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영화 홍수 속에 믿을 건 제목뿐이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유명 영화 후속작이 나온 줄 알고 무심코 예매하면 낭패 보기 일쑤다. 가끔은 유명 영화에서 글자 하나만 살짝 바꾼 영화들까지 있다. 유명 영화의 입소문을 노골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어떤 의지마저 엿보이는 제목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궁금증을 일으킨다. 파면 팔수록 이마를 '탁' 치게 만드는 작명 센스로 무궁무진한 아류작의 세계를 보여주는 제목 낚시 영화들. 오늘도 '속았구나!'를 외친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제목 낚시 영화들의 유형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 만약 이 영화들 외에 또 속은 분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 


수입/배급사에 의해 유명 영화 후속작처럼 바뀐 영화들

<와사비 : 레옹 파트2> (원제 : Wasabi)

(왼쪽부터) <레옹>(1995), <와사비 : 레옹 파트2>(2003)

"'레옹'이 다시 돌아온다!"라는 대문짝만한 문구와 장 르노의 근엄한 표정, 그리고 빨갛고 크게 쓰여 있는 레옹 2 글씨까지. 언뜻 보면 '레옹 2'가 나왔다고 믿게끔 하는 이 영화는 사실 레옹과 1그램도 상관없는 프랑스, 일본 합작 코미디 영화다. 원제는 <Wasabi>지만 국내로 수입되는 과정에서 '레옹 파트2'라는 부제가 붙었다. 빨간색에 굵직한 글씨체마저 비슷하고, 포스터도 어쩐지 그럴듯해 깜빡 속아 넘어갈 수 있을 정도다. 

스틸컷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영화의 톤 자체가 <레옹>과 다르다. 장 르노는 이 영화에선 킬러가 아닌 다혈질 형사로 나오며 히로스에 료코는 그의 딸로 등장한다. 괴작일 것 같지만 의외로 코미디 영화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는 평도 있는 편. 

레옹

감독 뤽 베송

출연 장 르노, 나탈리 포트만

개봉 1995.02.18. / 2020.06.11.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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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 : 레옹 파트2

감독 제라르 크라브지크

출연 장 르노, 미쉘 뮬러, 히로스에 료코

개봉 200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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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컨저링 시리즈

(왼쪽부터)<컨저링>(The Conjuring, 2013), <컨저링2>(The Conjuring 2, 2016)

제임스 완 감독의 영화 <컨저링>은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로 입소문을 타 국내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비교적 저예산 영화에 속했던 <컨저링>은 후속작 <컨저링 2>부터 <컨저링> 이전을 담은 <애나벨> 시리즈, <더 넌>(2018)까지 이젠 '컨저링 유니버스'를 만들 만큼 이젠 하나의 시리즈가 되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점과 빈틈없는 연출로 많은 공포영화 팬들의 1순위 영화가 된 <컨저링>. 그 이름을 '빌려 쓰는' 공포 영화들이 줄지어 나타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네이버에 '컨저링'을 검색하면 나오는 총 14편의 영화들 중, 진짜 제임스 완 감독의 컨저링은 단 두 편뿐이다. 남은 12편 중 2편은 원제에 컨저링이 들어간다. 그렇다면 남은 10편은? 국내에 수입되는 과정에서 '컨저링'이란 단어가 들어간 셈이다. 그중 <컨저링: 아미티빌의 저주>은 주인공이 수면바지를 입고 나와 친근함을 준다. 핸드폰으로 찍은 듯한 화질과 핑크색 수면바지의 콜라보레이션이 이 영화의 진실을 말해주는 듯하다. 

핑크색 수면바지가 눈에 들어온다.
<컨저링: 아미티빌의 저주>(Amityville: Mt. Misery Road, 2018)의 네이버 네티즌 관람평 / 그리고 이를 본 네티즌의 격렬한 반응
컨저링

감독 제임스 완

출연 베라 파미가, 매켄지 포이, 패트릭 윌슨, 조이 킹, 릴리 테일러, 론 리빙스턴

개봉 201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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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저링 2

감독 제임스 완

출연 베라 파미가, 패트릭 윌슨, 프란시스 오코너, 프란카 포텐테, 스털링 제린스, 매디슨 울프

개봉 201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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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저링: 아미티빌의 저주

감독 척 모론지엘로

출연 척 모론지엘로

개봉 2019.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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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옹박 시리즈

(왼쪽부터) <옹박-무에타이의 후예>(Ong-Bak, Muay Thai Warrior, 2003), <옹박: 더 레전드>(Ong bak 2, 2008), <옹박: 마지막 미션>(Ong bak 3, 2011) / 이 세 편이 '찐' 옹박이다

이 기사의 제목을 보고 아마 '옹박 시리즈'를 가장 먼저 떠올린 분들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옹박-무에타이의 후예>(이하 <옹박>)는 CG와 와이어, 스턴트 모두 배제한 토니 자의 리얼한 액션으로 액션 영화계에 한 획을 그어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7년 동안 무에타이를 갈고닦으며 <옹박>을 준비해 온 그의 액션이 화려하게 빛났던 이 영화는 비슷한 장르 영화들의 이름이 되어 주었다. 옹박이 들어간 영화 14편 중 원제가 'Ong bak'인 영화는 총 세 편뿐임으로 주의가 필요하다. 

(왼쪽부터)<옹박 3: 보디가드>(The bodyguard, 2004), <옹박 - 두번째 미션>(The Protector, 2005), <옹박: 리턴즈 오브 레전드>(The Protector 2, 2013)

주의할 점은 주연이 토니 자라고 해서 모두 옹박이 아니라는 점이다. 위의 세 편은 모두 주연이 토니 자인 옹박 외 시리즈로 토니 자의 팬이라면 봐도 좋을 영화들이다. 특히 <옹박 - 두번째 미션>은 네이버 네티즌 평점 8.28로, 이는 오히려 <옹박>의 오리지널 후속작보다도 높은 점수다. 모두 원제는 따로 있지만 국내로 수입되는 과정에서 옹박의 인기에 편승하기 위해 지어진 제목들이다. 심지어는 중국 영화가 옹박으로 둔갑한 경우도 있었다. 이외에도 수많은 영화들이 옹박을 자처하고 나섰지만 오히려 혹평을 받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옹박 2016: 혈투>(拳霸风云, Bloody Destiny, 2015) 네티즌 평
수많은 무늬만 옹박들. <옹박키즈>는 무늬도 다르다.
옹박 - 무에타이의 후예

감독 프라차야 핀카엡

출연 토니 자

개봉 200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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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더 레전드

감독 토니 자, 판나 리티크라이

출연 토니 자

개봉 200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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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 마지막 미션

감독 토니 자, 판나 리티크라이

출연 토니 자, 댄 추퐁

개봉 201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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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버스터 영화의 진수, 어사일럼
(왼쪽부터)<트랜스포머>(Transformers, 2007), <트랜스모퍼>(Transmorphers, 2007)

목버스터는 (흉내내며) 놀리다(Mock)라는 뜻과 블록버스터가 합쳐진 말로 제작할 때부터 히트작에 편승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만든 작품으로 태생이 아류작이다. 수입할 때 아류작이 되어 버린 영화들과는 달리 이들은 뼛속부터 '이름값에 묻혀가겠다!'라는 제작진들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어 아류작 세계에서도 원 톱이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어사일럼'은 목버스터계의 거장으로 불리며 급이 다른(!) 작명 센스를 선보인다. <트랜스모퍼>는 어사일럼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데, '멸린말치'처럼 글자만 살짝 바꾼 케이스다. 

폐차장에서 돌아온 느낌이다

이름에서부터 아류작의 본분을 다하겠다는 결연함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오로지 비디오 시장을 겨냥해 만든 작품이다. 초저예산 영화답게 극도로 조악한 CG와 허허벌판과 다를 바 없는 배경을 선보인다. '망한 영화 보면서 낄낄대기'가 취미가 아니라면 굳이 보지 않길 추천한다. 

(왼쪽부터)<다빈치 트레져>(The Da Vinci Treasure, 2006), <킹: 잃어버린 세계>(King Of The Lost World, 2005), <아이 엠 오메가>(I Am Omega, 2007)

어사일럼의 주옥같은 명작들을 소개하자면 끝도 없다. 딱 보면 뭘 따라 했는지 알 수 있는 게 어사일럼의 매력이라면 매력. 특히 <아이 엠 오메가>는 <나는 전설이다>(2007)와 <오메가 맨>(1971)의 원작이 동일하다는 점을 살려 반반 합쳐 놓았다. 게다가 '<나는 전설이다>의 원작 액션 대작!'이란 말을 살려 정통성까지 부여하려 했다. 그들의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트랜스포머

감독 마이클 베이

출연 샤이아 라보프, 타이레스, 조쉬 더하멜, 안소니 앤더슨, 메간 폭스, 레이첼 테일러

개봉 2007.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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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모퍼

감독 리 스콧

출연 매튜 울프, 에이미 웨버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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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계의 어사일럼, 비디오 브린쿠에도
(왼쪽부터)<라따뚜이>(Ratatouille, 2007), <라따또잉>(Ratatoing, 2007)

영화계에 어사일럼이 있다면 애니메이션계에는 비디오 브린쿠에도가 있다. 브라질 애니메이션 제작/배급사인 비디오 브린쿠에도는 3D 애니메이션을 전문으로 하며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가고 있다.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등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 작품을 내놓으면 어김없이 비디오 브린쿠에도에서도 작품이 등장한다. 4∼50분 남짓한 애니메이션들은 '플롯이 있을까?'싶을 정도의 퀄리티를 보여준다. 

비록 저예산 영화지만 같은 해에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CG 퀄리티는 브린쿠에도만의 매력 포인트. 남다른 작명 센스 역시 아류작으로서의 품격을 한층 높여준다. 

(왼쪽부터) <카(Cars, 2006), 리틀 카즈(Little Cars in the Great Race, 2006)

나름 장수한 시리즈도 있다. 픽사의 <카> 아류작, <리틀 카즈>는 나름대로 브라질 비디오 시장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덕분에 무려 원작인 <카> 시리즈보다도 긴 <리틀 카즈 8>까지 나왔다. 세차를 갓하고 나온 <카> 주인공들과 달리, <리틀 카즈>는 이제 곧 폐차장에 들어가게 생겼지만 원래 아류작이란 그런 맛에 보는 것 아닐까. 다만 저작권 의식까지 아류라는 게 문제다. 대놓고 따라 해서 아무도 헷갈리진 않지만 말이다. 

라따뚜이

감독 브래드 버드

출연 패튼 오스왈트, 루 로마노

개봉 2007.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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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존 라세터, 조 랜트

출연 오웬 윌슨, 폴 뉴먼, 보니 헌트, 마이클 키튼

개봉 200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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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쟁이 유형
(왼쪽부터) <전망 좋은 방>(1989), <전망 좋은 집>(2012)

마지막, 추가로 소개하는 유형은 따라쟁이 유형이다. 이 경우는 예매할 때 주의해야 할 유형이다. 서로 아무 관련 없는 영화지만 제목이 비슷해 혼동을 준다. 대부분은 유명 영화 제목을 따라지었다. 2020년 6월 11일에 재개봉하는 <전망 좋은 방>은 20세기 초 영국의 클래식한 아름다움이 마치 명화처럼 담겨 있는 로맨스 영화계의 명작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의 제작, 각본, 각색을 맡았던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감성이 살아있는 작품으로 로맨스 영화지만 20세기 초 영국의 혼란스러웠던 사회상도 잘 보여준다. <전망 좋은 집>은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는 에로 영화다. 만약 추후에 VOD로 <전망 좋은 방>을 보고자 한다면 꼭 방인지 집인지 확인하고 구매하시길. 

전망 좋은 방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

출연 매기 스미스, 헬레나 본햄 카터, 덴홈 엘리어트, 줄리안 샌즈, 사이먼 캘로우, 패트릭 갓프레이, 주디 덴치, 파비아 드레이크, 조안 헨리, 아만다 워커, 다니엘 데이 루이스, 루퍼트 그레이브즈

개봉 1989.06.24. / 2020.06.11.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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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집

감독 이수성

출연 곽현화, 하나경, 오성태, 이건

개봉 201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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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김명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