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영태(박송열)와 정희(원향라)는 생활고에 시달린다. 연인이었던 둘은 부부가 됐으나 각자 짊어졌던 가난 또한 곱절이 됐다. 대리운전과 배달 아르바이트로 생계비를 마련하는 영태와 정희는 “존재를 지워야 하는” 노동과 지긋지긋한 금전 문제에서 벗어나고자 구직 활동을 병행하지만,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외려 위기에 거듭 직면한다. 유일한 재산인 카메라를 아는 형에게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놓인 영태,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카드 값을 막을 방도가 없자 급한 마음에 사채를 쓴 정희.

박송열 감독의 두 번째 작품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자연스레 전작 <가끔 구름>(2019)의 명훈(박송열)과 선희(원향라)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남자 명훈과 무명 배우로 고군분투하는 여자 선희. 결혼이라는 과제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며 종종 흔들렸던 <가끔 구름> 속 연인은 이제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집에 살림을 꾸리면서 본격적으로 현실과 맞닥뜨린다.

연인과 부부는 과연 다를까.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 <가끔 구름>의 연인과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부부는 얼마간 닮았다. 박송열 감독과 원향라 배우가 연달아 주인공을 연기해서라기보다는 두 작품이 다루는 인물과 관계의 성격이 유사해서일 것이다. 영태와 정희는 명훈과 선희가 그러했듯이 매일 머리를 맞대고 뭘 먹을지 고민하는 식구이고, 단출한 밥상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하루 내 쌓인 피로를 어루만져주는 동지다.

어찌나 죽이 잘 맞는지 별것 아닌 일에도 함박웃음을 짓는가 하면, 말투나 표정의 미세한 변화만으로도 상대의 심중을 금세 알아차린다. 기질 또한 다르지 않다. 두 인물의 생활은 여전히 세속적 욕망과는 거리가 멀다. 영태는 ‘아는 사람’에게 연거푸 뒤통수를 맞으면서도 더불어 사는 삶과 양심이라는 자기 기준에 따라 행동한다. 정희는 그런 영태를 한심하게 바라보거나 답답하다고 타박하지 않고 끝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보자. 명훈과 선희 혹은 영태와 정희, 이 두 쌍의 연인과 부부는 현실을 외면하는 더없이 착하고 순박한 성정을 지녔을까.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영태와 정희는 돈이 돈을 낳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중에 300만 원이 없어 궁지에 몰리는 공포를 경험한다. 집에 틀어박혀 구직 전화를 돌리던 영태의 시선은 ‘서울역 노숙인 쫓겨나다’라는 신문 기사에 한참 머문다.

친한 동생에게 일일 특별활동 강사 자리를 부탁받은 정희는 어떤가. 학교 위치를 착각하는 바람에 그만 지각하고 만 정희는 어렵사리 번 8만원을 쥐고 돌아와 “돈 버는 게 너무 무서워”라며 울음을 터뜨린다. 영태와 정희는 익히 알고 있다. 성공하기 위해선 세상이 더 나쁘게 굴러가도록 일조해야 한다는 걸, 약자의 등에 올라타 남들보다 재빨리 깃발을 거머쥐어야 한다는 걸 말이다. 그런데 영태는 왜 머뭇거리는가. 정희는 왜 글썽이는가.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에는 전작과 달리 꿈이 등장하지 않는다. 인물들은 자주 잠에 빠지지만 꿈에 관해 일절 말하지 않는다.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부부에게 꿈은 대화 주제로 적절하지 못하거나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은 아니다. 영화는 꿈이 사라진 공간을 혼자 감당하는 시간으로 채운다. 영태가 말없이 모니터를 응시할 때, 정희가 허공에 대고 마음을 토로할 때, 카메라는 영태와 정희를 한 공간에 두지 않는다.

영태의 괴로움은 정희를 자극하지 않고, 정희의 두려움은 정희만 아는 이야기로 남는다. 둘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따금 부동자세를 취한다. 발 빠르게 움직이며 잇속을 챙기는 대신, 웅크린 자세로 멈춰버린다. 그때 그들은 떨어져 있어도 함께 견디는 것처럼 보인다. 마음속 소란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면서, 다시 한번 다정하고 산뜻하게 악수를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잡는다.

다시 말하지만, 영태와 정희는 대단하지 않다. 영화는 그들을 반골이나 혁명가처럼 거창한 자리로 올려놓지 않고, 산전수전 다 겪은 가련한 이로 대우하며 감싸주지도 않는다. 보는 이에 따라서 영태는 알량한 자존심을 앞세우는 이기주의자일 수 있다. 정희는 의존적이라거나 모질지 못하다는 평가에 휩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둘이기에 다른 삶에 한눈팔지 않는다. 정희는 맑고 흐린 하늘에 개의치 않고 언제나 우산을 챙겨 다닌다.

세파를 뚫고 나갈 뾰족한 수는 없지만, 적어도 머리 위로 쏟아지는 빗줄기만큼은 어떻게든 피해 볼 작정이다. 정희가 결심한 덕분에, 맞장구치며 곁에서 버텨주기에 영태는 앞으로 사는 동안 자신을 아주 잃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을 충분히 의식하면서도 지금의 모습을 저버리지 않으려 무던히 애쓰는 영태와 정희의 고투는 시시해서 특별하고, 사소해서 위대하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실소가 터져 나오는 상황인데, 마냥 웃어넘기기 어려운 장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카메라를 빌려 가서는 말도 없이 팔아먹은 선배에게 영태는 300만 원을 요구한다. 그러고는 다음 날 “돈에 있어서는 이익을 취하기는 했지만, 바가지를 씌운 사람으로 남게 되는 이런 불명예”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정희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당신 마음이 불편하다면 100만 원만 돌려주라고 답한다.

둘은 대화에 착실히 임하면서 결국 합의에 다다른다. 각자 머물렀던 방에서 나와 공동 공간인 거실로 들어서고, 손을 맞잡으며 응원과 신뢰를 확인한다. 자존과 명예는 그때 이미 회복된다. 억지를 쓰며 받아낸 돈을 돌려줘서가 아니라 혼자가 아닌 함께여서 둘은 존엄하다.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장난치고, 애정의 신호를 끊임없이 주고받는 정희와 영태가 남들 못지않게 잘사는 요령을 터득할 것이라 자신하긴 어렵다. 다만, 그들은 오락가락하면서도 긍지에 만족하는 법을 배울 것이 분명하다.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삶, 그것이 곧 “구원”이라고 서로 일러주면서.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제작 과정 또한 영화 내용과 꼭 닮았다. 과거 박송열 감독은 각본·연출·촬영·편집·사운드 등을 혼자 도맡는 1인 제작 시스템으로 작품을 만들었지만, 이번엔 원향라 배우가 프로듀서와 공동 각본까지 맡아 작업했다고 한다. 참고로 더없이 다정한 부부가 같이 만든 제작사 이름은 ‘사랑하자’다.)


리버스 reversemedia.co.kr

차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