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최대 화제작 <마스터>.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이라는 초호화 캐스팅이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지만, 영화가 공개된 이후 칭찬은 온전히 이병헌에게로 향했다. 건국 이래 최대 게이트를 벌여 한국을 들쑤셔놓는 진 회장 역은, 이병헌이 한국영화에서 오랜만에 선보인 악역인 만큼 그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이번 '영화人'은 이병헌이 보여준 수많은 인물 가운데 '악인'의 면모가 돋보이는 영화를 소개한다.
<컷>
영화감독
이병헌에게서 악인의 얼굴을 처음 끌어낸 건 박찬욱 감독이었다. <올드보이>(2003)의 성공 이후 첫 작품인, 아시아 호러 옴니버스 <쓰리, 몬스터>(2004) 속 단편 <컷>에서다. 잘나가는 영화감독이 얼굴도 기억 못하는 엑스트라(임원희)의 침입을 받고 난처한 상황에 놓이는 이야기를 그린다. 괴한은 "모두 다 가진 양반이 착하기까지 허믄 어떡허유"라며, 피아니스트인 아내(강혜정)의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나가면서 감독에게 다짜고짜 악행을 요구한다. "착해서 죄송"하다고 머뭇대던 그는, 아내를 구출하기 위함인지 혹은 진심인지 모르는 채로, 험한 말들을 퍼붓는다. 갑자기 들이닥친 상황에 당황하던 얼굴을 순간 쓱 고쳐짓고, 대뜸 모골이 송연해지는 말들을 쏟아내는 온도차야말로 이 영화의 묘미다. 그 낙차가 자연스러울 수 있었던 건, <공동경비구역 JSA>(2000)을 함께 작업한 박찬욱 감독이 포착한 이병헌의 가능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박창이
<컷>의 영화감독이 선과 악의 구분이 묘한 인물이었다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박창이는 그냥 '나쁜 놈'이다. 만주에서 악명 높은 마적단 '창이파'를 이끄는 박창이는 명예를 중시하고, 최고가 아니면 견딜 수 없는 강박을 가진 우두머리다.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그는 악랄하고 비틀린 성격으로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저지른다. 살육의 대상으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죽이고 난 후 여유롭게 춤까지 추곤 한다. 시커먼 다크서클과 얼굴의 흉터 등 척 봐도 나쁜 놈인 게 티가 나는 행색을 하고 '좋은 놈' 박도원과 '이상한 놈' 윤태구를 뒤쫓는다. 정우성의 미모와 송강호의 에너지 사이에 끼어있는 듯한 이병헌은 두 배우의 장점을 적절히 품은 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긴장을 불어넣는다.
'지.아이.조' 시리즈
스톰 쉐도우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2009)은 이병헌의 첫 할리우드 영화다. 스티븐 소머즈 감독은 이병헌의 일본 팬미팅 현장 비디오를 보고 곧장 그를 스톰 쉐도우로 낙점했다고 한다. 스톰 쉐도우는 선과 악 구분 없이 그저 임무만을 수행하는 살인병기다. 영화 속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온통 시커먼 옷을 입은 데 반해, 이병헌은 새하얀 닌자 복장을 하고 남다른 존재감을 뽐냈다. 할리우드에서의 첫인상 때문일까. 감정이라곤 끼어들 틈이 없는 냉혈한으로서 주인공들을 옭아매는 캐릭터가 이후 이병헌이 출연한 할리우드 작품에 변주돼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작은 비중이었음에도 꽤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4년 후 제작된 속편 <지.아이.조 2>에서는 주인공 편에 서서 강도 높은 액션을 선보였다.
<레드: 더 레전드>
한조배
'지.아이.조' 시리즈로 할리우드에 안착한 이병헌은 '액션에 능한 악역'으로 커리어를 이어갔다. 브루스 윌리스, 존 말코비치, 헬렌 미렌 등 대배우들의 노익장이 돋보이는 <레드>의 속편에서는 세계 최고의 킬러 한조배로 분했다. 전편의 사건을 해결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프랭크(브루스 윌리스)가 이유도 모른 채 공공의 적이 돼 인터폴과 MI6에 쫓기는 사이, 한조배 역시 그를 끈질기게 추적한다. 사실 할리우드 속 이병헌의 캐릭터는 누군가를 쫓아가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그리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 주인공에게 공격을 퍼부을 때 특유의 무감정의 얼굴은, 한국영화에서 선보인 인물들이 품었던 절절한 '마음'이 완벽히 표백돼 있어, 새로운 쾌감을 안겨줬다. 본래 중국인으로 설정돼 있던 한조배 역할은 이병헌의 요청에 따라 한국인으로 수정됐고, 영화 속에서 그가 구사하는 한국어(주로 욕설)를 들을 수 있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T-1000
T-1000은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T-800, 존 코너, 사라 코너만큼이나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비록 <터미네이터 2>(1991)처럼 메인 빌런은 아니지만, 그 T-1000을 이병헌이 연기했다는 사실은 할리우드 내 그의 위치가 그만큼 상승했다는 걸 방증하는 지표다. 오리지널 T-1000의 배우 로버트 패트릭과의 차이는 꽤 뚜렷하다. 창백한 피부, 칼같이 빗어넘긴 머리 등 액체금속으로 이루어진 살인병기 특유의 차가움보다는 좀더 인간에 가까운 느낌이 크다. 하지만 이병헌의 T-1000이 작동되는 방식은 오리지널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2015)의 설정을 경유해 거의 팬서비스 차원에서 만들어진 캐릭터라 전작의 향수를 자극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기대했던 것보다 분량이 짧긴 했지만, 로버트 패트릭 못지않은 T-1000의 위험성을 제대로 계승했다는 점만으로도 반가운 활약이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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