 부부가 됐다. 영화 속에서 밀피에의 캐릭터는 토마스로부터 “너 같으면 니나랑 자고 싶냐”고 질문 받을 때 코웃음을 치는데, 포트만은 그 반응이야말로 밀피에가 훌륭한 배우라는 증거라고 농을 던진 바 있다.


<더 레슬러>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본래 이 이야기를 <레슬러>(2008)의 일부로 떠올렸다. 발레 무용수와 레슬러와의 사랑 이야기로 그렸지만, 두 분야의 세계가 한 영화 안에 담기기엔 과하다고 판단해 수정했다. 아로노프스키는 <블랙 스완>의 설정을 도스토예프스키의 <이중인격>을 느슨하게 바탕으로 삼았다.


주인공 이름 니나는 스웨덴의 국민 밴드 아바(ABBA)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노래 ‘니나, 프리티 발레리나’(Nina, Pretty Ballerina)에서 따왔다. 평범해 보이지만 비밀을 안고 있는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로, 니나와 발레리나의 라임으로 후렴부의 리듬을 한껏 살린다. 시나리오 초안 속 주인공 이름은 알렉산드리아였다.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전작 <천년을 흐르는 사랑>(2006)보다 적은 2800만~3000만 달러 정도의 예산을 원했지만, 결국 그에 반도 못 미치는 1300만 달러가 모였다. 예산은 아주 빠듯한 나머지, 나탈리 포트만의 갈비뼈가 탈골 됐을 때 포트만은 제작비 상황이 전담 의사를 고용할 수 없다는 말을 들어야 만했다. 포트만은 자기가 트레일러를 쓰지 않는 대신 예산을 마련해 의사를 고용하라고 요구했다. 안무감독은 전문 물리치료사 미셸 로드리게즈 노엘을 섭외해, 아로노프스키는 포트만이 실제 물리치료 받는 모습을 촬영해서 썼다. 결국 포트만은 회복하는 데에 6주나 걸렸다. 고된 촬영에도 불구하고 포트만은 아로노프스키와 다시 작업하고 싶다고 밝혔다.


뱅상 카셀은 제 캐릭터 토마스를 20세기의 영향력 있는 무용가 조지 발란신에게 빗댔다. 카셀은 발란신을 '통제광'이고 '섹슈얼리티를 이용해 댄서들을 연출하는 아티스트'라고 칭했다.


니나의 강박적인 피부 뜯어내기는 실제로 Dermatillomania, DMT, CSP 등으로 불리는 충동 조절 장애다.


니나가 엄마한테 전화로 합격 소식을 알린 후 화장실 거울에 쓰여진 낙서는 나탈리 포트만이 직접 쓴 것이다.


릴리는 언제나 검은 옷, 심지어 속옷까지 검은 걸로 입는다. 명백히 니나와 반대인 '블랙 스완'을 상징하는 바다.


공연 전날 니나가 연습할 때 피아노를 쳐주다 말고 나가버리는 피아니스트는 드랙 캐릭터 '립싱카'로 알려진 존 에퍼슨이 연기했다. 실제로 에퍼슨은 70년대 말 80년대 초 아메리칸 발레 씨어터 소속 피아니스트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나탈리아 마카로바, 루돌프 누레예프, 마고 폰테인, 겔지 커크랜드 등 명 무용수들의 리허설에 연주를 보탰다.


지하철 열차에서 손톱을 다듬고 있던 니나를 성희롱 하는 노인은 <레퀴엠>의 클라이막스에서 마리온이 완전히 파멸했음을 보여주는 섹스 파티의 주최자 엉클 행크다. 모두 같은 배우 스탠리 B. 허먼이 연기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레퀴엠>에서 마리온(제니퍼 코넬리)이 욕조에 있는 신을 일본 애니메이선 <퍼펙트 블루>(1997)에서 차용했다. <블랙 스완> 역시 <퍼펙트 블루>와 서사/이미지 측면에서 여러 유사점이 발견되는데, 정작 아로노프스키는 그 영향을 부인하고 있다.


<블랙 스완>에서 거울이 등장하는 거의 모든 경우 거울엔 어떤 대상이 비춰져 있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에 니나가 흑조를 연기할 때 거울이 있지만, 거기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탈리 포트만은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는 물론,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시상식이란 시상식에선 모두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 오른 공포영화는 딱 여섯 작품이다. <엑소시스트>(1973), <죠스>(1975), <양들의 침묵>(1991), <식스 센스>(1999), <겟 아웃>(2017), 그리고 <블랙 스완>.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