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 캔 스피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추석 영화 시장은 이제 완전히 달아올랐다. 9월 27일 개봉하는 <킹스맨: 골든 서클>은 압도적인 예매율로 기선을 제압한 상태다. 언론시사를 통해 베일을 벗은 <남한산성>(10월 3일 개봉)은 만듦새에 대한 찬사가 뜨겁다. 할리우드 최고의 기대작과 150억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한국영화가 개봉을 앞둔 이때 나는 약간의 염려로 이 글을 쓴다. <아이 캔 스피크>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길 원하는 간절함을 담았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다
좋은 유머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다. <아이 캔 스피크>의 옥분(나문희)과 민재(이제훈)는 민원을 매개로 얽히며 갖가지 웃음을 만들어낸다. 흔히 예견되는 노인에 대한 비하와 여성에 대한 폄하로 비롯된 웃음은 찾아볼 수 없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작은 사건들이 웃음의 소재로 연결되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개그들은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완성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영화는 과도한 웃음을 위해 옥분을 비롯해 그 누구도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는다.
폭력을 전시하지 않는다
올해 한국영화는 뜨거운 논쟁에 휩싸였다. 고문당하고 살해당하는 여성들을 전시하듯 늘어놓은 <브이아이피>의 시선과 밤거리에 혼자 걷는 여성의 번호를 얻겠다며 뒤쫓고, 피해자인 여성들의 위험을 눈앞에 두고도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청년경찰>의 태도는 최근 한국영화가 여성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됐다. 조폭과 형사가 뒤섞이며 쏟아내는 수위 높은 폭력묘사도 한국영화의 선정성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낳았다.
이런 한국영화의 행태에 대해 <아이 캔 스피크>는 모범적인 답을 내놨다. 위안부 문제를 소재로 다루면서도 일본 군인이 자행한 무자비한 폭력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위안소에서 겪은 비참한 고통을 옥분의 자살 시도 장면을 통해 몰입감 넘치는 연기로 전달하고, 영화의 절정인 미 의회 연설 직전 옥분의 몸에 새겨진 오래된 상처를 통해 보여주는 게 전부다. 영화는 피해자가 겪은 고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묘사한다. 이러한 감독의 사려 깊은 연출은 한국영화가 여성을 다루는 태도에 있어 좋은 전례를 만들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용역 깡패조차 폭력 묘사가 없을 정도로 영화는 윤리적이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옥분을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녀는 아픈 현대사의 상처로 얼룩진 존재가 아니라 시장 한켠에서 수선집을 일구며 오지랖 넓게 주변의 모든 것을 참견하는 평범한 동네 할머니다. 그녀는 상처를 안고 주저앉는 대신 스스로가 설정한 의지와 목표를 향해 행동하고 실천한다. 영어는 그런 삶을 위한 수단이다. 이전까지 위안부를 다룬 영화들이 가슴 아픈 역사를 함께 아파하고 애도했다면, <아이 캔 스피크>는 옥분이 현재에도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위안부 피해자를 다루는 새로운 방식이다. 아베의 망언에 화를 내며 오래 살아 반드시 이기겠노라 힘차게 걷는 마지막 장면은, 옥분이 미래를 향해 걷겠다는 당당함의 표현일 것이다.
<아이 캔 스피크>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조로운 구성과 화면, 아재 개그로 대표되는 한국 코미디의 전형, 법정이라는 공간에서 맺는 서사의 종결 등은 다소 식상해 보이기도 한다. 영화가 가진 올바른 태도가 영화의 성취를 말하진 않는다. 하지만 <아이 캔 스피크>는 적어도 영화가 여성, 노인, 소수자들을 어떤 태도로 대하고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을 제시한 것만은 틀림없다.
씨네플레이 심규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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