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바즈 루어만의 <로미오와 줄리엣>(1996)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해변을 배경으로 걸어 나오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아니,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반사판 따위 거추장스럽다는 듯 ‘자연 후광’을 내뿜는 디카프리오는 정말이지 아름다운 피사체였다. 꽃미남 배우는 당시에도 많았지만, 그가 품은 아름다움은 좀 남달랐다. 그의 외모엔 세상 모든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로 인한 피해를 가장 많이 본 건 디카프리오와 영화 안에서 사랑에 빠지는 여주인공들이었다. 그의 미모는 한때 영화를 화보인 양 바라보게 하는 혼돈을 낳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몇몇 영화들은 스틸 컷과 예고편 만으로도 하나의 드라마를 완성하곤 했다.

‘아름답다’라는 단어가 여성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증명하며 한 시절을 풍미한 디카프리오의 스타성은 탄생기부터 영화적인 면이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거창하고도 범상치 않은 이름인 레오나르도 빌헬름 디카프리오는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에서 왔다. 이탈리아를 여행 중인 어머니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을 보고 있는 타이밍에 그는 시간차 발길질을 했다. 뱃속의 꿈틀거림을 느낀 여인은 태어날 아들에게 위대한 예술가의 이름을 붙였다. 마치 아들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예고라도 하는 듯.

언론이 디카프리오에게 먼저 하사한 것은 ‘연기 천재’라는 수식어였다. 17세에 <크리터스3>(1991)로 영화에 입문한 그가 데뷔 초 <디스 보이즈 라이프>(1993)에서 만난 상대는 연기파 배우들의 대부인 로버트 드 니로였다. 그러나 이 담대했던 소년은 드 니로라는 존재감 앞에서 주눅 들지 않았다. 평단과 대중은 나이답지 않은 연기력을 지닌 소년에게 호평을 보냈다. 이는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하는 디카프리오에게 적잖은 자신감을 안겨줬을 것이다.

<길버트 그레이프>

그 자신감은 <길버트 그레이프>(1993)에서 더 강하게 진동했다. 조니 뎁이 ‘길버트 그레이프’를 연기한, 누가 봐도 조니 뎁 주연인 영화에서 디카프리오는 지지 않겠다는 듯 동물적인 연기를 토해냈고, 사람들이 <길버트 그레이프>를 떠올릴 때 길버트뿐 아니라 자신이 연기한 지적장애인 ‘어니’도 잊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카데미는 그해 남우조연상 후보에 디카프리오 이름을 올렸다. (이때의 수상 실패는 훗날 ‘오스카 불운의 아이콘’으로 떠오를 운명의 서막이었다.)

<토탈 이클립스>

<타이타닉>

<바스켓볼 다이어리>(1995)에서 황폐해진 청춘을, <토탈 이클립스>(1995)에서 자기 파괴적인 시인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보다 아름다운 로미오를 연기한 디카프리오는 1997년 <타이타닉>에 승선한다.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어떤 방향을 틀어버릴 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배우가 흥행작을 만나 인기를 얻는 건 특별할 게 없지만, <타이타닉>은 그 정도가 세도 너무 셌다. <타이타닉>은 해일처럼 전 세계 극장가를 덮쳤다. 디카프리오는 ‘세계의 아이돌’이라는 왕관을 썼다. 그러나 그것은 ‘가시 면류관’이었다. 디카프리오가 흡사 인기와 재능을 두고 악마와 거래라도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슈퍼스타 이미지는 그의 연기적 재능을 가려버렸다. 미디어는 그를 스타 산업의 구조 속에서 활용하고 싶어했다.

이후엔 조금 클리셰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 갑작스럽게 거대한 인기를 얻은 배우가 화려한 스타덤 속에서 삶의 허무를 느끼고 고뇌한다는, 영화에서 많이 봐 온 그런 상황들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영화가 아니라, 디카프리오의 실제 삶이었다. 그는 급기야 우디 앨런의 <셀러브리티>(1998)에서 망나니 스타로 출연해 자신의 신세를 간접적으로 한탄했다. 여러 인터뷰에서 <타이타닉> 선택에 대해 후회하는 듯한 발언도 심심치 않게 흘렸다. 그러니까 그가 되고 싶어 하는 것과 대중이 그에게 바라는 것 사이에 격차가 너무나도 심하게 뒤틀려 있는 시기였다.

‘연기 천재’였던 소년의 이미지가 완벽하게 지워지려는 찰나, 그는 놀랍게도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페르소나가 되어 돌아왔다. 스콜세지와 〈갱스 오브 뉴욕〉(2002), 〈에비에이터〉(2004), 〈디파티드〉(2006), <셔터 아일랜드〉(2010),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라는 ‘시네마’를 경유하며 작품 속 캐릭터 안으로 더 내밀하게 들어갔고, 자신을 향한 대중의 신뢰를 회복시켰다. 이 외에도 쿠엔틴 타란티노의 ‘신명 나는 악취미’와 크리스토퍼 놀란의 ‘야심’과 샘 맨데스의 ‘밀도 높은 드라마’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물샐 틈 없는 ‘비전’에 연기적 열정을 태우며 스타라는 이미지로 자신을 포획하려는 외부의 손길들에 선을 그었다.

<레버넌트>

물론 매번 좋았던 건 아니다. <디파티드>에서의 디카프리오에겐 원작 <무간도>에서 양조위가 보여준 금방이라도 부서져 내릴 것 같은 아슬아슬함이 덜했다. 아카데미의 한을 푼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에선 숨 조여오는 연기력을 보여주고도 너무 아카데미를 노린 ‘육체적 고행의 연기’를 한 것이 아닌가란 혐의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영화에서 내부의 벽들과 싸워내야 하는 인물의 슬픈 운명을 농도 높게 대변하며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영화 안에서 미국의 못난 역사, 욕망의 대리인, 청춘의 표상, 뼛속까지 살벌한 악당, 가련한 연인…그 모든 것이었다.

나는 디카프리오의 필모에서 <토탈 이클립스>에 과한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그가 연기한 시인 랭보는 원래 리버 피닉스가 맡기로 한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리버 피닉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랭보는 디카프리오에게 넘어갔고, 디카프리오는 이 작품에서 생을 향한 모든 감각이 열려 있었던 랭보의 한 시기를 영혼처럼 발화시켰다. 나는 이것이 어떤 상징처럼 여겨지곤 한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 낙화한 리버 피닉스는 스물세 살에 멈춰서며 불멸이 됐다. 제임스 딘처럼. 그렇다면 디카프리오는?

<로미오와 줄리엣>

나이 오십을 향해 가는 디카프리오는 더 이상 꽃미남이 아니다. 날렵했던 그의 얼굴선에는 나잇살이 붙었고, 입금과 동시에 환골탈태하기는 하지만 관리하지 않을 때 언론에 포착되는 그의 배는 아저씨들의 그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연기적 재능과 부단한 염문으로 대중의 관심 한복판에 여전히 머무르는 스타다. 배우들이 함께 호흡 맞추고 싶어하는 배우이자, 후배들이 넘어야 할 허들이기도 하다. ‘제2의 디카프리오’ 여럿이 출몰했으나, 원본이 지닌 아우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연기하지 않을 때의 디카프리오는 환경 운동에 자신의 영향력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지구 수호자로서 활동하기도 한다. 지구방위대가 따로 없다.

젊음과 함께 산화돼 전설이 된 리버 피닉스와 달리, 디카프리오는 화사했던 청춘의 시기와 자신을 옭아매는 이미지에 격렬히 저항하는 시간을 지나 이제 연기로 믿음을 주는 현재진행형의 배우로 스크린 속에서 살아간다. 청춘의 유통기간은 짧고, 하루하루 늙어가는 육체는 살아남은 자가 감당해야 할 숙명. 그러한 숙명 속에서 디카프리오는 살아있는 전설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그 끝이 어딜지 모르겠지만, 그 행보를 지켜보며 목소리 낼 수 있다는 건 동시대를 사는 관객들에겐 행운이다.


글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