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W의 드라마 <배트우먼>은 시작부터 순탄치 못했다. 첫 등장이었던 CW버스의 크로스오버 이벤트 <엘스월드>까지는 크게 화제가 되지 않았지만, 루비 로즈(케이트 케인 역)가 등장하는 첫 공식 트레일러가 공개됨과 동시에 안 좋은 의미로 엄청난 반응을 끌어모으고 말았기 때문이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다. 히어로 무비는 물론이고 영화와 드라마를 위시한 다수의 콘텐츠에서 최근 중요한 이슈로 자리잡은 페미니즘 및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다소 안일해 보이는 방식으로 다루었고, 또 배트맨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캐릭터 특성에도 불구하고 배트우먼에 대해 제대로 소개하기도 전에 배트맨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같은 대사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신규 콘텐츠의 예고편이고, 아직 본편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음에도 트레일러는 '좋아요'보다 '싫어요'를 압도적으로 많이 받으며 시즌 공개 이전부터 혹평을 들어야 했다. 정작 본편에는 예고편에서 문제가 되었던 대사가 등장하지 않았으며 배트맨의 존재를 부정하기보다는 배트맨의 영향력이 더 진하게 드러났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한편으론 애석한 일이다.

말하자면 핀트가 엇나간 예고편이 시즌 전체에 악영향을 끼친 셈이다. 배트우먼이 배트맨 이상의 무엇인가가 될 거라는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실제로 배트맨이 시리즈의 중역으로 등장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배트우먼의 시작점이자 배경인 배트맨에 대한 충분한 존중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케이트 케인을 연기한 루비 로즈는 시즌 1 이후 하차했다.

우여곡절 끝에 배트우먼은 새 시즌을 예정하고 있으나 1시즌의 주인공이었던 루비 로즈는 하차 소식을 전했다. 루비 로즈가 배트우먼으로서 보여준 행보가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았던 데다가, 같은 캐릭터의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배우가 교체되는 일이 흔하지는 않았으므로 하차 이유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시즌 1의 배트우먼, 케이트 케인

<배트우먼> 시즌 1은 루비 로즈의 첫 번째 TV 시리즈 주연작이었으며 그는 넷플릭스의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스텔라 역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녀에게도 의미가 컸을 이 배역에서 하차한 이유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은 없었지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루비 로즈는 촬영 과정에서 제작진과 마찰이 있었고 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CW는 시즌 2에서 배트우먼 역을 연기할 새로운 배우를 찾았는데, 기존의 배트우먼 케이트 케인이 실종되었다는 새로운 스토리라인을 골자로 내세웠다. 두 번째 배트우먼 캐릭터는 고담시의 하층민 출신 흑인 여성이자 드라마만의 오리지널 캐릭터 라이언 와일더(하비시아 레슬리)로 정해졌다.

배우가 교체된 상황에서 선택지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이전 시즌에서 배트맨의 그림자와 영향력을 짙게 묘사했던 만큼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상은 어떤 연관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배트맨과 전혀 관련이 없다 해도 무방한(같은 도시 주민 정도...) 라이언 와일더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배트우먼으로 내세우기 위해서는 그만한 연결고리가 있어야 할 텐데….

시즌 2의 배트우먼, 라이언 와일더

지난가을 새로운 배우와 새로운 캐릭터, 변화된 코스튬을 공개한 배트우먼 시즌 2의 공식 프로모션 이미지 역시 반응은 좋지 않았다. 전 시즌부터 혹평을 받았던 배트우먼 코스튬은 물론이고, 케이트 케인와 배트맨이 없는 고담시의 문제에 대해 다루었던 스토리 또한 다 버리고 원작에도 없는 새로운 시리즈를 무리하게 시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잇달았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그 모든 걸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콘텐츠라면 아무것도 문제 될 건 없었다. 하지만 지난달 첫 공개된 배트우먼 시즌 2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배트우먼> 시리즈의 정체성은 배트맨의 사이드킥이었던 배트우먼 '케이트 케인'의 실사화 시리즈였다는 점, 그리고 레즈비언 성향의 히어로 캐릭터가 처음으로 주역으로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시즌 2에서는 이 주요한 특징 중 하나를 포기한 셈이나 다름없다. 배우 루비 로즈의 하차로 케이트 케인을 실종 상태인 것으로 설정하고 새로운 배트우먼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원작 코믹스에서 배트우먼으로 차용할 만한 캐릭터가 아주 없었는가 하면... 케이트 케인이 아니더라도 대체할 만한 캐릭터를 내세울 수도 있었다. 물론 케이트 케인이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내력이나 인지도만큼은 아니겠으나 대체재가 없지는 않았을 거라는 뜻이다. 하지만 제작진이 선택한 건 완전히 새로운 오리지널 캐릭터였다.

배우 교체로 인한 새로운 캐릭터 도입이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하더라도, 든든한 팬층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리즈의 오리지널 캐릭터를 도입하는 것은 상당히 모험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저예산 시리즈인 <배트우먼>을 처음부터 다시 리부트해 제작하는 것은 더 어려운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지난 시즌의 혹평에 배우 교체까지 난관을 거친 이 시리즈로서는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지난주에 시즌 통틀어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고야 만 <배트우먼> 시즌 2는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캐스팅 변경과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스토리라인이 전부 해답이 아니었다는 뜻일까.


히어로 코믹스라는 오랜 역사를 지닌 콘텐츠를 원작으로 삼는 실사화 시리즈에서 오리지널 캐릭터의 도입은 다소 위험한 일처럼 여겨질 수 있다. 탄탄한 팬덤과 인지도를 쌓아 온 기존의 캐릭터 대신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를 제시함으로써 모종의 성과를 거둬야만 하기 때문이다. 기존 코믹스의 이슈나 다양한 설정으로부터 시나리오를 구성할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오리지널 캐릭터와 오리지널 스토리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리즈를 제시한다는 것은 모험이나 다름없다. 실사화 시리즈의 이야기들이 원작 코믹스나 여타 과거의 히어로 장르 기반 콘텐츠를 그대로 이어가는 것은 아니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아이언맨이 남긴 명대사 'I'm Iron man' 역시 원작에는 없었던 오리지널 대사였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을 제시할 때에는 그만한 매력과 재미가 있어야 한다. 히어로 실사화 콘텐츠 역시 대중의 평가를 기반으로 하는 상품이기에 계속해서 시청할 만큼의 재미가 없다면 대중은 그 안에 어떤 유의미한 윤리의식이 있다 하더라도 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배트우먼> 시즌 2는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CW버스로 불리는 CW 제작의 DC 소재 드라마들이 대규모 크로스오버 이벤트를 통해 관심을 끌었던 반면 코로나 19로 인해 이러한 이벤트의 낙수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점도 들 수 있겠으나 근본적인 이유는 시리즈가 그만큼 대중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고, 재미가 없다는 뜻이다. 재미없는 콘텐츠에 굳이 관심을 보일 만한 사람은... 없기 때문에.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