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철의 사물함]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세르지오 센세가 달고 살던 맥주는?

나는 영화 속 물건에 꽂힌다. 감독, 촬영감독, 미술감독, 아니면 배우 등 대체 왜 저 물건을 카메라 앞에 두었을까 깊은 고민에 빠진다. ‘주성철의 사물함’은 내 눈에 사뿐히 지르밟힌 영화 속 물건에 대한 기록이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 세르지오(베니시오 델 토로)가 달고 사는 맥주가 뭔가 궁금했다. 암구호를 떠올리지 못해 내내 전화를 붙들고 있는 밥 퍼거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심코 건네던 그 캔맥주 말이다. 나중에 병원에서 구출된 밥 퍼거슨이 세르지오의 차에 올라타자마자 권했던 맥주이기도 하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경찰차에 쫓기게도 된다. 세르지오가 거의 물처럼 마시는 그 맥주는 바로 멕시코 맥주 ‘모델로’(Modelo)다. 1925년 설립된 멕시코 모델로 그룹의 맥주로,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맥주 ‘코로나’도 여기서 생산된다. 테라와 켈리처럼 코로나와 모델로는 형제 맥주인 것. 게다가 작년에 버드와이저를 누르고 미국에서 판매 1위를 기록했는데, 올해부터 이마트에서도 팔고 있다 하여 당장 사러 갔다. 세르지오처럼 고속도로에서 춤을 추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냥 일상적으로 먹기 딱 좋은 정통 페일 라거 맛이었다.

 

올해 국내 출시된 ‘모델로’ 맥주
올해 국내 출시된 ‘모델로’ 맥주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 모델로는 세르지오가 이끄는 히스패닉 공동체의 끈끈한 정서를 보여주는 물건이기도 하다. 히스패닉 이민자들의 수가 늘면서 전체 판매량 1위의 맥주가 됐을 것이다. 더불어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SNS상에서는 이를 패러디한 여러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모델로를 들고 극장 간판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부터 디카프리오가 입었던 목욕 가운을 걸치고 모델로를 마시는 사진, 급기야 모델로를 마시다 팔이 묶여 체포당하는 세르지오를 재연한 이도 있었다.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 추산, 손익분기점에 한참 못 미치는 흥행 성적을 거뒀다 하나, 이 영화를 향한 팬들의 열렬한 애정을 읽을 수 있었다.

 

SNS에서 수집한 사진들
SNS에서 수집한 사진들

베니시오 델 토로가 연기한 ‘센세’이자, 멕시코 이민자 커뮤니티의 리더 세르지오가 가장 좋았다. 게다가 베니시오 델 토로는 스티븐 소더버그의 〈체〉 2부작(2008)에서 체 게바라를 연기한 인물이 아니던가. 개인적으로는 김용의 무협지에 늘 등장하는 ‘개방’ 방주처럼 느껴졌다. 자유분방한 넉살과 남 돕는데 망설임이 없는 무림의 대인배가 떠오르는, 추구미의 끝판왕이라고 해야 할까. 일부러 이름을 세르지오라고 했는지 모르겠는데, 혁명을 외치는 밥에게 “우리는 수백 년 동안 당하고만 살았지”라고 말할 때,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1968)의 찰스 브론슨이 겹쳐 보였다. 그가 연기한, 하모니카를 부는 이름 없는 남자는 멕시코의 슬픈 역사를 껴안고 복수를 꿈꾸는 캐릭터지만 표정만큼은 언제나 덤덤하고 평화로웠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그 평온함의 연장선에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세르지오가 맥주를 마시며 (사실 군인들이 들이닥쳐 굉장히 긴박한 순간인데도 불구하고)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법이지”라고 흥얼거릴 때 감히 가늠하기 힘든 그의 인품이 느껴졌다. 어쩌면 세르지오의 모델로 캔맥주는 찰스 브론슨이 언제나 손에서 놓지 않던 하모니카 같은 비장의 물건이 아니었을까. 더구나 가라데를 가르치는 그가 윌라(체이스 인피니티)에게 ‘호흡’에 대해 가르치며 “파도를 상상해봐”라고 말한 대사는, 클라이맥스의 굽이치는 도로 추격신으로 이어져 윌라가 숨을 가다듬고 불현듯 차를 세우는 계기가 된다. 분량은 적었지만, 세르지오야말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진짜 주인공이자 미래를 내다보는 슈퍼히어로였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PS. 세르지오가 은근히 영화마니아로 설정된 것도 흥미로웠다. 그가 운영하는 가라데 도장의 이름 자체가 ‘닌자 아카데미’이고 책상 뒤에는 〈슈퍼맨〉 일본 포스터가 있다. 게다가 아주 짧게 들리긴 하지만, 핸드폰 벨소리는 실베스터 스탤론의 〈록키3〉(1982) 주제가인 ‘아이 오브 더 타이거’였다. 경찰에 쫓기던 중, 차에서 좀체 뛰어내리지 못하는 디카프리오를 향해 아마도 ‘실제로 모든 액션 연기를 직접 소화하는 톰 크루즈처럼 하라’는 의미로 “탐 퍼킹 크루즈!”라고 외치며 그를 차 밖으로 내동댕이칠 때가 단연 압권이었다.

***** 영화 속 물건들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 ‘주성철의 사물함’을 시작으로 떡상을 기대하는 배우 사용 설명서 ‘김지연의 보석함’, 내 마음을 움직인 영화음악 감상실 ‘추아영의 오르골’, 서브컬처 잡상인의 구매일지 ‘성찬얼의 만화책’까지 씨네플레이 기자들이 저마다의 취향과 시선으로 격주 연재를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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